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인터넷이 어우러진다. 맛있는 오리엔탈 샐러드처럼.
촘촘하다. 영화를 다 본 후로 처음 든 생각이었다. 장면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모든 얼개가 맞춰진다. 다시 한 번 영화를 보면서 복선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영화였다. 마지 잘 짜여진 직소 퍼즐같은 영화. 그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영화의 두 번째 매력은 '가족' 이라는 고전적인 주제의식을 '인터넷' 에 맞추어 세련되게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가족이란 소재로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들을 소화해 낸다. 자식을 잃을 위기에 놓인 부모의 광기부터, 츤데레 아빠와 뒤늦은 후회, 부모를 잃은 자식의 끝없는 침전까지. 짧은 러닝타임 안에 스릴러로서 본분을 잃지 않고 그렇게 전개하는 감독과 각본가의 능력에 칭찬을 아낄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할 정도로 식상해진 이 메세지들은 '컴퓨터 화면' 안에 갇혀서 표현될 때 관객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영화를 같이 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관 화면으로 윈도우와 맥을 꽉 채워서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느냐' 고. 그 말 그대로,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컴퓨터 화면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제한된 화면은 오히려 각본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이정표가 되었고,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집중시킨다. 천재적이다.
영화 상에서 표현되는 인터넷 세상의 모습들이 우리가 평소에 겪는 그것과 별다를 것 없다는 점도 인상깊다. 사건이 이슈화되기 전과 후의 극명한 온도차, 별 생각 없이 툭 덧붙인 해시태그가 피해자에게 큰 해일이 되어 돌아오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없이 글을 써 올리는 급식이들, 인터넷 방송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저질스런 채팅들에 넷카마까지. 개중 몇몇은 싸이코패스로 보일 정도로 악질적인데, 더더욱 슬픈 것은 그런 인간들이 실제 디씨나 일베 등지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두세 페이지만 넘겨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영화의 본 주제인 '가족' 으로 돌아오자면, 소중한 아내를 떠나 보내고 이젠 딸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아버지의 필사적인 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상실은 늘 새로운 발견의 출발점이다. 그 새로운 발견이란 것들이 대부분 때늦은 것이라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이별한 후에 발견하는 옛 연인의 장점들이라거나, 그 사람에게 익숙해져 있는 나의 일상이라거나, 혹은 서로의 생각이 엇갈리고 있던 지점들까지. 분명 더 좋은 관계로, 분명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는데, 나의 짧은 생각으로 그러지 못했음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책하게 된다. 비단 연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가족, 또는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딸을 모른다. 딸은 그것을 느끼고 아버지를 멀리한다. 딸이 피하는 것을 느낀 아빠는 서운해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영화 초반부의 내용이다. 딸이 사라진 후에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딸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빠는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오늘도 자식이 걸어오는 말을 무시한 채, 브라운관 속 타인에게나 집중했던 어떤 부모는 그렇게 후회한다. 아침은 먹고 가라는 부모님의 말을 이어폰으로 막아 둔 채, 문 여닫는 소리만 남기고 집을 나서 핸드폰을 하던 어떤 자식은 그렇게 또 후회한다. 그렇게 스크린을 통해 멀어진 21세기의 가족들은 '스크린 속 스크린' 에서 서로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깨닫고, 다시금 가족에게 다가서게 한다. "아빠, 보고싶어요" 라고, 혹은 "딸아, 사랑한다" 라고.
이 부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 내적으로 자식을 잃는다는 공포에 휩싸인 부모의 광기이다. 영화에는 두 부모가 나온다. 데이비드 킴과 로즈마리 빅 형사. 둘 다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모들이다. 한 아버지는 애꿎은 저스틴 비버 팬보이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렸고, 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다른 이의 목숨까지도 희생시킨다. 사실 둘은 크게 다른 인물은 아니다. 극장에서 데이비드를 말린 다른 이들이 없었더라면, 동생이 데이비드에게 마리화나를 고백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 역시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야 말았을 테니깐. 다행히도, 그 마지막 선을 넘지 않았던 데이비드는 딸을 되찾았고, 그것을 넘어 버린 로즈마리는 아들을 잃었다.
반전이 공개되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아들을 위해서 거짓말마저 서슴지 않았다는 로즈마리의 대사를 떠올린다. 처음엔 같은 부모로서 건네는 위로라고 생각했고, 반전이 공개된 후에는 소시오패스의 기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문득, 어쩌면 로즈마리가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위로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본인도 자기 자식을 위해 광기에 휩싸여 있었으니깐. '당신 탓이 아니예요.' 라고 말하는 로즈마리의 대사가 어쩌면 본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로즈마리도, 데이비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미친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으니깐 말이다.
총평 : 우수한 스릴러. 7.5/10
P. S)
영화 내에서 그저 흘러갔지만,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다가온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초반부에 딸이 아빠와의 대화를 피하고 통화를 급히 끊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데이비드의 통화내역이 드러나는데, 수많은 영어이름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이름. "엄마". 데이비드의 엄마로부터 온 부재중전화였다. 데이비드는 그 이후로 엄마에게 전화를 다시 걸지 않았다. 딸에게는 어렵기만 한 아버지였던 데이비드 역시, 그의 엄마에게는 퉁명스런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