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같은 수레바퀴 위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서 과거의 낭만을 노래하던 감독이, "카페 소사이어티"에서는 과거의 부질없음을 말한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이번에는 그 현실마저도 절망과 희망의 반복일 뿐이라는 회의주의를 내세운다. "원더 휠"은 낭만적인 예고편과 영상미로 포장한 겉모습관 달리, 끝맛이 매우 씁쓰름한 영화다. 두 여인의 희망은 한 남자의 우유부단함으로 무너져 내렸고, 그 두 여인 덕에 구원받은 또다른 남자는 다시 원래의 나락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도입부에서 코니 아일랜드의 반짝이는 꿈을 상징하던 대관람차는 결말부에선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그려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당신의 삶을 저주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로또를 사러 가 보자. 한 장은 너무 소박하니 한 열 장 정도. 성취감을 위해 번호 하나하나 직접 골라가며 꼼꼼히 사 보자. 자신의 주민번호든, 아니면 의미가 있는 어떤 다른 숫자들의 조합이든, 그렇게 산 로또 영수증을 들고 토요일까지 행복한 고민을 해 보자. 당첨이 된다면... 하는 기쁨에 겨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당첨금의 절반 정도는 나중을 위해 아껴 두고, 절반으론 갖고 싶던 물건들을 사거나, 잠깐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거나 할 것이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한 턱 쏘면서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이고, 평소에 구경만 하던 백화점 마네킹을 홀딱 벗겨 멋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 그 영수증이 휴짓조각이 되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절망하고, 변치 않을 자신의 삶을 저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월요일 출근길에, 당신은 다시 한 번 희망을 품고 로또를 살 지도 모른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위와 같다. 삶이란 결국 희망과 절망의 반복일 뿐이라는 것.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몸부림, 그리고 절망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광기.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와 희망을 타고 올라가던 이들은 결국 다시 절망의 터널로 들어가고야 만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자 자신이 디디고 있던 기반을 파헤치기도 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마치 눈 앞에 보이는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지금 보이는 이 빛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전력투구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은 다시 한 번 주저앉아 언제 올 지 모르는 희망을 손꼽아 기다린다.
비록 다시 절망의 구덩이 속으로 추락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희망을 기다리는 것 역시 또다른 희망의 형태이기 때문에. 이는 자신의 삶이 저주스럽지만, 그러면서도 세상을 등지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남는 미련이자 희망이다. 그 희망을 원동력 삼아 다시 오르락, 겨우 닿을 무렵 그것이 사실 허상이었음을 깨달으면서 또 내리락. 그렇게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그 연옥과도 같은 삶은, 주인공 가족의 모습이 코니 아일랜드의 금빛 색조에 묻히듯, 제삼자에게는 아름답게만, 혹은 가볍게만 보이리라.
총평: 씁쓸한 회의주의를 포장하는 아름다운 포장지.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