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IE BRIDGE Feb 27. 2018

무비 브릿지 - 블랙팬서

마블답지 않은 아마추어리즘

    최초의 흑인 단독 주연 히어로 영화.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흑인 배우로 캐스팅되었고, 그에 따른 높은 관심을 받은 영화. 하지만 마블답지 않은 어설픈 스토리 전개와 메세지 우겨넣기로 얼룩져 버린 영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블 영화 중 최악이었다. 혹자는 그래도 옆동네 DC의 "저스티스 리그"나 "수어사이드 스쿼드" 를 끌고 와서 그것보단 낫지 않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럼 당연히 그것들보단 나아야지. 그래도 학교 급식이 운동장 잔디보단 맛있는 법이다. 저 두 유사영상물과 비교하는 것은 '우리 애는 자벌레보다 머리가 좋아요!' 라고 자랑하는 꼴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의 스토리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디즈니의 명작 "라이언 킹"이 떠오르는 스토리라는데, 아무리 봐도 라이언 킹이 훨씬 낫다. 무엇보다도 "라이언 킹"과 유사한 서사라는 것은 곧, 이미 본 듯한 식상한 서사라는 뜻이다. 허나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그것조차도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 산 속에 숨어 살던 고릴라 부족은 왜 갑자기 이의있소를 외치는지, 그렇게 싸워제끼곤 왜 뜬금없이 원군을 이끌고 나타나는지 정도의 의문은 애교다. 영화 초중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빌런은 허무하게 퇴장하고, 그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빌런은 어딘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최첨단 기술력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냉병기를 활용한 육박전을 벌이질 않나, 그러면서 또 공중전을 펼칠 땐 갑자기 갤러그를 하지 않나. 왕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부족장 의회가 하는 역할은 결국 거수기다. 저럴 바엔 차라리 부족장봇을 세워두는게 나을 것 같다. 


    개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 문제는 붕 떠버린 주제의식이다. 영화는 '개방과 쇄국', '흑인운동의 방향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어설프게 섞어 놓았다. 아무리 부산에서 촬영했다지만, 스까도 너무 이상하게 스깠다. 부산 사람들도 허니브레드랑 간장게장은 안 스까먹는다. 개화파와 척화파의 대립, 또는 마틴 루터 킹과 말콤X 의 대립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뜬금없이 흥선 대원군과 말콤 X의 대립을 보게 된다. 이 붕 떠버린 주제의식 속에서 주인공은 뭘 하고 있나 보면, 진즉에 리타이어한 채로 팝콘이나 뜯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나타나서 되도 않는 논리로 재도전을 하더니, 다들 예상한 대로 어정쩡한 승리를 거둔다. 이어지는 빌런의 감동 묻힌 죽음까지. 이거 제작사가 마블 엔터테인먼트인지 CJ 엔터테인먼트인지 묻고 싶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인공 이외의 사상들은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쇄국을 주장하던 구 원로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전통' 하나뿐이다. 미국을 능가하는 기술력과 부를 지닌 국가가 쇄국을 하기엔 너무나도 빈약한 이유다. 문호를 개방한다고 해서 전 세계에 스파이를 심어놓고, 미국보다 십 년은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가 무너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놈의 '전통'을 존중하기엔 그들의 말이 너무나도 꼰대같다. 무엇보다도, 그 원로들은 트찰라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거수기로 전락한다. 

    또다른 빌런 킬몽거의 입장은 더더욱 어처구니없다. 갑자기 나타나선 흑인인권을 부르짖는데, 영화 내에서 흑인들이 핍박받는 모습은 단 한차례도 묘사되지 않는다. 애초에 흑인 관객들을 상정하고, '너네 핍박받고 있지? 고통받고 있잖아! 그렇지? 내말 맞지?' 라고 부르짖는 듯한 빌런의 목소리. 그러다 보니 한낱 아시안인 본인의 눈에는 공허한 주장으로밖에 들리지 않고, 영화 내에서 빌런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하다못해 처음부터 그가 흑인 인권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면 모를까. 그의 첫 등장은 유물을 훔쳐 내고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퍼붓던 철없는 범죄자의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정치적 대립이 등장한다면, 그 대립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에 긴장감을 부여해야 한다. 마치 남한산성 속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처럼. 하지만 감독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실패했는걸 아는지, 여기에 복수귀라는 설정을 우겨넣어 긴장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것. 빌런의 무게감도,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주인공 트찰라의 무게감도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블랙 팬서가 처음 출판됐을 때, 편집자들은 '만화에 백인 캐릭터가 너무 없다. 백인 캐릭터 비중을 늘려라' 라는 피드백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피드백을 곧이곧대로 수용해 다음 편을 그려내는데, 그 내용은 블랙팬서가 KKK단을 응징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센스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아마추어스러웠다. 차라리 율리시스 클로를 메인 빌런으로 내세워 화끈한 액션 무비로 영화의 정체성을 정했다면 훨씬 더 볼 만한 영화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오직 비브라늄에만 관심을 갖는 유쾌한 악당 율리시스 클로가, 중2병 걸린 복수귀 킬몽거보다 배는 더 매력적인 빌런이었다. 어설프게 PC함을 방패로 내세워 본질을 잊는 영화보다는, 기존의 유쾌하고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마블이 그립다. 


총평 : 마블답지 않은 아마추어리즘. 6/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