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과 함께 떨어져 나간 나의 생각 찌꺼기들
수술이 무서워 그 흔한 쌍꺼풀 수술도 마다했는데, 내 나이 31살에 난소에 혹을 떼는 수술을 하게 됐다. 워낙 겁도 많아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기까지 자기 전엔 쪼끔씩 눈물도 났었다. 2달도 넘게 남은 수술 날이 마치 오지 않을 것만 같다가도 또 빨리 시간이 지나서 수술이 끝나 있기를 바라는 조금은 이상한 심정으로 지냈었다.
전신마취에 대한 걱정,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면회 불가, 며칠이 될지 모르는 입원기간, 혹시나.. 하는 모든 것들로 나의 잠과 맞바꿨던 날들. 지금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까지는 아니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경험하기 전까지 난소혹 제거술이라는 미지의 세계는 나를 그렇게도 두렵게 했다.
한창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극 중 채송화 교수님 같은 단발머리의 안경을 끼신 분이 나의 담당 교수님이셨다. 그나마 마음이 놓였던 건 외래나 입원기간 중 선생님의 말씀이 그렇게 사람을 안심시켜주셨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술은 굉장히 잘 끝났고 비교적 젊은 나이라 회복도 빠르다고 하셨다. 대형 병원은 처음이라 수납하는 것도 몰라 헤매고 길도 헤맸었는데 퇴원수속 밟을 때쯤엔 알아서 척척 하게 된 내 모습을 보고 뿌듯함마저 느꼈다.
내 몸 중 소중하지 않은 곳 없고, 세상에는 병이 너무도 많다. 나는 예방차원에서의 수술에 속했지만 다시는 오줌통을 달거나 몇 번씩 피를 뽑아야 하는 과정은 거치고 싶지 않다. 큰 수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 인생에선 정말 큰일이었고 종교는 없지만 뭔가 나에게 깨달음 주려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바다.
쉽게 말해 많이 찡찡대는 탓에 친구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 주변에 같은 수술을 받은 친구도 소개해주고 심지어 논문까지 찾아본 친구도 있다. 입원 전엔 담요를 건네 준 친구도 있고, 또 입원이 처음인 나에게 꼭 챙겨야 할 목록들을 알려준 친구, 밥 한 끼 먹여보내야 한다는 친구.. 입원 중에 심심할까 봐 계속 연락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거뜬히 이겨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살짝 즙이 나오는데.. 힘들 때 챙겨준 친구들은 정말 디테일하게 기억에 남네. 나도 친구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나한테 힘듬을 얘기할 수 있고 내가 기꺼이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지나고 보니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보다 고마움의 기억이 아주 조금 더 크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던 친구들 말처럼 된 지금, 마치 마음의 빚이라기엔 '빚'이라는 단어가 꾸역꾸역 갚는 느낌이라 마음에 안 든다. 마음의 '고마움 마일리지'를 쌓아두고 나도 친구들이 힘들 때 나눠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한다.
난 딩크족이라고 외치진 않지만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책임감이 없다기보단 스스로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도 있다. 일단 내가 너무 잘나지 않았고 사실 잘나지 않아도 아이는 낳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 돈이 문제였다. 나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가난의 대물림 같은 단어들이 마음이 아프고 그럴까. 내가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금쪽같은 내 새끼'이다. 문제 있는 아이들만 봐서 낳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또 문제 있는 아이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보면 볼수록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렇지 못할 바엔 낳지 않는 것도 낫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환경문제도 뺄 수가 없다. 마스크 쓰는 아이들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가장 큰 건 내가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이 많다고 해야 할까.
4일의 입원기간. 그리고 집에서 2주 동안의 여유로운 회복기간을 가지면서 위와 같은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사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까지 보냈던 나의 마음속 기도에 내가 건강해지면 아이를 낳고 싶다는 기도를 여러 번 보낸 적이 있다. 난소가 2개여서 하나만 있어도 임신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혹을 제거하고 두 쪽 모두 안전한 상태다. 안 낳는다고 생각했을 때와 못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와의 차이는 컸다. 이래서 아이는 하늘이 주시는 거라고 하는 걸까.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런 기회는 굉장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고 굳이 아이를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만약 생긴다면 소중한 존재고 낳을 자신이 생겼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21년 6월 말부터 9월까지 3개월 간 뭔가 큰 폭풍이 지나갔다. 자기 전 마음속으로 수없는 기도를 했다. 그냥 어딘가에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인생 최대의 위기였고 이렇게 웃음기를 잃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상이 무너졌던 지난 3개월을 극복하고 돌아보니 그 정돈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바들바들 떨었겠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대미지가 클수록 그만큼 더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준다. 16년 첫 회사를 퇴사한 후도 이젠 잘 기억도 안 나지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26살 나의 가치관에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31살이 된 지금 나는 또 많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본인이 선택했다면 그 모든 삶은 다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한다. 이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다. 그 이전의 내 생각들도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또 몇 년 뒤 어떤 폭풍이 지나가 나의 이런 가치관들을 변화하게 할지 모른다. 미리 두려워하진 않겠다. 2번 정도 겪어보니 미리 걱정해도 어차피 그때가 되면 또 너무 고통스러울 테니까. 물론 수술을 안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무사히 마친 지금, 미리 발견하게 돼서 너무 감사하고 나를 사랑해주고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어서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