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트와일라잇 시티] 7화

Chapter 7. 빛을 차지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by 이진성

트와일라잇 시티 7화


아침의 공기는 유리창 너머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눈을 뜨자 호텔 방 안은 아직 반쯤 어둠에 잠겨 있었고 커튼 사이로 햇빛의 빛줄기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천천히 커피부터 내렸다. 뜨거운 김이 일며 방 안의 차가운 공기를 밀어냈다. 손끝에 닿는 온기는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지만 머릿속 깊은 곳에서는 오늘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 계속 맴돌았다.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번지는 빛이 구름 사이를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일출이다. 떠오르는 태양으로 샤이닝 시티의 건물들은 그 빛을 받아 반짝였고 어두웠던 그림자들은 조금씩 물러났다. 그러나 그 빛은 아직 섀도우 시티까지 닿지 못했다. 저 멀리,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그림자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두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결코 이어질 수 없음을 증명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나는 한 모금 커피를 마시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오늘 모든 게 달라질지도 몰라.'

회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이 목덜미를 서서히 조여왔고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의 대화 하나가 나 자신과 섀도우 시티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었다. 커피잔을 비운 뒤, 외투를 걸치고 호텔을 나섰다. 아침 햇살은 도시의 유리벽들을 날카롭게 반사하며 쏟아져내렸다. 샤이닝 시티의 중심부로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 바빠지고 공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차로 천천히 이동하다보니 멀리서 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을 닮은 둥근 돔 모양의 솔라곤. 그곳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돔은 1년 내내 불빛이 밝게 빛나는 건물이었으며 샤이닝 시티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는 곳이었다. 또한 샤이닝 시티의 심장부이자 상징같은 곳이었다.

입구가 가까워질수록 경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여전히 흰색 제복을 입은 정부 관리들이 지나다녔고, 그 주변에는 검은 전투복과 전투 장비를 갖춘 군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매달린 소총과 눈을 가리는 검은 헬멧이 햇빛에 번쩍였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입구 앞을 지키는 군인들과 나를 스캔하기 위해 다가오는 드론이 나를 맞이했다. 그 앞에서 기다리는 군인들의 눈빛은 헬멧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양옆에 서 있던 군인들의 시야는 동시에 나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의 검은 헬멧 뒤에서 어떤 눈빛이 날 꿰뚫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경계일까, 아니면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 불확실함 속에서 내 심장은 요동쳤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발자국을 이어갔다. 바닥에 울려 퍼지는 구두 소리는 차갑게 메아리쳤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소리마저도 마치 내 존재를 드러내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인 거대한 원형 홀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각 자리마다 정부 고위 인사들과 군 대장들이 이미 앉아 있었다. 그 외에 각 부대의 중장들도 몇몇 참석해 있었다. 나는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아직도 규칙을 잃은 듯 뛰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않아서 천천히 주변 인물들의 얼굴을 살펴봤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터널사령관 데시오스 대장이었다. 확실히 우월한 DNA를 가진 존재답게 그의 키와 체격은 주변 인물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의 부대는 이터널이라 불리는 초월적 존재들로만 구성된 비밀 정예 집단. 아직까지는 전투에 투입되는 일은 드물었지만 시티 마스터와 최고위층을 곁에서 지키는 가드 역할을 주로 하고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시선을 멈추고 조용히 내가 있는 쪽을 훑어봤다. 눈빛은 검은 헬멧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그 옆에는 기갑전략사령관 로건 대장이 있었다. 전차와 장갑차, 중화기를 다루는 그의 부대는 전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화력 지원과 방어선을 맡아내며 도시의 가장 두터운 방패이자 주포 같은 존재였다.


그 옆에는 드론전략사령관 테사레스 대장이 앉아 있었다. 그의 부대는 특이하게도 본인과 한 명의 중장, 그 외의 연구 개발자들을 제외하면 전원이 무인 드론으로 이루어진 부대다. 주로 전장에서 하늘을 지배하며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드론을 통제하는 그의 존재감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마저 무너뜨리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육상 전투 드론들도 개발에 들어가며 기갑전략사령관의 역할과 겹치기 시작하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그 다음은 도시방위사령관 제로 대장. 견고한 체구와 군인다운 거친 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부대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군대였다. 도시와 도시가 충돌할 때 가장 먼저 전선에 투입되는, 말 그대로 군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부대였다. 정석적인 전술과 압도적인 병력 동원 능력이 그의 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인저사령관 로제 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장 중 유일한 여자인 그녀의 존재는 다른 대장들과 달리 은밀했다. 뛰어난 저격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임무는 공식적 전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첩보, 암살, 비밀 임무 등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그의 부대는 가장 두려운 존재 중 하나였다.

잠시 후, 시티 마스터 바레우스가 걸어 나오면서 모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금빛의 단정한 제복과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걸음. 그의 등 뒤에는 솔라곤의 상징인 황금빛 태양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회의를 시작하겠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으며,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우선, 제임스 사건과 관련된 내용부터 보겠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논의할 것이다."


그 순간, 원탁에 앉아 있던 몇몇 관리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화면에 자료가 투영되며 제임스의 탈출 장면과 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이 기록처럼 펼쳐졌다. 시티 마스터의 손짓에 따라 도시질서관리부의 한 행정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임스는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 만에 발견된, 매우 우월한 DNA 구조를 가진 자였습니다. 일반적인 참가자와는 달리 상황 판단 능력과 순발력, 그리고 신체적 조건 모두에서 비정상적으로 탁월했습니다."


홀 안의 화면이 켜지며 제임스가 시설 내부를 돌파하는 장면이 재생됐다. 군인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마치 훈련된 전사 같았다.

행정관은 스크린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를 생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섣불리 무력을 사용하다가는 그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몇몇의 시선이 군 쪽으로 날카롭게 향했다. 군인들은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그 무게는 명백히 느껴졌다.

"그리고 제임스가 탈출하던 당시, 지원을 위해 투입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보안본부의 이든 맥스웰 본부장입니다."

그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회의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모였다.

"보고에 따르면 제임스가 돌파하던 그 시각, 당신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나 장교는 한 발 더 다가오며 말을 이어갔다.

"군 내부에서는 이런 의혹이 있습니다. 혹시 당신이 그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아닌가?"


순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든 시선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교의 목소리는 더욱 단호해졌다.

"수십 년 전에도 한 차례 탈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보안본부 기술개발팀장이 우수한 스펙을 가진 참가자들을 이끌고 큐브 시스템을 이용해 함께 집단으로 탈출을 감행했었죠."


순간 회의실이 술렁였다.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오래된 사건이 언급되자 모두의 시선과 귀가 그쪽으로 쏠렸다. 그 당시 기술개발팀장이 왜 이든 맥스웰과 충돌했는지, 그리고 왜 일부 참가자들을 데리고 함께 탈출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는건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숨겨진 진실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은 마치 내가 제임스의 탈출을 도왔던 그때와 닮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본인들의 관리 부실을 인정했고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지금까지.."

행정관은 태블릿을 가볍게 탁자 위에 내려치며 강조했다.

"보안본부가 도주하는 자를 놓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는 말이죠."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회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내게 몰려왔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재판정 위에 서 있는 듯, 내 심장은 규칙을 잃고 뛰었다.

행정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우린 묻고 있습니다. 제임스가 어떻게 이 모든 보안망을 뚫고 나갔는지.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당신은, 그 순간 무슨 역할을 했는지."


잠시 침묵이 있은 후에 숨을 고르는 순간조차, 모두가 심문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차갑게 대답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큐브 시스템조차 뚫고 도망친 합당한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먼저 제게 책임을 묻기 전에, 그렇게 중요한 자였다면 애초에 더 철저히 지켰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순간 회의실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장교의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스쳤다.

그가 낮게, 그러나 똑똑히 들리도록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잡지 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원탁 주위를 돌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 섀도우 월 바로 옆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 단어가 입에 오르는 순간,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옆은 섀도우 시티지요. 내가 알기로는..”

행정관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큐브 시스템은 두터운 섀도우 월조차 통과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칼날 같았다. 숨겨져야 할 비밀이 공공연히 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순간, 내 등골을 타고 한기가 흘렀다. 나는 손끝을 움켜쥐며 표정을 굳혔다. 그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단순한 추측일까, 아니면 이미 내 존재에 닿아 있는 걸까?


나는 눈썹을 좁히며 목소리를 낮췄다.

"설마 내가 일부러 그를 도왔다는 겁니까? 내가 그를 도와서 얻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행정관은 잠시 침묵하더니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박혔다.

"뛰어난 DNA가 더 많이 모일수록 군대가 더 강해진다는 걸 의식했을 수도 있겠지요."


순간, 어제 진짜 맥스웰이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강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병력의 증가가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반문했다.

"군대가 강해지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러자 행정관은 어깨를 으쓱하며 짧게 대답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보안본부는 그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공기가 묘하게 흔들렸다.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시티 마스터가 손을 들어 대화를 제지했다.

"그만."

짧은 단어 하나가 회의실의 모든 소음을 잠재웠다.


그는 잠시 사람들을 둘러본 뒤,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번 탈출 사건은 제임스의 행방과 그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우선적으로 더 조사하는 것으로 하겠다."

그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룰 다음 문제는..."

시티 마스터의 시선이 원탁을 가로질러 나를 스쳐 지나갔다.

"큐브 시스템의 군 사용 권한에 관한 것이다."

순간, 회의실 안의 공기가 다시 한번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티 마스터가 의제를 전환하자, 기다렸다는 듯 도시방위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큐브 시스템의 사용 권한을 이제는 명확히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큐브는 오직 보안본부에서만 다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독점일 뿐입니다. 왜 군은 배제되어야 합니까?"


탁자 위의 자료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그는 힘주어 말했다.

"군은 직접 전장을 지휘합니다. 병력의 손실을 줄이고 더 빠른 작전을 수행하며 더 강력한 방어력을 확보하기 위해 큐브 시스템은 반드시 군의 손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도시 전체의 안전을 지키는 길입니다."

다른 장교가 곧바로 거들었다.

"보안본부는 언제나 위험을 이유로 독점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제임스 사건에서 드러났듯, 그들의 통제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사람의 돌발 행동조차 막지 못한 조직이, 과연 큐브 시스템을 독점할 자격이 있습니까?"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흔들렸다.

나는 바로 반발하며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군의 요구는 위험합니다. 큐브 시스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닙니다. 그 사용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하며.."

"제한? 아니, 독점에 가깝지."

장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끊었다.


도시방위본부 중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는 이 도시를 위해 싸우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가장 중요한 기술은 언제나 도시 내부에 갇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 아닙니까?"

순간, 시선들이 다시 원탁을 가로질러 나를 향했다. 나는 침묵 속에서 커다란 압박을 느꼈다. 그들의 논리, 그들의 욕망,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 모두가 큐브 시스템이라는 단어에 쏠려 있었다.

한 장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보안본부가 큐브 시스템을 독점하는 것은 단순한 통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도시 내부의 권력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려는 시도입니다."

그의 말에 다른 장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보탰다.

"군은 언제나 도시를 지키기 위해 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기술은 단 하나의 조직만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위험 아닙니까? 도시가 위협받을 때, 우리 군은 손발이 묶인 채 바라만 봐야 합니까?"

그들은 곧장 시선을 돌려, 회의실에서 홀로 앉아 있는 이든을 겨냥했다.

"보안본부는 늘 안정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안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가림막일 뿐입니다. 군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내고, 결국 도시의 권력을 독점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순간, 회의실의 공기는 날카롭게 갈라졌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아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탁자 위에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군이 말하는 안정은 힘의 균형이 무너진 뒤에 오는 폭력일 뿐입니다. 큐브 시스템이 군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오히려 도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군의 권력 욕망이 도시를 집어삼킬 테니까."


도시방위사령관이 즉각 맞받았다.

"욕망? 웃기는군. 우리는 도시를 위해 싸운다. 하지만 보안본부는 언제나 그림자 뒤에 숨어, 정보를 독점하고 기술을 숨기며 권력을 불려 왔다. 그 결과가 수십 년 전 있었던 탈출 사건아닌가? 당신들만의 통제는 이미 실패했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군과 보안본부, 양쪽의 논리가 충돌하며 공간 전체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그 순간, 시티 마스터가 손을 들어 올리자 웅성거림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충분하다. 이제 양쪽의 주장은 확인했다."

시티 마스터가 천천히 손을 들어 회의실을 제압했다.

"큐브 시스템과 군 사용 권한 문제는 여기서 결론을 내지 않는다. 중앙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논의한 뒤,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겠다."

그 말에 군 장교들은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더 이상 반박하지는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시티 마스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다. 사실 이 회의를 급하게 연 이유도 여기에 있지. 군에서 보고받은 한 가지 이상한 점 때문이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모두가 무슨 말이 나올지 숨을 죽였다. 시티 마스터는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바로, 이든 맥스웰에 관한 것이다."

그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순간적으로 가늘게 흔들렸다. 시티 마스터의 목소리가 낮지만 분명하게 울려 퍼졌다.

"이든 맥스웰은 최근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간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그는 자료 패널을 손짓하자, 화면에 기록이 나타났다.

"다른 도시로 출장 중이어야 할 그가, 이곳 샤이닝 시티에서 로그인 기록을 남겼다."

회의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군 장교들의 눈빛이 번뜩였고, 관리들 사이에서도 억눌린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겠나, 이든?"

시티 마스터의 물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모든 시선이 이제 나에게 향했다.

나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록은 아마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킨 결과일 겁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시질서관리부의 행정관이 테블릿으 영상을 공유하며 단호히 맞섰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손짓을 하자, 홀 중앙의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이건 당시 연구 시설의 로그인 후 안정을 취하는 대기실의 CCTV 기록입니다. 보십시오. 로그인 직후, 분명히 당신이 시설 복도를 걸어 나오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화면 속에는 이든 맥스웰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걸음걸이의 인물이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로 나였다. 회의실은 일순 술렁였다.

그는 이어서 서류를 내리치듯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게다가 그 시간, 이든 맥스웰 본인은 다른 도시의 회의실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순간, 시선들이 혼란스레 오갔다. 그는 또 다른 자료를 띄웠다. 항공편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든 맥스웰의 이름으로 발급된 전용 항공기 탑승 기록도 있습니다. 그는 분명 샤이닝 시티를 떠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곳에서도 활동한 흔적이 있습니다."

회의실은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행정관이 마지막 말을 던졌다.

"이건 마치.. 두 명의 이든 맥스웰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행정관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이어갔다.

"우선, 새로운 로그인은 기존 육체의 폐기를 원칙으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혼란이 생긴다. 그런데 최근 기록은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중대한 규정 위반이자, 체제에 대한 위협이다."


회의실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반박했다.

"내가 무슨 이유로 두 명의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합니까? 만약 진짜로 두 명의 내가 존재한다면,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그 두 사람을 직접 대면시키는 것 아닙니까? 애매한 기록으로 몰아가지 말고, 눈앞에서 증명해야 할 일입니다."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정관은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이든 맥스웰."

그때 이터널사령부 중장이 내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

"우리가 큐브 시스템의 진정한 위력을 계속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그 한마디에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회의실 안의 공기는 단숨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터널 사령부 중장은 천천히 원탁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큐브 시스템의 진정한 힘은 이미 우리 고위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정보 수집을 위해 기다린 것뿐이지."


순간,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관리들 몇몇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군 장교들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눈빛이 스쳤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큐브 시스템은 잘못 사용하면 한 도시조차 멸망으로 몰아넣을 만큼 강력하다. 동시에, 반대로 한 도시를 새로 세울 정도의 무한한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사령관의 목소리가 더 날카롭게 가라앉으며 말했다.

"혹시 본인과 같은 큐브 시스템 권한을 가진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 우리를 배제하고 반역을 꾀하려는 건 아닌가?"


회의실이 술렁였다.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지만, 표정만큼은 굳게 유지했다.

"내가... 반역을?"

나는 낮게 되물었다.

사령관은 내 반응을 살피더니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 권한을 가진 자가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이다. 반역의 의도가 있든 없든, 이미 위험 요소라는 말이다."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 꽂혔다. 숨결 하나조차 무겁게 가슴을 누르는 듯했다.

그는 날카롭게 내 시선을 꽂았다.

"오래전부터 당신이 우리와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언제나 독단적이었고 보안본부의 이익만을 우선시했다."

나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보안본부는 안전이라는 말로 큐브 시스템을 독점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가 드러났다. 보안본부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도시를 지켜낼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터널 사령관은 곧이어 단호히 선언했다.

"현재 이든 맥스웰이 두 명 존재한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기 전까지, 당신, 이든 맥스웰을 구금하기로 결정한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단호한 힘이 담겨 있었다.


"당신이 진짜 이든 맥스웰인지, 아니면 최근 복제된 자인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밖에 있는 이든 맥스웰도 곧 체포 명령이 전달될 거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쾅! 거대한 회의실 문이 열리며 무장한 군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발소리는 차갑게 울렸고,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소총의 총구가 일제히 나를 향해 들려졌다.

"이 시간부로, 당신을 체포한다."


이터널 사령관 중장의 말과 동시에, 군인들이 내 주위를 빙 둘러 감쌌다. 헬멧 너머로 보이지 않는 눈빛이 나의 숨결을 파고들었다. 순간, 온몸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감각이 몰려왔다. 큰일이다. 큐브 시스템을 사용해 빠져나가기도 전에, 총알이 먼저 날아올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 버린다. 프로젝트는 군과 정부가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고, 큐브 시스템조차 그들 손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깨달았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우선 그들에게 잡혀가는 수밖에...


한 군인이 내 뒤에서 차가운 전자 수갑을 채웠다. 금속이 손목을 조이는 순간,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내 손목에 붙어있던 큐브 시스템 조작장치를 압수해 갔다. 군인들의 호위 속에 복도를 따라 끌려 나가며 나는 단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복도로 끌려난 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몇 명의 군인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 손에는 총을 잡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곧이어 띠링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군인 몇명이 먼저 올라탔고 이어서 나와 나머지 군인이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안 바닥이 갑자기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갈라지며 출렁거렸다.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든 맥스웰이 근처에 있다!


군인들이 눈치채고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엘리베이터 바닥은 사라졌고, 안에 있던 군인들은 비명조차 짧게 지른 채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밖에 서 있던 병사들과 나는 떨어지는 군인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한 군인이 '이든 맥스웰이다!' 하고 외쳤다. 그 순간 그들의 발밑마저 큐브 조각처럼 갈라졌다. 모두가 하나둘씩 아래로 떨어져 갔다. 그리고 오직 나 혼자만 남았다.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 바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힌 후에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몇 층을 지나 멈추더니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몸을 옆으로 붙인 채 경계하며 밖을 살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든 맥스웰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방금 전 추락했던 군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떨어진 충격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든 맥스웰은 천천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방금 전 회의 내용을 전했다.

"그들이 우리를 반역죄로 몰아세우고 있어. 그리고 큐브와 프로젝트까지 전부 빼앗으려고 해."

그는 예상한 일이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우리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들이 내 큐브 컨트롤 패드를 가져갔어."

그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린 그런 장치가 없어도 큐브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어. 생각과 의지만으로도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지. 보안요원 중에서 나를 포함해 부본부장과 에이스 팀장 이렇게 3명만 가능하지. 한 명 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긴 했지만.. 어쨌든 아마 너도 나와 같은 권한을 가졌으니 가능할 거다."

"생각만으로 작동시킨다고? 어떻게 하는 거지?"

그는 단호히 답했다.

"큐브 시스템을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떠올리고 정신을 집중하는 거다. 그러면 네 생각이 곧 현실로 구현될 거다."

"정말 그게 가능한 거야? 그런데 왜 다른 요원들은 그렇게 못하는 거지?"

"큐브의 힘을 직접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은 지금까지 별로 없었어. 큐브의 선택은 언제나 네 명을 넘지 않지. 한때는 대부분 죽고 나와 기술개발팀장 단 두 명만 남기도 했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잠시 밖의 상황을 살피던 이든 맥스웰이 입을 열었다.

"우린 보안 본부로 간다. 큐브가 그곳에 있거든. 그렇기에 군에서는 먼저 보안본부를 장악하려 할 거다. 그걸 막아야 해."

나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의 눈빛이 어둡게 흔들렸다.

"정부와 군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결국 전면 충돌이 일어날 거다. 도시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이들이 희생될 거다. 그리고 연구시설에 있는 캡슐에 갇힌 합격자들도 대규모로 그들의 로그인 재료로 사용되겠지."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고?'

그 말에, 문득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클레리아...!"


섀도우 월이 닫히기 직전, 제임스는 분명 클레리아가 그 연구시설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그녀가 아직 캡슐 속에 있다면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몰랐다.

"클레리아? 프로젝트 테스트 때 만났던 여자를 말하는 건가?"

이든 맥스웰이 물었다.

나는 곧장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너는 클레리아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미 테스트 당시의 영상을 전부 살펴봤다. 프로젝트 총책임자로서,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

그의 말은 맞는 것 같았지만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녀를 살리고 싶은 거지? 마침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프로젝트 연구시설로 가는 거다. 그곳을 봉인해 군인들이 로그인하지 못하도록 막는 거지. 만약 그들이 로그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이 제 몸으로만 맞서야 한다면 결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을 거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네가 그 일을 해낸다면, 그녀를 구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굳게 다문 입술로 그를 바라보았다. 클레리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순간 이미 선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곧 군인들이 보안본부로 들이닥칠 거다. 보안요원들이 저지하겠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큐브 시스템 권한은 우리보다 훨씬 제한적이야. 우리가 서두르지 않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나는 그의 말에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난 무조건 클레리아를 살려야 해. 연구시설로 가겠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든 맥스웰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일을 끝내고 반드시 살아남아서 보안본부로 최대한 빨리 와야 한다."

그리고 그는 큐브 시스템을 발동해 벽에 생긴 통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등을 돌리며 말없이 다른 길로 사라졌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