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 어머니처럼 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왔지만 어느새 부모가 된 자신이 자식에게 그 같은 행동을 답습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그럼 '부모'가 된다는 건 뭘까라는 물음표까지 던져준다.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던 료타의 아버지. 료타(주인공)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부정이란 것을 느껴본 적 없는 듯했고, 자신의 아이인 줄 알았던 케이타에게도 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식의 교육관을 비쳐왔다. 그럴수록 아이는 아버지의 칭찬이 고파보였다. 마치 료타의 어린 시절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에게 어차피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인정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낳기만 하면 그게 부모인가?라는 의문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아이라고 하기에도 어린 아기들을 방치하거나 학대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부모들이 기사에 나올 때마다 눈을 의심했고 그런 일들이 잦아졌다. 완벽한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은, 부모 자격이 있는 부부들만이 아이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보기도 했다. 그럼 그 자격은 대체 누가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늘 그 생각이 멈춘다.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는 말. 절대 끊을 수 없다는 말. 단순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으로 '가족'이란 단어를 형용할 수 없다. 난 가족을 정의한다면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는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래 만난 연인과의 헤어짐이 슬픈 이유가 더 이상 못 본다는 슬픔보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추억을 지워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처럼, 료타가 케이타를 당연한 듯 친부모에게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케이타가 찍은 카메라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깨닫는다. 아이는 혼자 그렇게 아빠와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친한 친구의 출산에 감격스러워 편지를 몇 자 적어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 내가 항상 너보다 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 먼저 엄마가 되고 어른이 되는 것 같아서 신기하면서 좀 싫다....
벌써 3살짜리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를 보면 이젠 어엿한 엄마 티가 난다고 표현하고 싶다. 내 친구도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중인가 보다.
엄마 아빠는 대체 나랑 동생을 어떻게 키우셨을까. 지금 내 나이쯤 나를 낳으시고 기르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난 그 책임감의 발톱의 떼만큼도 책임감이 없는 철부지인데. 30년 넘게 나와 동생의 엄마, 아빠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부모님께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누군가는 다음 생에 본인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던데 난 그냥 다음 생에도 엄마 아빠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미래에 내 아이가 생긴다면 꼭 우리 부모님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 아빠가 전부였던 유년시절 진짜 전부가 되어주셨던 그들처럼. 엄마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일이 됐던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