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정 영화기자
“어떡하죠. 지금 배우님이 인터뷰를 취소하겠다고 합니다.”
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매일매일 발행되는 영화제 소식지 <데일리>를 만들 때였다. 인터뷰 시작 전 거절 통보를 받았다. 하늘이 노래졌다. 마감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프랑스에서 온 그 배우는 오늘 자 표지 모델로 지면을 배정해둔 상태였다.
사정은 이랬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모 매체의 기자가 번쩍 손을 들고 당당하게도 “제가 이번 작품을 못 봤는데, 역할이 무엇이죠”라고 내뱉어 버린 거다. 망 질문을. 필요한 답변을 얻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영화를 못 봤다는 말은 굳이 왜 했을까. 여러모로 기분이 상한 배우가 갑자기 “이후 일정은 취소하겠다”라는 결정을 내려버렸다. 내 인터뷰는 그 이후 주요 일정 중 하나였다.
나를 구해준 건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었다. 한 차례 읍소 후 도달한 최선의 접점은 “곧 시작되는 영화를 관객과 함께 보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고 나온 후에 진행하겠다”라는 정도의 타협이었다. 다행히 열정적인 관객들의 질문과 환대에 배우의 얼어붙은 차가운 마음이 녹아내렸고, 결국 인터뷰는 무사히 이루어졌다는 훈훈한 후문이다. 이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노심초사 하며 기다린 내 수고만 빼면, 완벽.
인터뷰에 관한 한 에피소드는 많다. 근 20년간 나는 감독, 배우, 제작자, 스태프 막론하고 영화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인터뷰하며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인터뷰의 기술을 익혀 왔다. 근 20년 동안 매주 거르지 않고 업계 취재를 하다 보니, 연락처가 꽤 된다. 어느 날 후배가 “선배 핸드폰만 가져가면 영화계 모두와 연락할 수 있겠어요”라고 하더라. 재테크는 못 해도 ‘전번테크’는 확실히 한 것 같다. 그러니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유례없는 경축일 때 내 폰도 덩달아 바빠진다. 멘트를 요구하거나 출연 섭외도 들어오지만, 봉준호 감독 연락처 문의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도 대뜸 이전에 봉 감독님과 진행한 인터뷰 잘 봤다며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전화가 올 정도로 호황이었다.
이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인터뷰의 기술이 있을 법도 하다. 종종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는 말한다. 인터뷰는 ‘미리 쓰고 가는 기사’라고. 흔히들 인터뷰는 두드리는 ‘문’과 호응하는 ‘답’으로 이우러진다고 생각하는데, 다년간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인터뷰에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회자되는 인터뷰집 《히치콕과의 대화》도 제목이 ‘질문’이 아니라 ‘대화’일까.
인터뷰이와 테이블 석상에 마주하기까지 적게는 며칠에서 몇 달의 섭외 노동이 필요하다. 독대로 1, 2시간 정도 자리를 갖기 이전에 사실상 상대에 대해 기사화 할 모든 걸 준비하고 착석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즈갬빗>에서 상대의 의중을 간파하며 페이스를 유지하는 체스 천재 배스 하먼을 보면서 인터뷰 때의 긴장감이 연상됐다. 하먼 같은 천재는 아니지만, 긴장은 하먼만큼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그 끈을 놓친다면 초반에 대화의 흐름이 끊어져 버리고, 그날의 인터뷰는 망망대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난파선이 되어버린다.
공들여 섭외를 한 감독, 배우 등 취재원들과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철저한 준비의 시간은 그래서 필수다. 전작을 챙겨 보고 분석하는 것은 기본, 각종 자료를 섭렵하고, 가령 인터뷰이가 집필한 저서가 있다면 읽어 보는 수고도 필요하다. 더불어 취재원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보충해줄 수 있는 함께 작업한 감독, 배우, 스태프들의 취재도 흔히 하는 준비 중의 하나다. “이번에 OOO를 인터뷰 하는데요. 함께 작업한 이 사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일화를 들려줄 수 있나요?” 등등. 이렇게 탐문하듯 주변 작업자들을 추궁해 수집한 멘트들은 인터뷰 당일 취재원과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기사를 구성할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고, 또 기사에 녹여 낼 멘트로 활용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쓸데가 많다. 인터뷰 대상이 정해지지 않아도 이 작업은 언젠가 이루어질 인터뷰를 위해 평소에도 꾸준히 비축해 둔다.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그런 요긴한 발효 재료다.
그런데 이 역시 선뜻 원칙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것만 믿었다가는 또 다른 오류가 발생한다. 이미 기사에 목적하는 방향이 있어서 그 방향으로 답변자의 대답을 몰아간다면, 그것만큼 가치 없는 인터뷰가 또 없다. “이런 의도로 하셨죠?”라고 물었을 때 인터뷰이가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얻기 위해 재차 삼차 몰아붙였다가 대화가 중단되는 케이스도 많이 봤다. 한번은 이런 경우도 봤다. 전화 인터뷰를 하던 후배 기자가 대화 도중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리더라. “어차피 제가 원하던 멘트는 나와서, 더 들어도 기사에 쓰지 않을 거라서요.” 인터뷰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 간 대화의 기본조차 없어 보였다.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인터뷰의 기술은, 결국 내가 습득한 기술을 허무는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자를 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팁을 줄 때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질문지는 잊어라’다. 현장에서 인터뷰이의 답변은 예측과 달라질 때가 많다. 그런데도 저 혼자 정해둔 경로를 수정하지 않고, “제가 물을 다음 질문은요.” 하며 질문지를 고수하면 낭패가 따로 없다. 준비한 질문지는 그러니 마음속에 킵해두었다가 여차하면 폐기 처분해야 한다.
인터뷰는 늘 어렵다. 사회 초년병 때는 인터뷰를 하고 나면 처음 도로주행을 나간 날처럼, 등에 땀이 났다. 지금도 물론 그 긴장으로부터 100퍼센트 자유로워지진 못했다.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시간은 마치 고무줄 양끝을 팽팽하게 맞잡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대쪽 끝에서 이 소통에 흥미를 잃고 대화의 줄을 놓아버리면… 그 아픔은 고스란히 내 직업적 자괴감으로 돌아온다. 좋은 인터뷰, 만족할 만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 이 직업에 있어서 언젠가 도달해야 할 성취의 지점, 아직은 오지 않은 저 먼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일전에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화정의 전주가 오디오>에서 <69세>의 임선애 감독과 <갈매기>의 김미조 감독을 한 자리에 모아 크로스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두 영화 모두 성폭행 피해자인 노년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두 감독의 대화에 의미가 더해졌다. 그들은 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면서도 제대로 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을까.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그날 우리의 엄마이자, 전 세대의 여성이 겪어온 차별의 시대, 그 아픔에 공감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사람 대 사람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주제를 공유하며 때로는 언쟁이 될 말도 거리낌 없이 하며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서로의 삶의 경험과 견지해온 철학을 말로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부디 내가 건네는 말들이 질문이라는 일방적이고 딱딱한 공격의 언어가 되지 않도록, 인터뷰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펼치고, 인터뷰를 접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인터뷰어인 내가 그 가운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오늘도 준비한 질문지들을 고이 접어 넣고 인터뷰 테이블에 앉는다.
<계속>
이화정 영화기자
前 「씨네21」 기자
前 「필름2.0」 기자
前 「무비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