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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BRIDGE Sep 14. 2016

무비 브릿지 - 카페 소사이어티

과거의 내가 말을 걸어올 때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들은 매 순간순간 변화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나는 ~다." 또는 "이것은 ~다." 라고 절대 정의내릴 수 없다고 말이다. 누가 했던 말인지도,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도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이야기 하나만큼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 내가 그렇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설명할 때 "이 시점에서 나는 이랬었다." 라는 정도의 설명밖에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마저도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잊어버린 채로 살아간다.


    우디 앨런의 신작 "카페 소사이어티" 는 우연히 그런 '잊어버렸던 순간'을 마주하게 된 남녀를 보여 준다. "박하사탕"의 영호가 순임을 병실에서 마주했을 때 느꼈을, 그런 감정을 조금 더 파고들어가는 느낌이다.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상경하듯, 꿈을 안고 온 바비. 그는 대형 에이전트인 삼촌 아래에서 일을 배우며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을 꿈꾼다. 비벌리힐즈의 대저택들을 보며 감탄하는 그의 모습에서 성공을 향한 열망이 느껴진다. 그는 뉴욕에서의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배우들, 감독들과 함께 하는 반짝이는 삶을 동경하는 청년이었다. 그의 삶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공황 한복판의 뉴욕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을 테니까. 영화의 초중반에서 묘사되는 뉴욕 시의 모습은 대부분 어둡고, 칙칙한 색감으로 드러난다. 바비는 아마 좀 더 생기있고 활력 넘치는 삶을 살길 원했을 것이다 .

    반면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추구하는 보니의 모습은 바비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살던 할리우드는 줄곧 황금빛 색감으로 묘사된다. "위대한 개츠비" 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나온 그런 파티들이 매일 열리는 곳. 아침에 일어나 커피가 아닌 샴페인과 베이글을 같이 마시는 곳. 그런 황금빛 향락 속에서 살던 보니는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두움까지도 보게 되고, 점점 소소하고 정갈한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하면서 바비 역시 그런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박한 삶을 꿈꿀 때, 바비는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둘은 헤어지게 되고, 영화의 무대는 뉴욕으로 옮겨간다. 그 곳에서 바비는 한 나이트클럽의 매니저가 되고, 할리우드에서의 인연 덕에 그는 승승장구한다. 그가 운영하는 클럽은 어느덧 정재계의 유명인사들과 수많은 셀레브리티들이 함께하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보니와 함께할 때는 화려한 삶에 이제는 지친 듯,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던 그가 결국엔 할리우드 못지 않은 화려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명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바비의 아버지는 보석상을 운영하고 있었고, 어릴 적부터 반짝이는 것들만을 보면서 자란 그가 화려하게 빛나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게 그는 그의 삼촌 못지않은 화려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까지 꾸린다.

    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한 할리우드 부자의 사모님이 되어, 그토록 경멸하던 모피 코트를 걸친 채, 연예인 가십을 주고받는 (바비와 보니 기준에서)한심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순수함을 잊은 상태였던 둘은 바비의 카페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각자의 가정을 가진 채로. 보니를 처음 만났을 때 바비가 느낀 감정은 실망, 그리고 경멸이었다. 보니가 다가오자 바비는 절규한다. "왜 그렇게 살고 있는 거냐"면서. 그에 대한 보니의 대답, "사람은 변하잖아."

    그렇게 악몽 같은 재회를 한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순수했던 순간들을 추억한다. 파티장 대신 소박한 식당에서의 한 끼, 스테이크나 랍스터 대신 미트볼과 스파게티를 나누며 그들은 지난 날들을 함께 공유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 역시 다시 나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처음 사랑할 때의 모습과, 재회한 이후 다시 사랑을 속삭일 때의 모습은 약간 다르게 보인다. 분명 똑같이 키스를 하고, 평범한 대화를 나누지만 어딘가에서 계속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이후, 둘이 식당에서 미트볼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을 때 나타난다. 영화에서 거의 처음 등장하는 거울 씬.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 먹는 모습이 거울에 비쳐져서 나오다가, 실제 모습으로 다시 나온다.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그들이 그리워했던건 서로가 아닌, 서로와 함께할 때의 순수했던 자신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이미 너무 많은 갈림길을 지나쳐 온 탓에, 그 때로 어떻게 되돌아가는지조차 잊어버린 그들에게 서로는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그 장면이 잘 드러난다. 결국 그들이 살고 있는 시점은 현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란 너무 힘들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도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때론 명절날 만나게 되는 어린아이들로부터, 때로는 대청소를 하다 찾은 옛 물건들로부터,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오래 된 작품들로부터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 헤어진 연인이 그리운 이유도 이와 비슷할 때가 있다. 지난 연인이 아닌, 그 사람과 함께일 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주한 과거는 분명 달콤하지만, 결국 그것은 꿈일 뿐이고,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밥 말리의 명언이 이 글을 마치기 제격일 것 같다.

Live the life you love, Love the life you live

총평: 잔잔한 울림을 주는 영화.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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