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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 Apr 26. 2021

침묵할수밖에없었던 이유

나들이(2018)

영화 <나들이> 포스터

새해를 맞이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월까지 눈이 오는 지역이 허다했으니 말을 다했다. 이젠, 꽃샘추위라는 단어로 봄 날씨의 기승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인 세상이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봄은 봄인가 보다. 벚꽃이 만개했다. 사람들은 봄 향기를 만끽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자제하는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봄기운을 잠깐이나마 즐기고픈 사람들로 벚꽃 명소는 인산인해다. 걱정되긴 하면서도 나들이객이 많아지는 풍경에 괜스레 또 마음이 편해진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는 선에서, 한 번쯤은 가족들과 나들이를 나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영화 <나들이> 스틸컷

그런데 나들이라는 것이 모든 이에게 행복한 의미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닌 듯싶다.

여기에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제각기 다른 이유에서 그들의 나들이는 먹먹하기만 하다. 영화 <나들이>에 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이상하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나들이는 어떠한 의미이길래,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영화 <나들이> 스틸컷
줄거리

쨍한 날씨 속에서 한 가족의 나들이 채비가 한창이다. 가족 구성원은 아빠, 엄마, 아들, 딸, 그리고 할머니다. 그중 한 명, 할머니만이 추레한 가방을 메고 있다. 할머니의 준비성이 다른 가족들보다 더 철저해서만은 아니다. 잘 다녀오라는 이웃의 인사말에 할머니는 연신 시선을 돌린다.

가족을 태운 차는 먼 길을 나서는 듯 보인다. 나들이 장소로 떠나기 전, 주유소에 들른 남편은 아내에게 8만 원어치의 기름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는 채워야 나들이 일정에 차질이 없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기름양이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이어진 가족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상하게 거슬린다. 나들이를 앞둔 여느 가족의 분위기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 기름을 채우고자 했던 것도 단순히 오늘의 나들이를 알차게 만들기 위함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 <나들이> 스틸컷

가족은 어느덧 나들이 장소에 도착한다. 따스한 햇살이 아름답게 비추는 풀밭은 가족들을 설레게 한다. 그들은 이날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공원을 거닐기도, 돗자리를 펴 그 위에서 김밥을 나눠먹기도 한다. 그런데 항상 할머니는 다른 가족들보다 한 발씩 늦다. 귀여운 손녀딸이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기는 하지만 할머니와 가족 사이의 거리감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손주들을 위해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가족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망치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떨어져서만 그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를 향한 부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영화 <나들이> 스틸컷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가족은 이제 차를 타고 돌아온다. 손주들은 이미 깊은 잠에 들었다. 한데 자동차가 곧장 집으로 향하질 않는다. 외진 곳에 다다른 자동차는 그보다 더 외진 곳을 찾아 나선다. 구석진 곳에 있는 공중전화박스 앞, 자동차가 드디어 멈춰 선다. 짧은 침묵 끝에 남편이 차에서 나와 공중전화 박스로 걸어간다.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 남편은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무거운 입술을 뗀다. “노인분이 아까부터 계속 서있어 계셔서요... “. 부인 역시 남편을 따라 차 밖으로 나오고선 할머니가 있는 뒷좌석 문을 연다. 할머니는 사형 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무기력하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손녀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세운 후, 차에서 내린다. 겁을 잔뜩 먹은 할머니에게 남자가 한마디 건넨다.


"엄마. 이게 더 나아"



영화 <나들이> 스틸컷
그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화 예술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보편적인 메시지를 들춰낼  안다. <나들이>역시 이러한 능력을 정직하게 발휘한다. <나들이> 현대판 고려장을 자행하는 주인공 가족을 타깃으로 잡고 비난하는 영화가 아니다. 외려 이를 확장시켜,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드러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나들이> 특별한 이유는 러한 보편적 메세지를 드러내위해 활용 특이한 설정에서 찾아볼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인은 총 두 명이다. 할머니 그리고 주유소 직원 할아버지다. 영화를 보며 이상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등장하는 노인들이 대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 노인들에게 어떠한 대사도 허용치 않았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노인들의 심정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뿐이겠다.


영화 <나들이> 스틸컷

주변인과의 관계를 토대로 보면, 영화가 세 가지 차원으로 노인들의 소외감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영화는 노인들이 가족 공동체로부터 소외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주인공 할머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할머니를 묘사하는 장면들은 결말부에 가서 그 절정을 맞는다. 가족들이 할머니를 외진 곳에 버림으로써 현대판 고려장을 실현한 것이다. 해당 장면으로 이어지는 메인 플롯은 가정에서 소외된 노인들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가족 공동체의 변두리로 밀려난 노인들의 상황이 회복 불가능한 지점까지 다다랐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두 번째로 경제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 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주유소 직원 할아버지는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유소에서 일을 한다.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 활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주유소 내에서 지진아나 다름없다. 주유 구멍을 잘 찾지 못해 손님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기 일쑤이고 일처리가 느린 탓에 차들이 계속 밀려 나이 어린 직원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일을 배우는데 능숙지 못하고,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이 연상된다.

영화 <나들이> 스틸컷

마지막으로 영화는 정부가 소외시킨 노인들을 묘사한다. 남편의 제보를 받고 할머니를 데려온 공공기관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인적 사항을 묻는데 그친다. 그리고 인적 사항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점심이나 먹자며 등을 돌려버린다. 자신들의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나가는 공공기관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이미 안중에 없다. 할머니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봄으로써 착잡함을 드러낼 뿐이다.

영화 속 공공기관 사람들은 노인문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인들이 왜 방치되고 왜 외로워하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일절 없으며, 그들에게 노인들은 그저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거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화 <나들이> 스틸컷

이처럼 영화는 세 가지 차원의 시퀀스들을 통해 대유법적으로 현대사회의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을 보여준다. 영화의 큰 플롯은 가족, 경제, 그리고 정부 모두로부터 소외된 노인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가족, 경제, 정부라 분리하여 표현하였을 뿐이지, 실제로 이 세 주체는 우리 사회 전체를 의미한다. 즉 우리 사회 내에서 노인들이 기댈 곳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 속 노인들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유추해볼 만하다.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은, 사회가 자신들을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음에도 억지로 말을 아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자의든 타의든, 노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빼앗겼고 되찾을 희망 따윈 보이지 않는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노인들은 과거에 우리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고 현재의 노인들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다.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로 가벼이 여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영화 <나들이>는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관철시킨다.


우리 사회는 노인들의 현실에 너무도 무관심했고 노인들은 그러한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그들의 아픔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모든 이의 아픔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이의 아픔은 존중받아야 한다. 영화 <나들이>는 누군가의 아픔이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영화 <나들이>를 통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을까? 필자도 <나들이>가 보내는 소망에 작은 마음을 한번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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