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아무도 모른다(2004)

by 정긍정

영화 시작 실화라는 문구가 떠올라 더 가슴이 미어졌다. 카메라의 시선은 마치 다큐를 보듯 담담해서 가슴이 아팠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모르고 싶은 이야기였다. 늘 부모의 자격에 대해 생각해왔다. 태어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아리카(첫째)의 인생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이 무겁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 동생들과 여느 때 와 같은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크리스마스가 돼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대신한 세뱃돈과, 어느 순간 전과는 다른 글씨체에 엄마가 준 것이 아니라 것까지 알아버린 교코(둘째)는 피아노를 사겠다는 자신의 꿈을 뒤로하고 꼬깃꼬깃 모아놨던 세뱃돈마저 묵묵히 생활비에 보탠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그들의 부재는 구성원 중 누군가를 제2의 엄마, 아빠로 만든다. 아키라는 남은 형제들에게 엄마이자 아빠이자 오빠이자 형인 것이다. 또 교코는 엄마의 물건에서 그 부재를 메우려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손톱에 칠해준 매니큐어같이. 엄마 옷이 있는 옷장에 자신을 가두는 교코를 보면서 또 마음이 아팠다. 교코가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걸 자신의 잘못처럼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아이들은 그 누구도 엄마를 탓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기다릴 뿐.


아키라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구는 모습에선 그게 당연한 것임에도 불안했다. 동생들에게 어서 돌아가 보살펴주길 바랐다. 마음속으로 '정신 차려, 아키라.'라고 말하며 한 어린아이에게 당연하지 않은걸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바라고 있는 게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여름은 너무 덥고 또 겨울은 너무 추웠다. 베란다 밟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아이들에게 이 넓은 세상을 알려주고 싶은데, 아키라의 마음도 나와 같았는지 유키를 공항 근처 비행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묻어 줬다.


결국 유키(막내)는 엄마를 기다리다 그렇게 먼저 하늘나라로 가지만 어쩌면 4명 중 가장 먼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유키가 어느새 자라서, 이젠 원래 들어갔던 캐리어에도 몸이 잘 들어가지 않을 때 엄마가 없이 너무 오랜 시간을 그들끼리만 함께 였다는 게 아키라와 교코, 시게루(셋째)의 머리카락 길이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게 했다. 영화 속 아이들이 우는 장면이 한 장면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같이 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산다는 표현보단 살아낸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꾸역 꾸역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아이들이 너무 의연하여 붙이기 민망하다.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 불행도 불행으로 여길 수가 없는 아이들인데, 아키라는 엄마가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 한마디에 고개를 떨구고,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찾아가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게 아키라의 사랑일까.


아키라의 변성기를 교코는 감기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있다면 가르쳐줬을 것들을 아이들은 하루를 살아보며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엄마가 가장 필요한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이, 엄마의 부재가 죽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을 버리고 방치한 거라는 것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미 내 머릿속에선 후쿠시마(엄마)를 찾아가 멱살을 잡았다. 아이들은 사실 엄마가 짐을 쌀 때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전부터 아키라는 엄마 앞에서 모른 척 해왔던 것들이 많았고, 어느 순간엔 교코 또한 그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에루와 유키보다 세상을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그들의 보호자가 됐다.


인상 깊은 영화는 2번이고 3번이고 보는 나지만, 이 영화는 너무 마음이 힘들어 다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영화 초반엔 혹시나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마우스를 영화 뒷부분으로 갖다 대보기도 했지만 나 또한 영화를 보며 체념하고 있었다. 폭력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방임 또한 엄청난 폭력임을 실감했다. 어른들이 만드는 수많은 잘못들에 죄 없는 아이들만 당하는 것 같아 그냥 어른이라는 이유로 미안하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난 이제 이런 아픔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어른으로써 외면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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