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빛에서 다시 그림자로 향한 질주
이든 맥스웰과 헤어진 뒤, 나는 거리를 배회하던 무인 택시 한 대를 붙잡아 세웠다. 문이 열리자 바로 운전석에 앉았아 시스템을 했다.
“자율 주행 해제. 수동 운전 모드 전환.”
내 권한이 인식되자 계기판의 표시가 바뀌었고 숨겨져 있던 핸들이 앞으로 펼쳐졌다. 나는 곧바로 액셀을 밟았고 무인택시는 빠르게 가속하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프로젝트 연구시설이었다.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자, 정면 입구 쪽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비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갔고 감시가 비교적 느슨해 보이는 뒤편 구역으로 차를 몰았다.
건물 뒤편 담장 아래에 도착한 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담장 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맥스웰이 말한 대로 정신을 집중했다. 숨을 고르고 큐브 시스템을 사용해서 어떻게 움직 일지를 떠올렸다. 몇 초동안은 변화가 없다가 순간 주변 벽면이 수많은 정사각형 조각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퍼즐처럼 해체되던 조각들은 순식간에 재구성되며 새로운 통로를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 장치를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오직 정신으로 시스템을 다룰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이로 들어가 연구 시설 내부로 조심히 들어갔다. 안쪽은 생각보다 고요했지만 군인 몇 명이 여전히 최소한의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중, 통로 한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른 뒤,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로비쪽을 경계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도착전에 한 군인이 나를 발견했다.
"이든이다! 이든 맥스웰이 여기 있다!"
곧 여러 명의 군인들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재빨리 큐브 시스템을 작동시켜 그들과 나 사이에 거대한 벽을 세웠다. 이제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접근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틈에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무전기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이든 맥스웰이 1층에 나타났다!"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이동 중이다!"
지하 10층, 연구실 문 앞을 지키던 한 군인은 본능적으로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총을 움켜쥔 채,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마자 총구를 문에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곧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주저 없이 총을 난사했다. 총성은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고 스파이크가 엘리베이터 내부를 가득 메웠다. 탄창을 전부 소모한 후, 군인은 숨을 몰아쉬며 방아쇠에서 손을 뗐다. 그는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바닥이 정사각형 조각들로 갈라지며 출렁거렸다. 바닥은 순식간에 해체되더니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발 밑이 무너져 내리며 그는 그대로 더 깊은 지하 아래로 추락해 갔다.
닥이 원래의 형태로 복구되자, 이번에는 엘리베이터의 천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열린 틈 너머로 어둠이 드리워졌고 그 속에서 이든 카터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흩어져 있던 큐브 조각들이 다시 맞물리며 천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시간이 없다.'
나는 곧장 캡슐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문은 잠겨 있어서 패널에 손바닥을 대어 잠금장치를 해제하려 했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정부쪽에서 이든 맥스웰의 권한을 차단해 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문을 향해 집중했다. 곧 문 중앙에서부터 격자무늬가 일렁이며 퍼져 나갔다. 곧 큐브 조각들로 갈라지며 그 틈이 통로를 열었다.
나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 나서 흩어져 있던 큐브들이 다시 합쳐지며 문을 감싸더니, 이전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한 벽으로 변했다. 이제 이 입구로 누군가가 들어오는건 한동안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깊게 숨을 고르며 어둠이 깔린 내부를 바라보았다. 차갑고 고요한 실험실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캡슐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눈은 감겨 있었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먼저 클레리아의 위치를 찾으려면 관리실에서 조회를 해야 했다. 캡슐 사이로 몸을 낮추며 지나가는 연구원들과 군인들의 시선을 피해 조금씩 이동했다. 지나가는 연구원들의 발자국 소리, 구역을 순찰하는 군인들의 발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려왔다.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붙이고 시야가 비는 순간을 기다려 조금씩 전진했다.
관리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 있던 연구원 두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이 무언가 행동하기도 전에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벽을 생성했다. 순식간에 벽이 솟아올라 그들을 완전히 가두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나는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보안 화면이 짧게 깜빡이더니 이내 검색창이 열렸다.
[신원 조회: 클레리아 홀로]
우수 DNA 일부 이식 완료.
로그인 일정: 미정
위치: 2B-1004
그녀의 DNA 일부가 우수 인자로 교체되어 있었지만, 아직 로그인 대상이 확정되지 않아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나는 그제야 안도하며 관리실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 순간 들어오려는 연구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상황을 파악하던 연구은 곧장 비상벨을 눌렀고 삽시간에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를 밀쳐내고 복도를 빠져나가 곧장 클레리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위치는 지하 2층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지하 10층. 지하 2층까지 올라가려면 계단을 이용하거나 옆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야 했다. 층고가 워낙 높아 곧장 리프트로 향했다. 그러나 앞쪽에서 군인 두 명이 총을 들고 달려오더니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재빨리 캡슐 뒤로 몸을 숨겼다. 총탄이 캡슐 유리관에 명중하며 깨진 틈새로 물이 새어 나왔다.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 큐브 시스템을 발동시켰다. 진행 방향에 넓은 벽들을 생성해 방패 삼으며 리프트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거의 다다랐을 때, 옆 계단에서 튀어나온 군인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재빨리 근처 캡슐 뒤로 몸을 숨긴 뒤, 그의 발 밑 공간을 열어서 밑층으로 떨어뜨렸다. 군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는 곧장 리프트 호출 버튼을 눌렀다.
리프트가 내려오는 동안 군인 두 명이 다시 내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 사이 리프트가 도착하자마자 탑승해 지하 2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곧 달려온 군인 두 명이 리프트 안을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리프트는 개방형이라 큐브 시스템을 다시 발동해 앞에 벽을 세웠다. 총탄이 벽에 부딪히며 튀었지만, 나는 무사히 지하 2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클레리아가 있는 캡슐로 향했다. 숨을 몰아쉬며 전속력으로 지나치는 동안 캡슐마다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빠르게 확인했다. 수 많은 캡슐들을 지나친 끝에, 마침내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클레리아였다. 그녀의 몸에는 산소 호흡기와 DNA 이식을 위한 선 하나가 이어져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큐브 시스템을 발동했다. 캡슐 유리 일부가 얇은 큐브조각으로 나눠지며 구멍이 생겼고 안에 가득 차 있던 액체가 쏟아져 나오자, 나는 서둘러 그녀를 붙잡아 넘어지지 않게 받쳤다.
그녀와 이어진 선들을 모두 떼어내자, 그녀의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서서히 열렸다.
"... 여긴?"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괜찮아, 클레리아. 이제 무사해."
그녀의 시선이 흐릿하게 초점을 잡아가더니 마침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죠?"
힘겹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나야, 이든 카터. 지금은 모습이 달라졌지만.. 설명은 나중에 할게."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 중요한 건 여기서 벗어나는 거야. 자세한 얘기는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해줄게."
나는 그녀의 팔을 부축하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움직일 수 있겠어?"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날 믿고 따라와. 나만 따라오면 돼."
나는 숨을 죽인 채 주변을 살폈다. 그녀를 부축해 이동하려고 움직이는 동시에 한 연구원과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아 몸을 돌리게 한 뒤, 입고 있던 흰 가운을 벗겨냈다. 그 후에 그를 놓아주었고 연구원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벗겨낸 가운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에게 입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다잡아준 뒤, 나는 곧장 리프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리프트는 이미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리프트 안에는 군인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동시에 계단 위쪽에서도 무거운 군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나는 잠시 당황하며 탈출구를 찾았지만, 그 사이 리프트가 도착했고 군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단 쪽에서도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순간, 총성이 터졌다.
"탕! 탕!"
날카로운 탄환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나는 클레리아와 함께 가까운 캡슐 뒤로 몸을 숨겼다. 캡슐 유리는 총에 맞아 깨지기 시작했다.
나는 클레리아의 어깨를 붙잡으며 낮게 말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궁금하겠지만, 나만 믿고 내 손을 절대 놓지 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나는 온 정신을 집중했다. 머릿속으로 큐브 시스템의 형태를 그리며 발동을 상상했다. 그러자 눈앞의 공간이 조금씩 출렁거리더니, 군인들과 우리 사이에 높은 벽이 솟아올랐다. 총성은 순식간에 차단되었고 벽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총 소리만이 둔탁하게 울려왔다.
이어 나는 우리 앞의 바닥을 향해 다시 집중했다. 큐브 조각들이 떠올라 겹겹이 쌓이더니,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눈앞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끌며 재촉했다.
"지금이야, 위로 올라가자!"
그렇게 우리는 새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서둘러 위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무사히 위층에 도착하자마자 계단을 다시 해체하고나서 통로를 닫고 주위를 살폈다.
그때 클레리아가 입을 열었다.
"여긴 우리가 신체검사를 받던 곳이야. 그리고 내 기억도 마지막으로 여기서 끊겼어."
우리가 있는 곳은 지하 1층이었다. 병원의 한 공간같아 보였으며 각종 검사 기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공기에는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스며 있었다.
"겉으로는 단순한 신체검사라 했겠지만, 사실은 기본적인 신체 스펙과 DNA 같은 것들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곳일 거야."
나는 이곳의 실제 용도를 짧게 설명했다.
클레리아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있던 곳은 대체 뭐였던 거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알던 프로젝트는 사실 영생을 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어."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탈출할지 머릿속으로 그려 보며 동시에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합격자들은 왜 뽑는 거야?"
클레리아는 충격에 휩싸인 듯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로그인에 필요한 신체는, 프로젝트 합격자들의 몸을 강제로 변형시켜 자신의 DNA와 일치시키는 방식이었지. 그다음에는 기억을 지우고 그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네가 있었던 캡슐도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준비된 거였어."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세상에.. 그럼 다른 합격자들은 지금 전부 밑에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단 한 명, 제임스만 빼고."
"제임스? 제임스는 어떻게 된 거야?"
클레리아의 목소리에 놀라움과 궁금함이 섞였다.
"그는 탈출했어. 내가 도와서 섀도우 시티로 도망칠 수 있었지. 우선 나머지는 나가서 설명해 줄게.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이동하다가 관리실처럼 보이는 방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 모니터에 현재 층의 CCTV 화면들이 떠 있었고 지상 1층 로비 쪽의 상황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잠깐.. 좋은 생각이 났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클레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지상 1층 로비에서 경계를 서던 군인들은 두꺼운 헬멧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간 이든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몰라, 그들의 총끝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서 있던 두 명의 군인 역시 총을 움켜쥔 채, 오가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군인 중 한 명이 잠시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들려온 짧은 비명 같은 소리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어야 할 동료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그는 두리번거렸지만 곧 발밑이 툭 꺼지더니 그대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악—!"
그의 비명은 메아리쳤지만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지상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아까 그 두 명의 군인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태연히 로비를 지나 입구를 빠져나갔고, 주위의 다른 병사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밖으로 빠져나온 그들은 건물의 가장 뒤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여기 올때 주차해 둔 무인택시가 그대로 있었다. 차 안에 올라탄 뒤 헬멧을 벗자, 이든과 클레리아의 얼굴이 드러났다. 잠시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곧 시동을 걸고 건물을 벗어나 거리를 가르며 달려 나갔다.
"그럼... 우린 어디로 가는 거야?"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우선 너를 섀도우시티 쪽으로 데려갈 거야."
내가 대답했다.
"그 다음엔?"
"일단 제임스를 찾아야 해. 그리고... 그 이후는 나도 모르겠어."
클레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물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
"정부와 군이 보안본부를 공격하기 시작했어."
"보안본부를? 자기편을 공격한다고? 도대체 왜?"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안본부에 크리렉트 큐브라는게 있어. 내가 아까 보여줬던 능력이 그 큐브의 힘이야. 지금 정부와 군은 큐브와 프로젝트 권한까지 전부 빼앗으려 하고 있어. 보안본부는 그걸 지키려 싸우고 있는 거고. 그런데 문제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클레리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 내 몸의 원래 주인은 보안본부의 본부장, 이든 맥스웰이야."
그녀는 충격에 눈을 크게 떴다.
"보안본부 본부장이라고? 그런데 왜 네가 그 몸에 있는 거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아마 시스템 오류로 그의 몸에 로그인된 것 같아. 그래서 현재 이든 맥스웰은 두 명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군은 내가 이든 맥스웰과 함께 움직인다고 판단해서 같이 잡으려고 하고 있어."
"아무리 보안본부가 큐브를 가졌다 해도, 군을 상대로는 힘들지 않아?"
클레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말했어. 큐브 안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고. 그 기힘을 제대로 쓰면 이길 수 있다고 했어."
내가 대답했다.
클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만약 그 싸움에서 지면 결국 죽는 거잖아."
"그렇지."
나는 짧게 인정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도망치자."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런 생각도 해봤어. 하지만.. 왠지 내가 여기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
"여기에? 뭐 하러? 싸우다 죽을 수도 있는데?"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이 몸에 로그인된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이미 죽었어야 할 인생이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건.. 뭔가 의미가 있다는 뜻 아닐까."
클레리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섀도우 월 앞에 도착했다.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녀와 함께 차에서 내려섰다. 곧바로 큐브 시스템을 발동시키자, 거대한 벽 일부가 큐브 조각나듯 출렁거리더니 옆으로 이동하면서 통로가 열렸다.
"이 길을 지나면 당분간은 안전할 거야. 지금은 비상상태라, 네가 사라진 걸 신경 쓸 여력조차 없을 테니까."
클레리아는 천천히 통로를 지나간 뒤,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물었다.
"우리..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나는 잠시 눈을 마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일이 끝나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대화를 끝으로 벽은 서서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어둡게 굳어가는 벽을 바라보다가, 깊은숨을 내쉬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보안본부를 향해 출발했다.
섀도우 월 앞. 큐브 시스템이 열어둔 일시적인 통로가 닫혀가고 있었다. 클레리아는 반대편에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이든 카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수많은 말이 담겨 있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통로는 완전히 닫혀버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홀로 남겨진 그녀는 막막함 속에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 순간, 한쪽에서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남자. 그리고 그 옆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바로 제임스 플레티노였다.
"제임스...?"
클레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클레리아.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녀의 시선은 곧 옆의 낯선 인물로 향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지?"
그때, 낯선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묵직한 눈빛이 어둠을 가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나서 반갑다, 클레리아."
낯선 남자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제임스를 통해 네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내 이름은 테레오 카터라고 한다."
클레리아의 눈이 커졌다.
"테레오... 카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래. 이든 카터는 내 아들이란다."
순간, 클레리아는 놀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단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너도 그 여정에 합류하길 바라고 있지. 사실 그걸 위해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테레오 카터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하게 울렸다. 그녀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의 눈빛에서 묘한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
테레오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감시가 덜한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오래된 주택의 문 앞이었다. 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잠시 후, 집 안의 누군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테레오는 그 인물과 짧게 눈빛을 교환한 뒤, 제임스와 클레리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다. 그러나 테레오는 거실을 지나 작은 방문 하나를 열었다. 그곳 역시 단조로운 방이었지만 그는 곧 방 한가운데 놓인 카펫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바닥 위에 손을 가져가 손끝으로 표면의 한 지점을 가볍게 눌렀다.
찰칵—
그러자 바닥이 미세한 진동과 함께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벌어진 틈 사이로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계단 양옆에서 작은 불빛들이 하나씩 피어오르며 어둠 속 아래까지 부드럽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테레오는 손짓으로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이곳은 정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있는 곳이야. 여길 본 이상 너희들도 이제 우리와 같은 길을 걷게 된거지. 나머지 설명은 내려가서 해줄게.”
클레리아는 뒤돌아서 제임스를 보자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테레오를 따라 지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섀도우 시티 깊은 지하, 오래된 벽돌과 어둠 속에 숨겨진 비밀 아지트. 테레오 카터는 그들과 같이 그곳에 들어섰다. 곧 이어 예상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고 제임스와 클레리아는 놀라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30년 전, 테레오와 함께 샤이닝 시티를 탈출한 이들이 모여 만든 거점이었다.
한쪽에서는 몇 사람들이 모여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사람씩 서로 대련을 벌이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 쉬던 이들은 잠시 시선을 돌려 우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테레오는 걸음을 멈추며 설명했다.
"여기 말고도 지상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지. 그러나 비밀이 새어나가면 모두 위험해지기에 적정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어."
실제로 이곳은 신중히 선별된 사람들의 은신처였다. 지상에 숨어 있는 이들은 평범한 섀도우 시티 시민으로 살아가며 필요할 때만 비밀리에 연결되고 있었다. 테레오가 수십 년 동안 지켜온 것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었다. 그는 희망을 품은 채 이곳에서 긴 시간을 기다려 왔다. 지하에서의 불빛은 비록 작아 보였지만, 어둠 속에서 꺼지지 않고 살아 있는 또 하나의 불씨였다.
테레오는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너희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단다."
그는 제임스와 클레리아를 데리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한 인물이 고요히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눈빛을 지닌 그는 두 사람을 차분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나는 네오 노모스라고 한다. 오래전에 보안본부에서 기술개발팀에서 일했었지. 그곳에서 이든 맥스웰과 함께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와 크리렉트 큐브를 연구했었단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을 함께했었지.”
세상에서 이미 흔적조차 사라졌던 인물. 샤이닝 시티 내에서도 아는 자가 많지 않았던 미스터리한 연구자가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클레리아가 그에게 물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죠? 바로 위에서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말하기 전에, 우리가 왜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해줄게.”
네오는 과거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부터 큐브를 연구해 온 나와 이든 맥스웰은 그 큐브의 막대한 힘을 초기부터 어느정도 다룰 수 있었지. 하지만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정부의 압박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잠금 장치를 시스템 안에 만들어 두었지. 나와 이든 맥스웰. 이 두 명이 동시에 있어야 더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런데..."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큐브의 힘을 제한한 이후부터 정부의 간섭이 점점 심해졌다. 우리는 처음엔 단순한 감시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들의 진짜 속셈을 알게 되었지. 그들은 이 도시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통제하려는 계획이었어. 모든 도시, 모든 자원, 모든 정보를 말이지."
네오의 표정은 어두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정부와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하필 이든 맥스웰의 행동도 점차 이상해지기 시작했어. 그는 큐브의 힘을 이용해 지구의 모든 도시를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지. 마치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려는 신처럼 말이야.”
"결국 어떻게 하든, 상황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샤이닝 시티를 지키기 위해 결국 이든 맥스웰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곧 깨달았어. 그래서 나는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와 뜻을 같이한 자들과 함께 탈출을 준비했지. 그리고 프로젝트 연구소의 캡슐에 갇혀있던 사람들 일부를 구출해냈다."
그는 테레오 카터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중에는 이든 카터의 아버지, 테레오 카터도 함께 있었지. 그리고 도주 과정에서는 여전히 정부와 군 내부에 남아 있던 몇몇 신뢰할 만한 인물들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
“그럼 당신도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클레리아가 그에게 물었다.
네오 노모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크리렉트 큐브의 힘을 사용할 수 없어. 이곳으로 오고나서 그 힘을 잃었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두 사람을 안내하며 말했다.
“이제 너희에게 보여줄 게 있어.”
그가 안내한 곳에 서서 문을 열자 연구실로 보이는 한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방에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네오를 따라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제임스와 클레리아는 곧 한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거곳에는 정사각형의 물체가 있었다. 마치 심장처럼 고동치며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 빛은 연구실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저것은..."
제임스가 숨을 죽였다.
클레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건... 뭐죠?"
그녀는 초록빛을 뿜어내는 정사각형의 물체를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저건 우리가 연구중인 메타렉트 큐브란다. 사실 우리가 연구하던 큐브는 두 개였지. 그리고 샤이닝 시티에서 탈출할 때 바로 그 중 하나인 이 큐브를 가지고 나온 거란다."
클레리아와 제임스는 처음 보는 큐브의 존재를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어서 천천히 말했다.
"너희들이 샤이닝 시티에서 본 능력들은 그곳에 남겨진 크리렉트 큐브의 힘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메타렉트 큐브의 힘을 사용하면 전혀 다른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솔라곤 내부의 한 회의실. 부마스터이자 총사령관인 에오모스가 중앙의 높은 좌석에 서서 천천히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그 자리에는 도시의 핵심 사령관들이 다시 모여 있었다. 이터널사령관 대장 데시오스, 기갑전략사령관 대장 로건, 도시방위사령관 대장 제로, 레인저사령관 대장 로제. 원래라면 드론전략사령관 대장 테사레스도 이 자리에 있어야 했지만,그는 현재 다른 도시로 파견 중이라서 그의 자리는 비어져있었다.
각자의 제복은 다른 색과 문장을 달고 있었지만 모두 같은 한 가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에오모스가 입을 열자 모두가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든 맥스웰이 도망쳤다. 그리고 다른 맥스웰의 도움으로 빠져나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 두 사람의 존재는 확인되었고 그들은 매우 위험하다."
그는 천천히 테이블을 한 바퀴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홀 안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듯 숨을 죽였고 그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울러퍼졌다.
"그 두 명을 즉시 체포하라는 마스터의 명령이다. 되도록이면 살려서 잡아오도록. 그리고 반드시 보안본부를 장악하라. 그들은 큐브를 이용해 매우 위험한 일을 벌이려 하고 있다."
에오모스 총사령관은 다시 그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제로 대장, 즉시 보안본부 주변에 시민 통제선을 구축하고 모든 도주로를 차단하라. 시민들에게는 훈련이라고 공지해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리고 로건 대장, 보안본부로 투입 가능한 기갑부대가 있는가?"
기갑전략사령관이 답했다.
"도시 내부에 다수의 기갑차를 들여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어 우선은 핵심 지점에 소수만 배치하고 만일의 도주에 대비해 도시 외곽에도 여러대를 배치하겠습니다."
"알겠다. 만약 도시 외부에서 교전이 발생하면 모든 기갑부대는 즉시 기동하라."
에오모스는 도시 내부 특성상 기갑부대를 마음대로 운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로제 대장은 보안본부 중심으로 저격수들을 분산 배치해서 모든 주요 진입로와 고지대를 확보하도록. “
”그리고 총사령관 에오모스가 데시오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명령했다.
“드론전략사령관 테사레스가 복귀할 때까지, 드론 부대의 지휘는 데시오스 대장이 대신 맡아라. 이터널 부대와 연계해 즉각 대응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명령이 떨어지자, 각 사령관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작전 명령이 신속히 전 부대로 전달되었다. 에오모스 부마스터는 의자에 잠시 손을 얹고 앞으로 닥칠 일의 계산을 조용히 마음속에 새겼다.
이든 카터는 핸들을 움켜쥔 채 차를 몰았다. 멀리서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도심 특유의 활기와 불빛은 사라지고 대신 살얼음처럼 서늘한 긴장감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모든 기척이 전쟁의 서막 앞에서 움츠러든 듯했다.
시야가 트이자 그곳의 상황이 드러났다. 보안본부 입구 전방 수백 미터를 군의 진형이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여러 군용 차량과 장갑차, 그리고 배치된 중화기들이 철벽처럼 서 있었다. 상공에는 수백 대의 군용 드론이 낮게 맴돌며 감시 센서를 곳곳에 뿌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숨을 고르며 그들을 응시했다. 주위는 완전히 통제되어 있었고 모든 움직임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기 직전, 불길한 정적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정도라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밖에서는 확성기의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안본부는 즉시 투항하라! 저항은 무의미하다!"
잠시의 정적 뒤, 또 다른 외침이 하늘을 가르며 메아리쳤다.
"이든 맥스웰은 중대한 죄로 인해 체포 대상이 되었다! 모든 저항은 반역으로 간주한다. 이든 맥스웰, 지금 즉시 투항하라!"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 분위기에서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연구 시설에 들어갔던 방법처럼 차를 길가에 세우고 눈에 띄지 않게 뒤편 건물들로 몸을 숨겼다.
모두가 보안 본부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어서인지 골목길은 군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는 보안본부 뒤편 건물에 도착하자 벽에 등을 기댄 채 잠시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집중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에 따라 공간이 흔들리며 반응하기 시작했고 큐브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벽면이 서서히 정사각형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마치 현실의 구조가 부서지듯, 파편이 흩어졌다가 이내 재구성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눈앞에 열린 통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길을 따라 보안본부 내부로 몸을 밀어 넣었다.
한편, 이 모든 광경을 근처 고층 빌딩의 유리창 너머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조용히 저격총을 고정한 채 관찰 중인 인물, 레인저사령관 로제 대장. 그녀의 조준경 속에는 이든이 보안본부 건물 뒤에서 벽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지만 그녀는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때, 무전기에서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제 대장님, 현재 목표물을 시야 내에서 확인했습니다.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선에서 제압할까요?"
로제는 잠시 침묵했다. 조준경 너머로 보이는 이든의 움직임을 가만히 따라가던 그녀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대로 관찰만 한다. 그리고 지금 본 건 아무에게도 보고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스코프를 통해 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든이 큐브의 힘을 발현시키며 보안본부 안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보안 본부 내부에 들어서자 비상상태의 공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대부분의 보안 요원들은 전투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고 보안 드론들 또한 분주히 날아다니며 각 구역을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엘리베터를 향해 중앙 작전실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진짜 이든 맥스웰과 부본부장인 에이든 디나토스, 에이스 팀장인 제이미 그레비티를 포함한 각 부서 팀장들. 이미 상황을 보고받은 듯, 나를 보고도 그들의 표정에는 놀람보다는 억눌린 긴장과 호기심이 엿보였다.
침묵 속에서 한 팀장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가.. 또 다른 이든 맥스웰인가."
팀장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를 둘러싸듯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진짜 이든 맥스웰이 입을 열었다.
"이미 내가 설명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진 또 하나의 나다. 그의 큐브 권한은 나와 동일하다. 그는 우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싸울 것이다."
잠시 모두를 바라보며,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은 의심할 시간이 없다. 회의를 계속 진행한다."
본부 요원들이 원탁을 둘러싸고 앉았다. 경고등이 붉게 번쩍이는 회의실 안,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팀장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입을 열었다.
"군의 공격은 이미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전력으로는 장기전을 버틸 수 없습니다. 결국 협상밖에 길이 없습니다. 최소한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겁니다."
다른 팀장이 단호하게 맞받았다.
"협상이라니, 그건 곧 자살행위입니다. 그들은 큐브와 프로젝트, 그리고 우리 자신까지 모조리 접수하려 들 겁니다. 우리가 항복하는 순간, 그들은 우리를 모두 체포할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팀장이 강하게 주장했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기술이 수를 압도합니다. 우리가 가진 큐브는 단순한 무기가 아닙니다. 전쟁의 규칙 자체를 뒤집을 수 있는 힘입니다."
한 신중한 목소리가 조용히 회의실을 울렸다.
"하지만 현재로서 큐브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것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걸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른 요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협상을 택한다면 그건 곧 스스로 목줄을 내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와 군은 결코 동등한 협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건 오직 기술뿐이고, 그 기술마저 빼앗긴다면 우린 존재 가치조차 사라집니다."
회의실 공기는 숨 막히듯 무거워졌다. 각자의 시선이 얽히며 날카롭게 부딪혔고 작은 기침 소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본부장 에이든이 모두의 의견을 듣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모두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든 본부장님. 현실을 보십시오. 군의 병력과 화력은 압도적입니다. 우리가 전면전을 택한다면 몇 시간 버티지 못할 겁니다. 기술이 우리에게 있긴 하지만, 숫자와 자원 앞에서는 결코 우위를 점할 수 없습니다."
부본부장의 목소리에는 전면전이 불리하다는 뚜렷한 체념이 묻어 있었다. 그때, 진짜 이든 맥스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협상은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게 가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정부와 군의 손에 떨어지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보안본부 전체가 대체된다. 그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큐브만 원한다."
모두가 침묵했다. 말 한마디조차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선택은 단 하나뿐이다. 지켜내는 것. 우리가 가진 것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이유를."
잠시 후, 무겁던 공기는 천천히 하나의 결론으로 모여들었다. 회의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빛이 같은 곳을 향했다. 싸움 외에는 길이 없음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론이 막 모아지려는 순간이었다.
"쾅—!"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회의실 바닥을 흔들었다. 본부 전체가 뒤틀리듯 진동하며 조명이 꺼졌다가 다시 깜빡였다. 군의 미사일이 본부 정문을 직격한 것이다. 두꺼운 벽이 무너져 내리며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순식간에 먼지와 불꽃이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치솟았다.
"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요원들의 외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래층에서는 보안본부 요원들이 재빨리 큐브 시스템을 발동시켰다. 공간이 흔들리며 무너진 입구가 조각 단위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듯 봉쇄되었다. 그러나 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큐브 시스템으로 만든 문을 다시 부쉈고 요원들은 다시 만들고를 반복했다. 연속적인 굉음이 메아리쳤고 불길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회의 중이던 우리는 모두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상경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원 무기를 챙기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입구 근처에 도착한 이든 맥스웰은 곧장 외부 상황을 살폈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게 전장을 훑었다.
"우선 군의 차량과 중화기를 무력화해야 한다. 내가 신호하면 가장 먼저 그걸 목표로 삼아!."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모두가 긴장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바깥의 공격이 멈추었다. 그것도 잠시 후, 군인들은 대열을 가다듬더니 입구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눈부신 섬광과 함께 폭발음이 이어졌다. 보안본부의 거대한 정문은 단순히 열린 수준이 아니었다. 콘크리트와 철골이 산산이 부서지며 입구를 포함한 붙어있던 벽들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지금이다! A팀, 출동!"
이든 맥스웰의 신호에 A팀의 팀장과 대원들이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곧바로 큐브 시스템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바닥에서 큐브조각들이 쌓이면서 높은 기둥이 생성되었고 그 위로 군용 차량들과 중화기들이 높은 곳에 매달려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해체하자 수많은 차량들과 중화기들이 떨어지며 군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또 일부는 발밑에 갑자기 열린 구멍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B팀은 방어 임무에 나섰다. 그들은 큐브 시스템을 발동시켜 A팀들 앞에 거대한 큐브 벽을 형성했다. 이 벽들은 군인들의 쏟아지는 총탄과 폭발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방어벽에 부딪힌 탄환들이 튕겨 나가며 불꽃을 흩뿌렸다. 전장은 순식간에 기술과 화력, 혼돈이 뒤엉킨 소용돌이가 되었다.
다른 도시에서 수많은 전투를 겪어온 정예 군인들이었지만, 대부분은 큐브 시스템을 상대로 싸운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적인 기술에 당황한 듯 우왕좌왕했고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보안본부가 이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도시방위 사령관 제로 대장은 요동치는 전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보안본부의 큐브 시스템을 관찰하다가, 곁에 선 중장에게 낮게 지시했다.
"지상 병력은 잠시 대기시키고 이터널사령부에 연락해서 드론들을 내부로 침투시키라고 전해라."
잠시 후, 대기하던 군용 드론들이 일제히 궤도를 바꾸어 보안본부의 창문과 파괴된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금속의 날개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점점 가까워졌다. 이든 맥스웰은 보안본부를 향해 몰려오는 수백 대의 드론들을 바라보며 즉시 공격을 지시했다.
"군용 드론이다! 드론들을 격추시켜!"
요원들은 곧장 무기를 들어 올려 드론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보안 드론들도 출격해 하늘에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용 드론은 차원이 달랐다. 보안 드론은 살상보다는 무력화 및 체포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이와 달리 군용 드론은 처음부터 살상과 파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그래서 보안 드론보다 훨씬 크고 빠르며 공격력 또한 압도적이었다.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혔다. 군용 드론들은 빠르게 회피 기동을 하며 요원들의 탄환을 피했고 거대한 몸체로 돌진해 여러 창문을 산산조각 내며 내부로 돌입했다. 입구 쪽에서도 폭발과 함께 밀려 들어와, 우리를 안쪽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는 군용 드론들에게는 우리의 큐브 시스템이 큰 소용이 없었다. 이 기술은 오로지 벽이나 바닥 같은 구조물을 조작할 때만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기술로 방어벽을 세워도 군용 드론들은 가뿐히 빠른 속도로 넘어서서 공격해 왔다. 그래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에는 오로지 총기나 보안 드론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군용 드론의 맹공에 대열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었다.
"모두 내부로 들어와! 안에서 방어한다!“
이든 맥스웰이 크게 외쳤다.
입구에 남아 있던 요원들까지 서둘러 안으로 몸을 피했다. 곧 보안본부 내부는 드론과 요원들이 뒤엉킨 치열한 전장이 되었다. 총성과 폭발음, 드론의 기계음이 한꺼번에 울려 퍼지며 공간을 집어삼켰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도시방위사령부 준장이 곁에 서 있던 대장에게 물었다.
"나머지 지상 병력을 투입시킬까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낮게 대답했다.
"아니, 일반 병사들로는 큰 피해만 입을 뿐이다. 뒤는 그들에게 맡기자."
준장은 곧바로 무전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한 무리가 일제히 움직여 보안본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군용 드론들은 계속해서 몰려오기 시작했고 보안본부를 향한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본부 내부는 드론들의 침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요원들은 큐브 시스템을 발동해 벽을 세워 진입을 막고, 틈새로 총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군용 드론들은 생성된 벽들을 우회해서 돌아가거나 마치 종잇장처럼 무너뜨리며, 끝없는 기계음과 함께 요원들을 몰아붙였다.
방어선이 무너지고 요원들이 점점 밀려나던 순간, 부본부장인 에이든 디나토스가 직접 나섰다. 그는 양손을 펼치듯 집중하며 큐브 시스템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드론들이 몰려 있던 통로가 거대한 벽으로 차단되었다. 갇힌 드론들이 여기저기서 함께 부딪히는 사이,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큐브 조각들이 생성되어 안쪽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파편 같은 정사각형 조각들이 점점 좁혀들며 공간을 완전히 채웠고, 드론들은 저항할 틈조차 없이 압착당했다.
거대한 금속 몸체들이 하나둘씩 찌그러지고 부서지며 안쪽에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큐브들이 걷힌 통로 안은 부서진 군용 드론들의 잔해로 가득 메워졌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큐브 시스템 권한은 확실히 다른 요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반 요원들이 단순히 벽을 세우거나 해체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그는 마치 건물의 일부를 통째로 주물러 쥐었다가 다시 펼쳐내는 듯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바깥과 달리 건물 안에서는 군용 드론들을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사방에서 큐브 시스템을 발동할 수 있었기에, 드론을 포획하거나 움직임에 제한을 주는 일이 가능했다. 총탄과 레이저가 교차하는 전장 속에서, 우리 쪽은 잠시나마 다시 우위를 점하는 듯했다. 그 순간, 건물 일부의 전력이 꺼지며 조명이 하나둘 꺼져갔다. 통로 중간중간마다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자 싸늘한 긴장감이 흘러내렸다.
"뭔가.. 불길하다.”
이든 맥스웰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곧, 더 짙은 어둠이 깔린 통로 쪽에서 총성이 여러 발 울렸다. 뒤이어 요원들의 짧은 비명.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어둠 속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실루엣은 검은 헬멧을 착용한 일반 군인과 비슷한 자였다. 그러나 그의 걸음에는 무언가 기괴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우리 쪽 요원 두 명이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여러 발의 총알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그는 고꾸라지듯 쓰러졌고 모두 숨을 고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쓰러져 있던 몸이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총알이 하나둘 떨어져 나오며 상처가 스스로 아물어갔다. 피는 거의 흘러나오지 않았다. 살이 다시 붙고 찢긴 군복만이 흔적을 남겼다.
그 광경을 본 이든 맥스웰이 얼굴을 굳히며 내게 말했다.
"저게.. 내가 말했던 그 자다. 최고의 DNA만 모아서 만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완전한 자, 이터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괴물 같은 속도로 우리에게 돌진했다. 앞에 서 있던 보안요원이 급히 큐브 시스템을 발동해 벽을 세웠다. 그러나 그자는 벽이 높이 솟아오르기 직전 가볍게 뛰어넘어오더니, 요원의 팔을 잡아 바닥에 내려꽂았다.
"으악!"
요원이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전에, 그는 근처에서 총을 쏘던 또 다른 요원에게 달려든다음 그대로 들어 올려 멀리 내던졌다. 처음 마주한 이터널의 존재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의 몸은 총알조차 통하지 않았고, 검은 헬멧은 유일한 약점인 머리를 완벽히 보호하고 있었다. 총탄이 튀어 오를 때마다 그들의 움직임은 더 기괴하게, 더 강력하게 다가왔다. 이든 맥스웰이 급히 큐브 시스템을 더 강하게 발동했다. 거대한 두께의 벽이 순식간에 솟아올라 그의 전진로를 막았다.
"쿵—!"
그는 벽에 부딪혀 잠시 멈췄지만 시간을 버는 정도였다. 곧 반대편에서 군용 드론이 벽을 부수는 총탄소리가 들려왔다.
"더는 가까이에서 싸울 수 없다!"
이든 맥스웰이 외쳤다.
"그들과 근접전을 하면 우리가 불리하다.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급히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든 맥스웰과 나, 그리고 소수의 요원들은 더 깊숙한 지하로 몸을 옮겼다. 목표는 단 하나, 군과 이터널이 큐브 시스템의 핵심 시설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긴 통로를 따라 걸어가던 중, 갑자기 앞으로 금속음이 울리며 군용 드론 수십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센서가 번뜩이는 순간, 총구에서 불빛을 뿜었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탄환 속에서 우리는 좌우로 몸을 흩뿌리듯 피했다. 이든 맥스웰은 왼쪽 통로로, 나는 오른쪽 통로로 몸을 날렸다. 바닥과 벽이 총탄에 갈라지며 파편이 튀어 올랐다. 숨을 고르며 총구를 고쳐 쥐었다. 뒤쪽에서는 초월적 힘을 가진 이터널이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생성된 큐브 벽을 박살 내며 다가오는 드론들과 이터널의 기세는 단순한 군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대로는 협공당한다!"
이든 맥스웰이 외쳤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 다른 길로 빠져서 큐브가 있는 곳에서 다시 만나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곧장 통로 깊숙이 몸을 던졌다. 나와 같이 있던 제이미 팀장이 말했다.
"여긴 저희에게 맡기고 먼저 큐브가 있는 방으로 가세요!"
나는 그의 말대로 뒤를 맡기고 뒷쪽 통로로 몸을 돌려 달려갔다. 뒤에 남은 몇몇 요원들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제이미 팀장은 군용 드론과 이터널들의 진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용 드론들이 쏟아내는 총탄 앞에 즉석으로 생성된 큐브 벽이 부서져갔다. 그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제이미는 짧게 숨을 내쉬며 부하에게 말했다.
"우리가 불리하다. 잠시 뒤로 물러난다."
제이미와 몇몇의 요원들은 뒤쪽 통로를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그들의 뒤를 군용 드론들과 이터널이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터널은 통로를 따라 달리며 오른쪽으로 꺾인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이어진 통로를 따라 뛰다가 또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계속 달려 나갔다. 그렇게 몇 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달리던 이터널이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걸음을 멈추었고 군용 드론은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잠시 후, 사라졌던 드론이 이터널의 뒤편에서 다시 나타나 그대로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이터널은 깨달았다. 그는 제이미가 만들어낸, 끝없이 이어진 무한의 통로 속에 갇힌 것이었다.
눈앞에서 보게 된 이터널은 상상 이상이었다. 거기에 군용드론이 공중에서 사방으로 퍼지며 쉼 없이 탄환을 퍼부었고, 앞뒤에서 몰려드는 압도적인 위협 속에서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이든 맥스웰의 말이 떠올랐다.
'큐브 시스템의 진정한 힘. 그것을 쓰는 순간, 도시 전체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다.'
혹시 지금이 그 순간일까? 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 힘을 사용한다는 건, 섀도우시티의 사람들, 그리고 샤이닝 시티에서 함께 웃고 살아온 이들까지 모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럴 수는 없어.. 모두를 잃게 할 순 없어."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쏟아지는 총격과 검은 헬멧을 쓴 이터널들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벽을 세워도 바닥을 무너뜨려도 그들은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 걸어왔다. 정말 그 힘을 쓰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