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PIRACY, 2021)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다'라는 영역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젠 그 어떤 산업도 신뢰할 수 없게 됐다. 다른 산업도 그렇지만 적어도 육지의 영역에선 그 경계가 명확하고 바다보단 접근성이 있기에 그 부패와 비윤리적인 어떤 것들이 더 와 닿았다. 무지한 나로선, 비건이란 큰 움직임도 돼지나 소, 닭과 같은 동물들만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내가 '옥자'라는 영화를 보고 적어도 그 주엔 고기를 먹지 못하거나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걸 제외하곤 그 이상의 행동과 실천을 다짐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회. 말 그대로 생선이다. 이 같은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앞으로 내가 그 수요를 줄이는데 일조할 수 있을지 괴로웠다. 지금도 '이 순간부터 저는 생선을 소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게 솔직히 부끄럽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한 액션을 취하고 있고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들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하는 거라곤 텀블러를 이용하거나 비건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운동들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어업 그 자체로서의 환경파괴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지속 가능한'이라는 모호한 형용사를 붙이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많은 환경단체들도 결국 자본주의 안에서의 한 기업의 일종이라는 것이 씁쓸했다. 바다의 먹이사슬의 파괴는 결국 육지의 산림파괴로까지 치닫는데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 나비효과 같은 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직접 배에서 상어와 고래들을 건지고 죽이는 사람이 내가 아니지만 나도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바다생물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함구로 다큐의 해답을 얻을 수 없을 땐, 늘 돈을 따라가면 그 답이 나왔다. 결국 돈인가. 나도 어쩌면 돈을 좇아 살고 있는데 그들을 100% 나쁜 놈으로 매도하기엔 내 양심이 찔렸다.
TV에서 새우나 생선의 대가리를 손질하는 장면이 나오면 해산물을 즐겨먹지 않는 남자 친구는 인간이 가장 잔인하다며 그 새우나 생선들이 불쌍하고 할 때마다 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왜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은 혐오하면서 나는 모순된 잣대로 생선의 죽음에는 초연했을까. 다큐에선 생선도 아픔을 느끼며 바다 안에서의 사회활동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정말 간과했던 부분이다. 어쩌면 나도 그들을 욕하기엔 똑같이 잔인한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하기에 그들은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어장을 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거의 반성문에 가까워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바다가 전부인 그 많은 생명들에게도. 그 개체수들을 유지시키며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기엔(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하기엔)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다. 수요를 줄여 공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그 행위가 돈이 되지 않아야만 그 활동들을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슬펐다. 바다뿐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우리의 이기심으로 목숨을 잃고 어딘가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잊고 살았는데.. 지금도 껍데기뿐인 단체들 사이에서 진정으로 건강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큐에 등장했던 'SeaSepherd'같은.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최전선에서 부딪혀 싸우고 있는 그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내가 당장 내일부터 비건으로 살아갈 순 없을지라도, 이 다큐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고기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