거버넌스라는 말이 가벼워질 때

by 이유 임민아

나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 왔다. 마을을 기반으로 기록하고, 연결하고, 제도와 부딪히며 일해 온 시간이 어느새 20년을 넘겼다. 그런데도 현장에 나가면 여전히 막내 축에 든다.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중심 연령대가 아직도 특정 세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도, 행정도, 지역의 주요 의사결정 구조도 여전히 비슷한 얼굴들로 채워져 있다. 세대는 바뀌었는데 권력의 방식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거버넌스는 관계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거버넌스는 본래 각기 다른 주체가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행정, 시민사회, 현장 조직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존중하며 함께 의사결정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거버넌스는 종종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누가 누구를 잘 아는지, 어디까지 전화가 닿는지, 위에서 아래로 얼마나 압박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이건 협력이 아니라 오래된 권력 운용 방식이다. 이름만 거버넌스일 뿐, 실제로는 수직적 행정 시스템의 연장선에 가깝다.


협력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 일정이 조정되기도 하고,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필요한 건 구조를 점검하는 일이다.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권한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소통 창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문제를 사람에게 돌린다. 누군가의 성향, 성격, 태도를 탓하며 상황을 단순화한다. 이렇게 되면 거버넌스는 무너진다. 구조를 고칠 기회를 잃고 감정싸움만 남기 때문이다.


수평적 협력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의 자료 한 장, 발언 기회 하나, 결정 과정 하나에서 구현된다.


- 정보가 일부에게만 독점되지 않는가

- 시민사회가 형식적인 참여자로 전락하지는 않는가

- 행정의 논리가 모든 판단 기준이 되지는 않는가


이 질문을 계속 던지지 않으면 거버넌스는 ‘보여주기식 협치’가 된다. 느리고 복잡하더라도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쌓일 때 협력은 힘을 가진다.



‘풀뿌리가 강할수록 거버넌스는 건강해진다’


진짜 거버넌스는 위에서 설계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의 조직들이 서로 연결되고,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만들어갈 때 행정은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된다.


전화 한 통으로 움직이는 관계보다, 신뢰로 쌓인 관계가 훨씬 오래간다. 권력 네트워크보다 협력 네트워크가 강할수록 지역은 흔들리지 않는다.




거버넌스를 어렵게 만드는 건 몇몇 개인이 아니다.

문제를 개인의 성향으로 환원시키는 문화다.


관계로 해결하려는 습관,

위계로 압박하려는 방식,

갈등을 구조가 아니라 인물로 처리하는 관성…


‘거버넌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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