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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Jun 28. 2018

무비 브릿지 - 변산

고향과 첫사랑과 지난 상처들

    몇몇의 축복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한둘쯤 있을 것이다. 반 친구들 앞에서 고백했다가 시원하게 차인다거나, 아니면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삑사리를 낸다거나 하는 에피소드들일 수도 있고, 존경하던 은사의 부고 직후 이어진 깊은 우울의 시간이라거나, 스트레스에 푹 잠겨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그런 한 해일 수도 있다. 혹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주인 할머니 몰래 과자를 훔쳤다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했던, 부끄러움의 기억일 수도 있으리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은 그런 과거와의 만남을 풀어낸다. 


    영화의 짜임새는 탄탄하다. 전반적으로 이준익 감독의 노련함이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를 구렁이 담 넘듯 넘나들며 관객들이 시종일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주인공을 래퍼로 설정한 것 역시 영리한데, 자칫 지루하거나 진부할 수 있는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비트와 여덟마디 랩으로 눙치고 넘어간다. 어설픈 감정연기나, 구구절절한 사연풀기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흥겨운 서사 전개다. 그렇게 관객들은 자연스레 주인공 학수에게 스스로를 투영한다. 

그에게 있어서 고향 변산은 마치 자신을 붙잡는 수갑과도 같았다

    고향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래퍼 김학수. 홍대씬에선 나름 유명하지만 막상 쇼미더머니같은 오디션장에선 희한하게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그는 여섯 번의 낙방 끝에 초라하게 고향 변산으로 되돌아간다. 그토록 원망해 마지않던 그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 한 통을 받고서. 

    변산은 슬플 만큼 그대로였다. 대충대충 일하는 경찰들은 애먼 학수를 보이스피싱범으로 납치하고, 그것도 모자라 서울로 올라가지도 못하게 묶어버린다. 노름판에 절어 있던 부친은 여전히 고스톱이나 하고 있고, 동창들은 어른이 된 건지 아닌 건지, 여전히 시골아이의 모습이었다. 


과거와 대면하는 학수

    학수는 그런 변산 속에서 차츰 과거의 자신과 대면한다. 어린 시절의 스스로와 자라 온 터전인 변산을 부정하고, 있는 힘껏 도망치기만 했던 학수였다. 하지만 그는 차츰 그가 사랑했던 동창, 괴롭혔던 친구, 그리고 끝끝내 원망하던 부친과의 만남을 통해 십년 전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세 인물들은 각각 그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 지난날의 과오, 그리고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차례차례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한다.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마지막의 공연 시퀀스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과거를 몸에 지닌 채 공연을 하는 학수는 잊고 싶은 지난 날들 역시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면을 바라보고, 비로소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고향을,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그 순간 학수의 공허하던 하늘은 고향의 노을빛으로 꽉, 차게 된다. 


총평: 이준익 감독의 노련함이 빛나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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