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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부비 Jun 10. 2020

리뷰 | <사라진 시간> 당신의 시간은 안녕한가요

정진영 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 리뷰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부정당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평생 형사로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박봉이라는 아내의 구박에도 혼잣말을 하며 흘려 넘긴다. 바쁜 형사 생활에 두 아들은 주로 잠들어 있고, 아들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내에게 듣는다. 오늘도 아내의 잔소리에 혼잣말을 하다 오히려 더욱 잔소리를 듣는다. 영화 <사라진 시간> 속 형사 형구(조진웅)의 이야기다.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사라진 시간>은 한 시골 마을에서 외지인 부부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연)이 의문의 화재 사건으로 사망하고,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형사 형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사라지는 이기한 일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조진웅, 배수빈, 정해준, 차수연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시작한다. 한없이 따뜻하고 선한 사람으로 보이는 초등학교 교사 수혁과 그의 아내 이영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이상한 기운이 흐른다. 저녁에 방문하겠다는 동네 주민이자 학부형 해균(정해균)의 말에 정색을 하기도 하고, 시골까지 놀러 온 친구들을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식사만 한 뒤 돌려보낸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두 사람에게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하지만 이 비밀은 영화의 주된 내용이 아닌, 포문을 여는 장치일 뿐이다. 그렇게 의문의 화재 사건(누전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속 장면은 기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후 형사 형구가 등장한다.


형구는 마을 사람들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파고든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지만 더 이상 형구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술에 취해 잠이든 다음 날, 형사 형구는 사라졌다. 대신 화재가 발생한 집에 살고 있는 교사 형구가 나타난다.


자신과 마주치는 사람마다 '교사'임을 강조한다. 이른 아침 술이 깨지도 않은 형구에게 "왜 출근을 안녕하십니까"라고 다그치는 교장 선생님부터,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해준과 그의 아들, "누구세요"라고 묻는 옆집 아주머니, 그리고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남성까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을 제외한 형구의 모든 것이 변했다. 타인이 보는 자신과 자신이 보는 자신은 연결고리조차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형구는 자신의 믿을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답은 없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형구는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걱정했다. 특히 형구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되는)던 해준은 형구를 챙겨주지만, 형구는 그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상황을 지켜보면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다. 형구는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의심해야만 앞으로 나갈 원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사라진 시간>은 해답을 찾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아니다. 그렇다고 스릴러나 공포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웃고 울고 즐기는 진한 상업색을 띤 영화 역시 아니다. 


영화 <사라진 시간> 스틸.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긴 여운이 남는다. 정진영 감독은 영화의 장르를 하나로 규정하지 않았다. "특정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라고 말했고 "하나의 장르로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도 했다.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에 놓은 연약한 사람(형구)"처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스스로에 되묻게 된다. 나의 시간은 안녕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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