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빛의 시험, 그림자의 약속
나는 미로처럼 얽혀있는 통로를따라 큐브를 보호하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통로를 따라 쭉 나열되어 있는 불빛들은 흔들리듯 어두워졌다가 간헐적으로 불빛이 번쩍이며 시야를 가렸다. 불안정한 조명 속, 공간 전체가 마치 심장 박동처럼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 앞에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헬멧을 쓴 이터널이었다. 그는 숨조차 고를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곧장 몸을 날렸다.
강렬한 충격이 온몸을 덮치며 나는 통로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 멀리 내던져졌다. 강한 충돌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눈앞의 이터널이 묵직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까와는 다른 이터널이었다.
'대체 이터널이 몇명이나 있는거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었다. 머릿속으로 큐브의 구조를 그리며 벽을 생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터널의 몸놀림은 예상보다 빨랐다. 벽이 완전히 세워지기도 전에 그는 이미 날아올라 벽을 뛰어넘었다.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나는 곧바로 내 발밑에 기술을 사용했다. 발 아래가 정사각형 조각으로 분해되더니 단단한 큐브 기둥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천장을 열며 통로를 만들었다. 기둥이 빠른 속도로 치솟으며, 나는 그대로 위로 밀려 올려졌다. 이터널이 있는 층의 시야가 순식간에 사라진 뒤, 나는 상층부 바닥을 뚫고 위층으로 올라서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훈련조차 받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터널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지하로 내려갈만한 길을 찾아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아래쪽 통로에서는 이터널이 잠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나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는 듯. 한편, 이든 맥스웰은 큐브의 힘을 사용해서 큐브가 있는 방으로 직접 이어지는 통로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며 나아갔다. 그의 앞에서 벽면들이 수없이 잘게 분해되며 큐브 조각으로 흩어졌고, 곧이어 새로운 길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그는 순식간에 큐브가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주변을 봉쇄한다. 입구와 벽을 큐브벽으로 두껍게 해서 방어선을 구축해 둬."
이든 맥스웰의 명령이 떨어지자, 요원들이 곧바로 팔에 부착된 큐브 컨트롤 패드를 조작해 큐브 시스템을 발동했다. 사방의 벽면이 정사각형 조각으로 갈라져 나가더니 다시 맞물려 들어가며 한 층 더 두껍고 단단한 벽을 형성했다.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중첩된 구조물을 이루자, 마치 성채 같은 방어선이 완성되었다.
그때, 한 요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본부장님?"
이든 맥스웰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다른 이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요원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하지만 만약 그가 여기까지 오지 못하거나 도망가면요?"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코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는 반드시 올 거다."
요원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그 이든이라는 자는, 이 방의 위치를 알고 있을까요? 여긴 최고 등급 기밀이라 오는 길도 미로처럼 복잡한데.."
잠시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맥스웰에게로 쏠렸다. 그는 큐브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어갔다.
"자신의 세계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어떻게든 올 거다. 나는 그를 믿는다."
그의 단호한 말투에 방 안은 다시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요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조금 전의 불안 대신 묵직한 결의를 되찾았다. 빛을 뿜어내는 큐브가 다시 한번 벽을 밝히며 마치 그 믿음을 증명하듯 묵묵히 진동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모든 계단과 엘리베이터 입구는 이미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1층은 군의 손아귀에 완전히 넘어간 듯했다. 내려갈 곳이 보이지 않자, 나는 적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숨을 고르고 발밑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바닥이 정사각형 큐브 조각들로 갈라지며 지하와 연결된 통로가 형성되었다. 사각형의 빈 공간이 아래로 열리자, 나는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마침 밑에는 누군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위쪽에 갑작스레 생긴 통로를 눈치채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검은 헬멧을 쓴 이터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시야는 서로를 정확히 마주쳤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통로를 조심스럽게 닫아버렸다. 큐브 조각들이 다시 생성되며 바닥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른 곳을 찾아볼까..."
나는 낮게 중얼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큐브와 더 가까운 곳, 그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했다. 발소리가 울리는 이 통로 속에서 오직 내 숨결만이 따라왔다.
섀도우 시티의 어느 깊은 지하 속 어느 방 안, 조용한 빛 속에서 네오 노모스는 제임스와 클레리아에게 큐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큐브의 힘을 다룬다는 건 그리 단순하지 않아. 먼저 큐브의 선택을 받아야 하지."
"큐브의 선택이요?"
클레리아가 되물었다.
"그래."
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큐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의지를 지닌 존재에 가깝지. 힘이 강할수록 아무에게나 그 능력을 허락하지 않아. 자신이 선택한 자에게만 단계적으로 사용 범위를 넓혀주지. 단, 그 선택 조건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그의 앞에는 큐브 형태의 홀로그램이 빛을 내며 떠 있었고 그가 말을 이어 갈 때마다 화면은 자연스럽게 전환되어 당시 상황을 기록한 영상들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샤이닝 시티에 있을 때는 양자컴퓨터로 큐브의 정보를 일부 해독했었고 그래서 일정 수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 그래서 많은 보안 요원들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전자장치를 착용해야만 가능한 제한된 방식이었지."
제임스가 무언가 생각 난듯 클레리아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도망칠 때 나를 쫓던 자들, 그들 전부가 손목에 있는 장치로 능력을 사용했었어. 하지만 단 한 명, 이든 카터만 장치없이 바로 사용했었어. "
그 말을 들은 클레리아가 네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 큐브는 정확히 어떤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건가요 ?”
네오가 손짓하자 홀로그램속 영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주의 구조를 형상화한 홀로그램 에서는 별빛이 회전하고 은하가 천천히 펼쳐지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너희가 샤이닝 시티에서 경험한 크리렉트 큐브의 능력은 우주의 힘 그 자체야. 우주의 힘은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이렇게 네 가지 기본 힘이 담겨 있지. 우주에서 이 힘이 서로 다른 규모와 방식으로 작용할 때 별과 행성,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 같은 천체들이 형성된다.”
“그 네 가지 힘은 정확히 어떤 힘이죠?”
클레리아가 재차 질문했다.
그가 홀로그램에 나오는 영상의 흐름을 짚어가며 설명하자 복잡했던 개념들이 눈앞의 장면처럼 명확하게 그려졌다. 우주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너희가 지금까지 본 크리렉트 큐브의 능력은 강력과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이 가진 힘의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선 간단히 설명해줄게.”
네오의 설명에 맞춰 홀로그램은 원자핵과 그 안의 양성자, 중성자의 결합 원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강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켜 원자핵을 유지시키는 우주에서 가장 강한 힘이야. 쉽게 말해, 모든 것을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두는 힘이라고 보면 돼."
네오는 홀로그램 속에서 빛의 입자들이 서로 변환되는 장면을 가리켰다.
"그리고 약력은 원자핵 속의 입자들을 서로 변화시킨다. 방사성 붕괴와 별의 핵융합에 필수적인 힘이지. 그리고 핵변환 반응을 통해 원소를 다른 원소로 변화시켜. 한마디로 말하면, 물질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거지.
클레리아와 제임스는 아직 완전히 이해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또 하나인 전자기력은 전하를 가진 입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야. 전자가 핵을 떠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이유이며, 원자들이 서로 결합해 물질을 이루는 근본적인 원리지. 이 힘이 없다면 물질은 형태를 유지할 수 없고 에너지 또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구조로 존재할 수 없게 돼”
클레이아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없나요?”
네오 노모스는 주위의 기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자기력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체감하는 힘이야. 전기력과 자기력을 합친 말이기도 하지. 스마트폰과 컴퓨터 속을 흐르는 전류, 모터가 회전하고 기계가 작동하는 원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선 신호가 공간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과정까지 모두 전자기력의 작용이야. 심지어 우리 몸속에서 신경 신호가 전달되고, 지구가 자기장을 유지하는 것 또한 관련 있지. 쉽게 말해 전자기력은 연결과 반응을 만들어내는 거지. 보이지 않는 변화를 우리가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야.”
“그래도 여전히 조금 어렵네요.”
제임스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설명을 하긴 어려워. 차근차근 배우면서 이해하면 되.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힘은 중력이다.”
네오 노모스는 설명을 이어갔다. 홀로그램에는 태양계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중력은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해서 물체가 그 곡률을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야. 간단하게 말해 서로를 향해 끌어당기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 시공간이 휘어진 곳은 빛마저 휘게 되. 이러한 능력들을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현실을 바꾸게 될거야.”
"설명으로만 들으면 그 큐브가 매우 강한 힘인거 같은데 그럼 저희는 그 힘을 사용할 방법이 없나요?”
클레리아의 물음에 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능력을 발현시키려면 크리렉트 큐브를 직접 만져야 하는데 이곳에는 그 큐브가 없지. 그리고 설령 손에 넣는다 해도 내가 말했던 것처럼 큐브에게 선택되어야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네오 노모스는 제임스와 클레리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록 너희는 지금 당장 크리랙트 큐브의 힘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대신 메타랙트 큐브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될거야."
클레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메타렉트 큐브는 어떤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죠?”
그는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크리랙트 큐브가 우주의 힘을 다룬 것이라면, 이 메타렉트 큐브는 우주의 질서라고 할 수 있지. 우선 너희가 할 일은 이 메타렉트 큐브를 직접 만져 보는 거야. 큐브가 너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지. 그리고 만약 큐브의 힘을 사용할 수 없더라도 양자컴퓨터를 통해서 그 힘 일부를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제임스와 클라리아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기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샤이닝 시티내 보안본부 지하 통로. 군인들은 길마다 세워진 큐브 벽을 하나씩 파괴하며 마침내 큐브가 있는 방 앞까지 도달했다. 선두에는 군용 드론 수십 기가 서 있었고 그 뒤로는 검은 헬멧을 쓴 이터널 두 명, 몇몇 일반 군인들, 그리고 이터널사령부의 중장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중장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드론, 문을 부숴라."
두 기의 군용 드론이 곧바로 전면에 배치되었다. 동시에 포구가 붉게 달아올랐고 이어 수백 발의 탄환이 빗발치듯 문을 향해 쏟아졌다. 큐브 방의 출입문은 처음엔 버티는가 싶었지만 곧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뒤에 버티고 있던 방어벽들은 너무 두꺼웠다. 드론이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그것을 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드론이 포화를 멈추었을 때 벽은 탄흔으로 뒤덮였으나 조금밖에 뚫리지 않았다. 탄환소리가 완전히 멈추고 침묵 속에서 장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보안본부 놈들이 미리 대비했군."
옆에 있던 한 부하가 중장에게 물었다.
"기갑전략사령부에 연락해서 중화기기를 가져와달라고 할까요?"
그는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 묵직한 발소리가 터널을 따라 울려왔다. 잠시 후, 어두운 통로 끝에서 군복 차림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어깨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데시오스 대장님!"
이터널 사령관의 등장에 중장은 자세를 고쳐 경례했다.
중장은 긴장된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장님, 여기까지 직접 오실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현재 예상대로 입구는 큐브벽으로 봉쇄되었습니다. 군용 드론만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해, 더 강력한 무기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터널 사령관은 잠시 입술을 굳게 다물고 봉쇄된 입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짙은 불신과 차가운 결의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리고 중장의 말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좁은 통로에서 중화기를 옮기다간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마침 드론전략사령부 대장에게서 새로운 드론을 시험해봐도 된다고 연락이 왔다. 이곳 좌표를 보내라."
중장은 눈이 살짝 흔들리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건 아직 실험 단계라서 불안정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아직은 오래 움직이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령관의 시선이 서늘하게 장교를 꿰뚫었다.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라고 하더군."
뒤에 대기하던 군인들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드론전략사령부에서 개발 중이던 그 드론을 아마도 이번 기회를 시험 삼아 투입하려는 듯했다.
중장은 곧바로 무전기를 집어 들고 연락했다.
"드론전략사령부에 알린다. 방금 보낸 위치로 그리드라콘을 투입하라!"
이름만으로도 공포와 경외가 동시에 스며드는 존재. 아직 베일 속에 가려진 군의 최종병기가 어디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땅 전체가 낮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은 보안본부 내부의 사람들은 물론, 샤이닝 시티 전역에까지 전해졌다. 그때, 점점 진동심해지는 에 큐브 방 안의 보안요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뭐지?!"
"지진인가!"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는 가운데, 이든 맥스웰이 큐브에서 나오는 빛을 바라본 채 낮게 중얼거렸다.
"...결국, 그 녀석을 보내는군."
진동은 점점 거세졌고 마침내 저 멀리 지하 통로 끝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어둠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땅을 파헤치며 전진하는 괴물 같은 기계. 굉음을 토해내며 보안본부 지하 통로로 진입한 그것은 빠른 속도로 큐브가 있는 방을 향해 돌진했다. 그 거대한 기계는 통로 전체와 맞먹는 크기를 지녔고 몸체는 끝없이 이어지는 관절로 연결된 터널링 드론이었다. 그 위압적인 형상은 마치 대지를 삼키는 철제 괴수 같았다.
큐브방 입구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과 드론들은 거대한 흔들림 속에 옆 통로로 밀려나듯 흩어졌다. 곧, 지하 통로를 파헤치며 전진하던 그리드라콘이 나타났다. 거대한 강철 몸체는 통로를 꽉 채운 채 굉음을 내뿜으며 돌진했고, 이내 큐브방 입구를 막고 있던 두꺼운 큐브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천둥 같은 충격음이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리드라콘은 주저하지 않고 강철 드릴과 몸체를 회전시키며 벽을 부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대기하던 보안 요원들도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을 움찔하며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든 맥스웰이 보안요원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그리드라콘이다! 전원, 큐브벽을 계속 생성해!"
여러 요원들이 동시에 정신을 집중해 방어벽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큐브벽이 재구성되는 속도보다, 그리드라콘이 부수고 파고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벽은 만들어지는 즉시 다시 부서져 나갔다.
같은 시각, 위층에 있던 이든 카터 역시 거대한 충격음을 느꼈다. 발밑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굉음.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바로 아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큐브방이라는 것을. 망설일 틈은 없었다. 그는 즉시 정신을 집중해 큐브 시스템을 발동했다. 바닥이 정사각형 조각으로 나뉘어 해체되며 옆으로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각형 통로가 형성되었다. 그는 곧바로 통로 안에 나선형 계단을 만들어내고는 곧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의 끝은 정확히 큐브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이든 맥스웰과 마주쳤다.
이든 맥스웰은 이든 카터를 보자마자 말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왔군."
"방금 충격은 뭐지?"
이든 맥스웰은 벽 너머에서 울리는 굉음을 바라보며 낮게 대답했다.
"큐브벽 너머에 그리드라콘이 있다. 군이 만든 거대한 터널링 드론이지. 지금 입구 쪽을 무너뜨리고 있어."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드라콘? 터널링 드론?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이든 맥스웰의 얼굴에는 어두운 빛이 드리워졌다.
"정부와 군의 기밀 프로젝트라 아는 사람도 극소수였지. 표면상으로는 지하 터널 개발용이라고 보고됐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큐브의 힘이 해방될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군의 최종 비밀 병기지."
그는 잠시 벽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을 들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 개발 단계라고 알고 있었는데 결국 급하게 끌어낸 모양이다. 우리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자마자."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드라콘. 군이 숨겨온 최종 병기가 지금 이곳으로 파고들고 있다니. 그때, 방 안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정육면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빛을 머금은 큐브였다. 표면은 끝없이 투명한 듯하면서도, 내부에는 빛줄기가 끊임없이 흘러 다녔다. 마치 별들의 궤도가 정육면체 안에 압축된 것처럼. 그 모습은 고요했지만, 동시에 황홀할 만큼 강렬한 아름다움을 보였다. 그 앞에 서자, 잠시 벽 너머의 굉음마저 잊을 정도였다.
나는 눈앞의 빛나는 정육면체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속삭였다.
"전에 본거보다 더 크게 빛나고 있어."
이든 맥스웰의 시선이 코어에 고정되었다.
"이건 옛날에 나와 또 다른 과학자와 함께 연구했던 큐브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 큐브는 원하는 물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한 도시조차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 있지."
나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럼 네가 말한 그 큐브의 진정한 힘을, 지금 쓰겠다는 건가?"
맥스웰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스쳤다.
"그래. 우리 보안본부는 군에게 장악되기 직전이다.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어. 지금 이 순간 큐브의 힘을 해방하겠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방 전체가 진동하며 입구 쪽 큐브벽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강철의 괴물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통로를 파괴하며 돌진해 들어온 것은 바로 그리드라콘이었다. 드릴이 회전하며 스파크를 흩날리던 그리드라콘은 입구의 큐브벽을 완전히 부수고는 마치 길을 열어주듯 뒤로 물러섰다. 순간, 공기를 가르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윙—! 윙—!”
곧이어 수십 기의 군용 드론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며 안으로 들이닥쳤다. 붉은 센서가 일제히 점멸했고 대원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방 안은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이든 맥스웰이 단호히 외쳤다.
"모두 드론을 향해 공격해!“
요원들은 곧바로 총을 들어 들이닥친 군용 드론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탄환이 날아가 드론의 몸체에 튕기며 불꽃을 흩뿌렸다. 동시에 다른 요원들은 큐브 시스템을 발동했다. 순식간에 바닥에서 정사각형 조각들이 솟아올라 벽을 이루고, 벽과 천장에서도 큐브 블록이 쏟아져 내려왔다.
사방에서 생성된 큐브 구조물들은 서로 맞물리며 드론들의 이동 경로를 끊어냈다. 드론들은 회피 기동을 시도했지만, 큐브벽이 연속적으로 형성되면서 통로가 끊기고 좁아졌다. 몇몇 드론은 벽에 갇히듯 부딪혀 회전 날개가 부서지고, 다른 드론은 벽 사이에 낀 채 불꽃을 내뿜으며 추락했다.
그러나 나머지 드론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총을 쏘아대며 봉쇄된 공간을 억지로 뚫고 들어오려 했다. 방 안은 총성과 폭발음이 뒤엉키며 전장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쏟아지는 총탄이 사방을 갈기며 날아들었다. 나는 서둘러 큐브 시스템을 발동해 눈앞에 두꺼운 벽을 세우고 몸을 숨겼다.
총탄이 벽에 부딪히며 튕겨 나가자, 순간의 정적 속에서 이든 맥스웰의 목소리가 터졌다.
"큐브의 힘을 해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그는 다시 한번 큐브벽을 생성해 방어선을 쌓고는 곧장 큐브 쪽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너도 따라붙어!"
나는 숨을 고르며 그를 뒤따라 달려갔다. 빛을 내뿜는 거대한 큐브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든 맥스웰은 큐브를 응시한 채 짧게 대답했다.
"너도 나처럼 큐브에 집중하는 거다. 마치 이 큐브 자체를 해체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잠시 큐브를 바라보았다. 그 광채는 압도적이었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해체라면.. 그건 네가 혼자 하면 되지 않아? 왜 내가.."
이든 맥스웰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끊었다.
"나 혼자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둘이서 동시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더 빨리 큐브의 힘을 해방될 수 있어."
큐브의 표면이 희미하게 진동하듯 일렁였다. 빛은 점점 강해지고 마치 두 사람의 결단을 기다리는 듯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이든 맥스웰은 큐브에 손을 얹고 집중하며 낮게 말했다.
"너도 빨리 큐브에 손을 대!"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한 손을 뻗어 큐브에 닿았다. 차갑지만 강렬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공기를 진동시키는 알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순간, 뒤에서 검은 물체가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하고 나서 보니 이터널이 있었다. 그는 곧장 나를 노리고 다시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이든 맥스웰이 허리에서 권총을 꺼내 겨눴다.
총성이 여러 발 울리자 이터널의 몸이 휘청이다가 무릎을 꿇더니 잠시 멈췄다. 그러나 곧 총알이 몸에서 빠져나가듯 튕겨져 나오며 상처가 아물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더니 목을 한번 풀고서는 이번엔 이든 맥스웰에게 돌진했다. 나는 재빨리 큐브 시스템을 발동해 이든 맥스웰을 중심으로 벽을 둘렀다. 이터널의 돌진은 막혔지만, 그의 시선이 다시 나로 향했다. 그는 곧바로 나를 향해 다시 달려왔고 나는 이든 맥스웰을 둘러싼 벽을 바로 해체했다.
그 순간, 이든 맥스웰이 바닥을 조작해 지하층과 연결된 구멍을 만들었지만 이터널은 재빠르게 점프해서 넘어갔다. 이든 맥스웰은 다시 한번 타이밍을 재다가 이터널의 발 밑에 큐브 장애물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이터널은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졌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도 바닥에 구멍을 만들어 그를 지하층으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바닥을 확인하며 잠시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이터널이 그림자처럼 튀어나왔다. 그는 이든 맥스웰을 강하게 밀쳐서 날려버리더니, 곧장 나를 향해 힘껏 도약했다. 찰나의 순간, 그는 한 번에 거리를 좁혀 내 몸을 세차게 밀쳐냈다.
"크헉.."
나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큐브에 부딪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곧 이터널이 다가와 내 목을 움켜쥐더니, 거친 힘으로 들어 올렸다. 숨이 막히며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졌다. 필사적으로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신이 조금씩 흐려지려는 그 순간, 허공에서 정사각형의 블록 하나가 날아와 이터널의 옆구리를 세게 강타했다. 이터널은 옆으로 튕겨 나가며 쓰러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었다. 블록조각이 날아온 방향에는 이든 맥스웰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바닥을 해체해서 나온 듯 보이는 크고 작은 큐브 조각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다시 일어선 이터널이 맥스웰에게 달려들었다. 이든 맥스웰은 떠다니는 큐브 조각들을 하나씩 그에게 날렸다. 그러나 이터널은 굉장한 속도로 구르며 피하고, 날아오는 조각들을 뛰어넘으며 그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그의 앞까지 다가온 이터널이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 그의 발 밑에서 거대한 큐브 블록이 떨어져나오며 이터널을 그대로 공중으로 밀어 올렸다. 이터널은 허공에서 떠있는 큐브조각 위에 있다가 그 큐브가 수십 개의 작은 조각으로 분해되며 흩어지자 그대로 떨어졌다.
"지금이다!"
나는 즉시 바닥을 열어 구멍을 만들었다. 이터널은 비명을 지르며 한 층 아래 지하로 추락했고, 나는 곧바로 바닥을 원래대로 닫아버렸다. 나는 여전히 허공에 흩날리던 큐브 조각들을 바라보다가, 숨을 고르며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지금 그것도 큐브의 힘이야?."
이든 맥스웰은 고개를 들어 큐브 코어를 흘끗 바라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아까 같이 큐브를 만져서 해체를 했었지. 이터널의 공격 때문에 잠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큐브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강해진 거야."
나는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도 아까 너처럼 만졌잖아. 그럼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는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지. 하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이제 막 큐브를 다루기 시작한 너에겐 아직 훈련이 부족하다."
그의 주위에 떠 있던 큐브 조각들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바닥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마치 잠시 열린 비밀이 다시 감춰지는 듯했다.
"어서 큐브의 힘을 마저 해방해야 해."
이든 맥스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까처럼, 손을 대고 집중하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큐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우리의 손이 닿기도 전에 입구 쪽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터널링 드론, 그리드라콘이 다시 내부로 들이닥친 것이다. 거대한 몸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자, 마치 꼬리에 얻어맞은 듯 수많은 보안 요원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비명이 메아리쳤고 방 안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어 이터널사령관이 무거운 걸음을 내딛으며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이터널사령부 중장과 군용 드론들이 대열을 갖추고 등장했다. 중장이외쳤다.
"거기까지다, 이든 맥스웰. 그리고 또 다른 이든."
그의 시선이 내게까지 스쳤다.
"너희 보안 요원들의 목숨을 지키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항복해라."
나는 숨을 고르며 이든 맥스웰을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는 먼지와 파편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만 믿어. 내 말대로만 한다면 이길 수 있다."
그의 두 눈이 빛나듯 집중되자, 곧 방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닥과 벽면이 격자 무늬로 갈라지더니, 파도처럼 물결치며 흔들렸다. 순식간에 벽과 바닥 일부가 큐브 조각으로 뜯겨 나와 공중으로 떠올랐다. 조각들이 허공을 메우며 그의 주위를 중심으로 진동했다. 곧 그는 손짓과 함께 그 조각들을 쏟아내듯 던지기 시작했다.
드론들은 날아오는 큐브를 피하려 했지만 일부는 그대로 날아온 조각에 맞아 벽으로 처박혔다. 드론들이 민첩하게 회피하려 했지만 사방에서 몰아치는 큐브 공격에 하나둘씩 격추되며 불꽃을 내뿜었다. 총탄은 튕겨 나갔고 폭발도 막혀버렸다. 잠시 동안 전세는 완전히 뒤집힌 듯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그러나 그 순간, 사령관 옆에 서 있던 중장이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이어 군복 상의를 벗어던지고 몸을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운 긴장감이 스며 있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앞으로 뛰쳐나왔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싶더니, 이미 큐브 조각들 사이를 뚫고 있었다.
"저건!"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중장은 이든 맥스웰이 던지는 큐브 조각들을 가볍게 피하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높이 점프해 허공에서 내려찍으며 그를 강하게 밀쳐냈다. 그 거대한 힘에 맥스웰은 멀리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구르다 간신히 멈췄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이든 맥스웰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중장급 정도의 이터널은 확실히 다르군."
둘 사이의 전투가 막 시작되려 하자 나는 이든을 도와주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거대한 터널링 드론, 그리드라콘이 몸체를 비틀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겁게 흔들린 금속 몸체가 마치 생명체처럼 몸을 뒤틀며 앞으로 밀고 나왔다. 거대한 덩치가 으르렁거리듯 진동하며 앞으로 나가며 머리 부분이 천장을 들이받았다.
지하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울리며 천장에 있던 두꺼운 콘크리트와 금속 구조물이 산산조각 났다. 거대한 파편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고 뜨거운 먼지와 연기가 시야를 뒤덮인 후에야 거대한 드론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이든 맥스웰 사이는 부서져 내린 천장 잔해들이 장벽처럼 가로막아버렸다.
그 거대한 드론의 의도를 눈치챈 나는 중얼거렸다.
"갈라놓으려는 건가?"
그때 이터널 사령관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든."
나는 멈춰 서서 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냉정하면서도 묘하게 호기심으로 일렁였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이든이라 부르면 되나?"
"... 이든 카터. 그게 내 원래 이름이다."
그의 눈빛이 나를 꿰뚫듯 바라봤다.
"이든 카터라... 너는 이든 맥스웰과 이름도 비슷하고 외형도 똑같이 생겼지만,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겉모습은 같아도 느낌은 전혀 달라."
나는 미간을 좁히며 반문했다.
"무슨 소리지?"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넌 망설이고 있어. 이 행동이 옳은 건지, 아니면 잘못된 건지... 그 주저함이 네 얼굴에 다 드러난다."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사령관의 표정은 점점 날카로워졌다."그가 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진 모르지만 분명한 건 하나지. 그가 말한 건 전부 진실이 아니라는 거다."
"진실이 아니라고?"
내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긴장이 묻어났다.
그는 비웃듯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 그가 뭐라고 했지? 우리가 보안본부의 프로젝트와 기술을 빼앗을 거라고? 그리고 아마 이렇게도 말했겠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큐브가 뿜어내는 빛을 가리켰다.
"큐브의 힘을 해방하면, 상상을 초월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령관의 눈빛이 번뜩이며 날카로운 미소가 번졌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내 앞에 섰다.
"네 눈빛이 말해주고 있다, 이든. 넌 지금 흔들리고 있어. 그가 말한 게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지."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나는 그를 믿는다."
사령관은 코웃음을 흘리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믿는다라고?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왜 하필 네가 선택되었는지... 아직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운명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혹시 네가, 이든 맥스웰이 처음부터 선택한 자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나를 선택했다고?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날 이용하려는 수작인가?"
사령관은 비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용하려는 건 내가 아니야. 바로 이든 맥스웰이지. 혹시 그가 큐브를 동시에 만지자고 말하지 않았나?"
나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당연하지. 애초에 큐브 시스템을 개발한 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는 네가 아는 이든 맥스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안본부 기술개발팀에 있던, 이름조차 이제는 지워진 한 과학자이지."
이터널 사령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 둘은 큐브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는 걸 알았기에, 둘의 권한이 동시에 작동해야만 큐브의 힘을 해방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뒀다. 그게 바로 안전장치였던 거지."
나는 순간 머릿속이 얼어붙는 듯했다.
"두 명의 권한? 그렇다면 설마.."
사령관이 말을 이었다.
"그래. 너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네가 맥스웰의 몸에 로그인된 것도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그의 계획의 일부였던 거지. 그는 처음부터 너 같은 존재를 필요로 했어. 그 과학자가 사라진 시점 이후로, 그는 혼자선 결코 큐브의 힘을 해방할 수 없으니까."
나는 숨이 가빠왔다.
"그럼, 그는 나를 일부러?"
사령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다. 넌 이미 그의 설계 속에 있었어. 네가 필요했기에 그는 널 끌어들인 거다. 그리고 그 목적은 뻔하지. 샤이닝 시티를 무너뜨리고, 자신만의 규칙을 가진 도시를 세우는 것. 우리 군이 보안본부를 견제해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
그의 말이 내 귓속을 파고들며 심장을 조여왔다. 숨이 답답하게 막히고 머릿속에서는 오래전 장면들이 하나씩 번쩍이며 떠올랐다.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 테스트 당시, 드론이 분명 나를 향해 날아왔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던 순간. 미로구간의 마지막에서는 마치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벽이 갈라지며 입구가 보이던 순간, 이후에 만난 맥스웰이 전투에서도, 시스템을 다루는 일에서도 항상 방해만 되던 나를 계속 지켜주고 살펴주던 일들. 그리고 마지막, 진작에 혼자 해도 될 일을 큐브 앞에서 굳이 나까지 끌어들여 함께 손을 대자고 했던 일. 그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면? 나는 두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정말.. 난 그가 필요해서 만들어진 도구였던 건가?'
나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사령관은 더욱 가까이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넌 지금 선택해야 해. 거짓된 이든 맥스웰의 말에 속아 파멸을 택할지, 아니면 우리와 함께 진실을 잡을지."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우린 너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이든 맥스웰을 잡는 데 협조해라. 그렇게 한다면 넌 샤이닝 시티에 정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더는 그림자 속에서 살지 않아도 돼."
한 발짝 다가섰고 그의 눈빛이 날 꿰뚫었다.
"그리고 보안본부 본부장의 자리까지 네게 줄 수 있다. 어차피 곧 공석이 될 테니까."
사령관의 마지막 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미 마스터와 이야기는 끝났다. 이제 결정은 너에게 달려 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순간, 내 심장이 크게 뛰며 가슴을 압박했다. 평생을 갈망해 온 자리. 빛의 도시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권리. 나는 숨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평생을 꿈꾸던 빛 속에서 살 수 있을까? 어둡고 축축한 섀도우 시티에서 벗어나, 드디어 빛의 도시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이든 맥스웰. 그는 나를 여러 번 구했다. 실력이 부족했던 나를 끝내 버리지 않고 옆에 두었다. 진짜로 날 믿었기 때문에? 아니면 이터널 사령관이 말한 것처럼, 단지 필요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두 목소리가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를 믿어라. 그는 널 동료로 받아줬다.'
'아니, 넌 도구일 뿐이다. 그는 널 이용해 온 거다.'
가슴이 뜨겁게 뛰었다. 이 순간, 누구를 믿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실은 안개처럼 뒤엉켜 있었고, 어느 쪽을 붙잡든 후회가 기다릴 것만 같았다. 혼란에 휩싸여 있던 그 순간, 뒤에서 무언가가 느껴져서 돌아보았다. 장벽처럼 막힌 콘크리트 더미들이 진동하며 출렁거리는 듯 흔들리더니, 이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며 옆으로 밀려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통로를 정리하듯, 콘크리트 더미가 서서히 치워져 갔다. 곧이어 무언가가 우리 쪽으로 떨어졌다.
"윽—!"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진 것은 조금 전의 중장이었다.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큰 부상을 입은 듯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숨이 막힐 정도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중에 떠 있는 수많은 큐브 조각들. 그 위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이든 맥스웰이었다. 흩날리는 큐브조각들과 함께 공중에 떠 있었다. 그는 빛을 두른 존재처럼 공중에 서 있었다가 큐브 조각들과 함게 내 쪽으로 다가오며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이든 맥스웰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이든 카터. 그자가 무슨 말을 하든 믿지 마라. 너와 나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일 뿐이다."
사령관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든 카터, 우리의 말을 들어라. 그자는 오로지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큐브의 힘을 쓰려할 뿐이다."
이든 맥스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믿는 순간, 섀도우 시티는 영원히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더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그 순간, 한 기억이 떠올랐다. 군에게 체포될 때, 이든 맥스웰이 나타나 나를 구해주고 헤어지던 그 순간의 일이다.
(과거 회상씬)
이든 맥스웰은 단호하게 말했다.
"도시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이들이 희생될 거다. 샤이닝 시티는 물론 프로젝트 지원자들이 있는 연구시설을 포함해서."
그 말에, 문득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클레리아!"
“클레리아? 프로젝트 지원 때 만났던 여자를 말하는 건가?”
이든 맥스웰이 물었다.
나는 곧장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너는 클레리아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미 테스트 당시의 영상을 전부 살펴봤다. 프로젝트 총책임자로서,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
"그녀를 살리고 싶은 거지? 마침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연구시설로 가는 거다."
(현재)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클레리아를 이용해서 내가 연구시설로 가도록 유인한 건지?"
이든 맥스웰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이지?"
나는 한 발 다가서며 단호히 말했다.
"너는 마치 군인들의 로그인을 막기 위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내가 갈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해 클레리아를 미끼로 쓴 거야. 그렇지?"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때 일부러 연구시설도 위험하다는 걸 언급한 거지. 내가 클레리아를 구하러 거기로 갈 거라는 걸 알고 그렇게 날 유도한 거잖아."
이든 맥스웰의 얼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테스트 때도 드론이 분명 나를 조준했는데, 결국 공격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어. 그리고 미로에서는 마치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벽이 갈라졌지. 그때는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드론과 벽을 조종한 것도, 너였던 거지? 그리고 마지막에 날 떨어트린것도.. 너가 한거지?"
이든 맥스웰은 비웃듯 미소 지었다.
"네 행동에 이유를 심어주려면, 클레리아만큼 효과적인 존재는 없었지. 그녀를 이용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나는 충격에 목이 메이며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째서...?"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잔혹하게 진실을 내뱉었다.
"넌 처음부터 내 도움이 없었으면 진작에 불합격이었어. 그래서 적절한 순간에 너를 잡아서 기억을 백업해두었지. 그리고 클레리아는 너를 이용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거 같아서 합격시켰다. 물론 제임스라는 녀석은 내 도움 없었어도 통과했겠지만."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왜 내 기억이 필요한 거지? 그냥 본인의 백업된 기억으로 또 다른 널 만들 수도 있었잖아. 게다가 연구시설에는 수많은 백업된 기억들이 있지 않아? 왜 하필 나지?"
맥스웰이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다른 기억으로 시도해 봤지. 하지만 대부분은 끝내 도망가려 했거나 나를 죽이려 했어. 실패작뿐이었지. 하지만 너는 달랐어. 프로젝트 시험에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자신만 살기 위해 남의 위험을 외면했으니까. 그런데 너는 클레리아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뻗어 도와줬지. 그 순간 난 확신했다.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타인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너야말로 제격이라는 걸."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낮게 말을 이었다.
"특히 내 기억으로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가 살기 위해 나를 죽이려 들게 뻔하거든. 내가 나를 더 잘 알지. 같은 자가 두 명이 공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한쪽은 결국 죽게 되지."
나는 숨이 턱 막히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동료라고 믿었던 순간들이, 전부 그의 계획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파고들었다.
난.. 단지 이용당한 거였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허무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믿고 따랐던 그 이름, 이든 맥스웰은 결국 나를 동료가 아닌, 하나의 도구로만 봤던 것이다. 손끝이 떨렸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지만, 그 고통보다 더 큰 것은 내가 끝내 철저히 속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곧 큐브의 힘을 해방하면 네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도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거야. 그렇게 된다면 섀도우 시티는 더 이상 그림자 속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너는 어둠을 끊고 진짜 빛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거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말 그 힘을 손에 넣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세상을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 수 있는 신처럼. 하지만 곧 그 생각을 거두었다.
나는 이든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네가 말했지? 세상에 같은 두 명이 공존할 수 없다고. 결국 한쪽은 죽음을 맞게 된다고. 그렇다면 네 계획에 내 생존은 포함되지 않았겠지. 큐브의 힘을 해방할 때까지만 날 이용하고, 그다음엔 나를 죽일 생각이었겠지?"
이든 맥스웰의 얼굴엔 냉담한 미소가 스쳤다.
"이제 널 설득하는 건 의미가 없겠군. 어차피 그럴 필요도 없다. 지금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으니까."
그 말과 함께, 내가 서 있던 바닥이 거대한 큐브 조각으로 갈라지더니 나를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고, 나는 이든 맥스웰과 함께 큐브 앞을 향해 끌려갔다. 나는 이를 악물고 큐브의 힘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이든 맥스웰이 보였던 것처럼 바닥에서 수많은 큐브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나는 이든 맥스웰을 막기 위해 그에게 조각들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손짓 한 번으로 그 모든 조각들을 다시 바닥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의 힘은 내 것보다 훨씬 강하고 정교했다. 마침내 큐브 앞에 다다르자, 나를 떠받치던 조각이 풀리며 나는 바닥에 거칠게 내던져졌다. 지면과 충돌하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샤이닝 시티를 다시 재건하겠다고 했지? 그럼 섀도우 시티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의 질문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건 곧 알게 될거다."
"아니... 그 힘이면 섀도우 시티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영향을 받겠지. 설마 지구 전체를 다시 재구성할 생각인 거야?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인지 알잖아!."
그의 표정은 굳어졌고 목소리에는 확신이 섞여 있었다.
"이미 늦었어. 넌 날 막을 수 없다."
"이 도시를 그냥 무너뜨리도록 둘 수는 없어!"
이든 맥스웰은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싸움은 의미 없다. 큐브를 다루는 힘은 내가 훨씬 강하니까."
한편,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령관옆에 쓰러져 있던 중장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큰 부상으로 쓰러져 있던 모습과는 달리, 어느 정도 회복된 듯 보였다. 그는 주위를 살피다 멈춰버린 그리드라콘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아직 실험 단계라 그런가. 에너지가 다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모양이군."
중장은 곧 사령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이든 맥스웰의 힘은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이터널 중에서도 꽤 강하다는 저조차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연구시설은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아 추가 로그인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 상태로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령관은 한동안 큐브 앞에 선 두 이든을 지켜보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
"이든 맥스웰의 목표는 단 하나, 큐브의 해방이다. 그 자는 그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그림자 속에서 기다렸고, 모든 조각을 계획대로 맞춰온 놈이지. 그러니 큐브를 완전히 해체하기 전까지는 결코 이든 카터를 쉽게 죽이지 않을 거다."
사령관의 눈빛은 헬멧으로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믿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우린 그 틈을 노린다. 이든 맥스웰이 큐브 앞에서 집중하는 동안, 다른 이든을 지켜보며 선택의 결과를 기다린다. 만약 그가 끝내 맥스웰을 막지 못한다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결정처럼 단호하게 이어갔다.
"둘 다 사살한다."
중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사살이요? 지금 큐브는 두 명의 권한으로만 작동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라지면 큐브를 해독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동안은 누구도 큐브를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우리의 계획도 오랫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령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만약 이든 맥스웰이 큐브를 해방하게 되면 우린 모두 끝이다. 단순히 이 도시만 무너지는 게 아니야. 지구에 있는 모든 도시 전체가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큐브를 봉인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사령관은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저격수들을 요청했다. 지금쯤이면 자리를 잡았을 거다."
그때 중장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레인저사령부입니다. 이터널 사령관님의 요청에 따라 저격수들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목표물은 확인 중입니다."
그 말에 중장은 무너져 내린 천장의 균열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어두운 잔해 틈새 너머, 은밀한 총열 두 개가 검게 번뜩였다. 붕괴된 철골 위에 엎드려 있던 두 명의 저격수가 조용히 목표물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레인저사령부 소속 스나이퍼였다. 도시 간 전쟁에서 수많은 장거리 암살 작전을 성공시켜 온 그림자 사냥꾼들. 지금 그들의 조준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큐브 앞에 선 두 명의 이든을 겨누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숨소리 속, 총열 끝이 서서히 맥동하듯 떨렸다. 두 명의 이든은 그 총구가 자신들을 향해 있다는 것 모른채,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