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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Aug 18. 2016

무비 브릿지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잔혹동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21세기판 돈 키호테"를 다시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낭만과 허영이 가득한 신사 구스타브, 그리고 몸종처럼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도움을 준 벨보이 제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영화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시각적인 부분이다. 파스텔톤의 색감이나 시대적 배경에 따라 바뀌는 화면비는 너무 유명해서 모든 리뷰마다 등장할 지경이니. 이런 요소들은 영화에 이질감을 주고, 관객들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거리감을 만든다. 시각적인 부분에서 이런 느낌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또 있는데, 바로 영화에 패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정지된 화면에서 인물만 움직이는 그림들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이는 몽환적인 배경음악과 나레이션과 어우러져 한 편의 그림책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영화는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스토리적인 부분으로도 관객에게 관조적 시각을 강제한다. 나중에 가면 이게 몇 번째 액자인지마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한 액자식 구성. 플롯의 기승전결을 짚어주는 챕터들. 영화는 그런 독특한 구성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대체 왜 이렇게 관망적인 시선을 강제하는 것일까. 그 답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영화의 플롯은 절대 밝지 않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다소 잔인한 장면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살인 사건에 얽힌 호텔 컨시어지와 벨보이." 네이버 영화 소개에 적혀 있는 플롯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울 수가 없는 플롯을 감독은 아름답게 포장해 냈다. 파스텔 톤의 이질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과, 인물들만 움직이는 카메라 구도, 그리고 복잡한 액자식 구성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멀리서" 보도록 한다.


그렇게 멀리서 이야기를 관조하게 된 관객들은 희극적인 장면에서 비극적인 시대상을 읽어내기도 한다. 첫 번째는 1930년대에 충만했던 탐욕이다. 이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음에도, 유산을 상속받아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모인 마담 D 의 가족들. 그리고 자신 앞으로 상속된 유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바뀌는 무슈 구스타브의 태도.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서 행동한다.


그 다음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전쟁의 광기이다.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호텔에서의 추격전에서 한 명이 총을 쏘기 시작하자 객실에 있던 모든 군인이 너도나도 총을 쏘고, 그 모습은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를 단지 우스운 코미디로만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작중 시대상이다. 작품은 1930년대 후반,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를 다루고 있다. 한 발의 총성이 들리자 너나 할것없이 총을 쏘는 모습은 마치 명분을 얻자마자 속속 참전 선언을 하는 당시 세계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 하다.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영화의 후반부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각 액자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호텔의 문이 하나둘씩 닫히듯, 관객들은 지금까지 있던 동화 속 세계에서 점차 현실로 빠져나온다. 그 과정에서 유독 튀는 씬이 하나 있는데, 제로가 결혼 직후 기차를 탔을 때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흑백 장면은 다른 아름다운 색감들과 확연히 구분되고, 그로 인해 관객은 그 장면을 앞선 "동화"와는 다른, "현실적인 이야기"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현실로 빠져나온다.


마지막 장면 또한 여운이 많이 남는다. 독자가 책을 덮고, 그것을 와이드 샷으로 보여준다. 여태 보여 준 형형색색의 미장센과는 다르게, 공동묘지의 차가운 색감만이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며,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관객은 다시 영화를 감상하기 전의 일상에 집중한다. 마치 영화 속 독자가 그렇듯이.


총평: 한 편의 기묘한 동화, 카메라로 그린 그림.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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