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들끼리, 지글지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뭔가 교육적이고 교훈적일 것만 같은 간판에 휩쓸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는 부모들에게 만류의 말을 먼저 전하고 싶다. 15세 관람가이긴 하지만, 부모자식이 오손도손 팝콘과 콜라를 나누며 볼 법한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대개 영화제 수상작이 그렇듯, 성적인 묘사나 폭력적인 묘사, 둘 중 하나는 나오기 마련이다. 당장 위 영화와 경쟁했던 작품이 다름아닌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이다. 영화에서 피분수를 뿜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류의 감독. 실제로 영화관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 둘과 함께 온 부모 관객의 얼굴이 불그죽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웠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큰 줄기는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등장인물들이 대사로 직접 말하지 않을 뿐이지, 이에 대해선 대부분의 관객이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다만 각 관객의 해석의 차이는 그 큰 줄기를 뒷받침하는 곁가지들에 있을 것이다. 메세지가 뚜렷하다는 것은, 극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짜임새 있게 전진함을 의미한다.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그것을 담는 카메라의 구도, 그 위에 덧씌워진 색감의 대비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주제의식을 지속적으로 보여 준다. 작중 등장하는 기택의 집과 연교의 집, 지상과 지하, 같은 공간 안에서 기택(송강호 분) 일당과 연교(조여정 분) 가족의 모습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또한 각 인물들의 말버릇들 역시 관객으로 하여금, '그치, 이 영화는 이런 메세지를 담은 영화지' 라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게 만든다. 그 짜임새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며, 찬사받아 마땅한 영화다.
주의 : 이 뒤로부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큰 주제는 계급 사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다. 상위 계층 사람들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하위 계층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뚜렷이 드러낸다. 하위 계층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기중심적이며, 늘상 비굴하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인다. 다만 상위 계층과 마찬가지로, 위쪽 계급의 인물들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로 생각한다. 그들을 성역시하며, 계급 상승을 위해 계급을 전복하기보다는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을 짓밟고, '그들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부조리한 사회에 순응하면서도 스스로의 이기심을 엉뚱한 방향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마치 대기업 편향된 경제구조에 순응하면서,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본인 외에 다른 이들을 모두 경쟁자로 여기고, 그들을 짓누르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한 소시민 같은 모습이다.
기택네 가족의 욕망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 의 커티스가 갖는 욕망과 유사성을 보인다. 부조리한 '열차' 라는 시스템에 의구심을 품기보단 그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불합리한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구조 자체에 불만을 품기보단, 그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든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는 욕망. 하지만 기택 일당의 욕망은 "설국열차" 로 치면 머리칸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 꼬리칸의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단백질 블록을 먹고자 했던 욕망일 뿐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비열하며, 때로는 추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설국열차"에는 기차의 밖으로 뛰쳐나가고자 했던 남궁민수와 요나라도 있었지만, "기생충" 의 인물들은 그것보다는 "길리엄"의 모습에 가까운 행동들을 보인다.
본작에서 커티스와 가장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은 박소담 배우가 분한 '기정'이다. 과외선생이나 운전기사, 가정부들을 몰아내고 연교네에 기생하는 가족들과는 달리, 기정은 당돌하게도 연교를 특유의 언변으로 구워삶고, 다송마저도 억누른 채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한다. 심지어 본인이 그 자리를 꿰찬 후에는 다른 가족들까지 연교네에 붙어먹을 수 있게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기생충'의 의미가 연교네에 기생하는 기택네 가족이 아닌, 기정에게 기생하는 나머지 구성원들로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들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던 기정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니 말이다. 같은 하류층과 아웅다웅하는 나머지 가족과는 달리, 상류층에게 도전해 월급을 따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꼬리칸의 사람들을 이끌고 한 칸 한 칸 나아가는 커티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연교네를 '착하신 분들', '선생님' 이라 부르는 다른 인물과는 다르게, '씨발년' 이라고 멸칭하는 패기는 또다른 매력이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남궁민수처럼 불공평한 계급구조 자체를 깨부수려는 시도는 하지 못하였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사실 영화 초반부에 비유적으로 드러난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기택.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정부나 기업 같은 거대한 존재가 아닌, 동네 피자가게 사장이다. 인건비도 아까워하는, 낡은 봉고차를 끌고 다니는 어린 사장. 심지어 휴가인지 그만 둔지도 모른 알바를 내쫓고 그 자리를 꿰차려는 기정과 기우의 모습까지. 하류층간의 치열한 꼬리물기가 엿보인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은 반지하방에서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그곳에서 가장 높은 자리, 화장실 변기통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반지하방에서 아주 약간,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반지하방에 위치해 있다. 심지어 변기통 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은 추하며, 화장실이란 장소는 그 반지하방에서도 가장 더러운 장소이다. 더럽고 추하게 올라 앉아, 지상의 와이파이에 기생해 핸드폰을 쓰는 그들의 모습. 영화의 완벽한 요약이다. 오직 기정만이 그 천장을 뚫어 담배를 숨겨두지만, 그녀가 담배를 피울 때, 물난리로 인해 똥물을 뒤집어쓰고 만다.
극중에서 드러나는 연교네 가족의 모습 역시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그녀의 집은 가부장적인 질서 하의, 다소 클리셰적인 부잣집 가족의 모습이다. 딸내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아들과 대화만 하는 박사장(이선균 분), 그런 그를 두려워하며, '이거 알면 능지처참이에요' 라고 벌벌 떠는 연교. 그녀는 부잣집 사모님처럼 뽐내기 위해 과시적으로 행동한다. 괜히 말 중간중간에 영어를 섞어 쓴다든지, 짜파구리에 한우 채끝살을 굳이 썰어넣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무구한 탓에 기택 일당의 수작에 넘어가고야 만다. 전형적인 골비고 예쁜 부잣집 사모님 클리셰. 헐리우드 영화였으면 아마 가슴 큰 여배우가 금발을 하고 나왔을 것이다. 딸 다혜는 딸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소외됐다. 그녀에게 누구도 짜파게티 한 입을 권하지 않으며, 가족 구성원중 누구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과외선생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들을 유혹한다.
막내둥이 다송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인 해석으로, 다송은 '빼앗긴 가난'을 상징한다. 그는 미제 인디언 텐트에서, 인디언 놀이를 한다. 쫓겨나고 죽임당했던 미국의 '피지배 계급' 이었던 인디언에 심취했으나, 결국 지배계급인 '미국 자본가' 가 만든 텐트에 살며 그저 흉내만 낼 뿐이다. 컵스카우트에서 인디언 문화와 모스 부호를 배웠지만, 진짜 하위 계급인 명훈이 지하실에서 보내는 모스 부호는 그에게 닿지 않는다. 마치 모 시장이 자기 구두 밑창을 부러 뜯어내고, 굳이 옥탑방에 들어가서 한 달을 보내는 모습처럼. 모 정치인이 고작 하루 '서민 체험' 을 하고, '황제 식사' 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처럼, 다송은 인디언의 표면적 모습만을 취해 유희로 삼는다. 그 이면의 상처와 눈물은 그에게 닿을 수 없다.
이렇듯 정상적인 인물 하나 없는 극에서, 기택 일당이 끝끝내 시스템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그 구조의 위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달콤한 과실의 유혹 때문이다. 이를 뚜렷하게 보여 주는 인물은 바로 기우이다. 물난리가 난 와중에도 가족사진이나 다른 소중한 물건이 아닌 '수석' 을 들고 나오면서 "이것이 자기에게 온다" 고 말하는 아들내미. 다혜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이 비웃던 친구처럼 '대학교 가면 정식으로 사귀자고 할 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모지리. 가장 소시민적이던 기우는 결국 그 욕망의 상징인 수석으로 명훈네를 죽이려고 하지만, 오히려 본인이 그 욕망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만다.
결국 결말부에서 이들은 커티스의 모습을 보인다. 박사장을 찔러 죽이는 기택. 집의 외부에서 박사장네 집을 내려다보는 기우. 하위 계층간의 경쟁이 아닌, '무계획'과 무기력이 아닌, 상위 계급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기우의 다짐. 그들은 이제 '지상'으로 올라갈 준비가 된 것이다. 기정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들은 변화한다. 다만 봉준호 감독의 메세지가 '무계획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세요' 는 분명 아닐 것이다. 기우는 절대 그 집을 살 수 없을 것이고, 기택은 평생 지하실에서 모스 부호를 눌러대며 살아야 할 것이니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그저 보여 준다. 프라이팬 안에서 서로 지지고 볶는 콩알들의 모습을. 그러면서도 절대 프라이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가더라도 그저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박힐 뿐인 그 모습들을 말이다.
총평 : 봉준호 감독의 역작 .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