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연 PD
“으응애애애….”
서울 용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2.7킬로그램짜리 빌빌한 아이가 하나 태어났다.
“축하드려요! 예쁜 따님이에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아기의 아빠는 간호사가 데리고 나온 작은 아이를 보고 커다란 한숨을 내쉰 뒤, 힘들게 출산한 아내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간 아빠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시간 여행 능력을 이용해 아내가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딸을 낳을 때마다 다시. 다시. 또다시. 각고의 노력 끝에 아내가 드디어 아들을 낳던 날, 눈물을 흘리며 “당신 몇. 번. 씩이나 정말 고생 많았어”라며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았다.
하지만 시간 여행까지 해가며 얻은 아들이었건만 아빠는 늘 아내가 딸을 낳았던 그날을 떠올렸다. 내내 아빠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던 이불에 싸인 그 아이. 길게 옆으로 찢어진 눈과 오물오물하던 입, 꼭 쥐고 있던 손가락. 아빠는 고민 끝에 마지막 남은 시간 여행의 기회를 그 아이를 위해 쓰기로 했다. 아내가 딸을 낳던 그날 아침 7시로 돌아간 순간, 분만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나왔다.
“축하드려요! 예쁜 따님이에요.”
아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웃음으로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다른 아이처럼 발육이 좋진 않았지만 잔병치레 없이 잘 커줬으며 손재주가 좋아 조물조물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아빠는 아들과 함께 가고 싶었던 산에 딸의 손을 잡고 올랐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손수 초콜릿을 만들어 사춘기 딸의 손에 쥐어주며 좋아하는 남자친구와의 사이를 응원해주었다. 나가 노는 것보다 책을 좋아하는 딸이 끄적끄적 써놓은 얼토당토않은 원고를 들고 당당히 출판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IMF 시절에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며 처음으로 부모의 도움을 청하는 딸을 위해 힘든 사정에도 1년 동안 딸의 해외 유학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빠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꼬물꼬물 뭔가를 만들고 보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는 학교를 졸업한 후 방송국에 입사하였고 어느덧 PD가 되었다. 딸은 아빠와 함께 자주 보던 영화와, 아빠가 들려주던 음악이 큰 도움이 됐다며 영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TV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딸이 아빠에게 준 가장 큰 행복은 아빠만 보면 웃는 환한 얼굴이었다. 딸은 아빠가 살아온 인생을 존경했으며 아빠가 유년기에 들려준 옛날이야기와 아빠가 데려가준 오락실, 아빠와 오르내리던 산길, 그리고 아빠가 보여준 세상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 감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빠와 닮아 있는 것에 항상 고맙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삶 속의 매일을 여행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훌륭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어바웃 타임> 중에서
마지막 시간 여행 능력을 써버린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도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아빠는 딸을 통해 인생이라는 훌륭한 여행을 최선을 다해 즐겼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빠의 손을 꼭 잡은 딸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인생에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준 아빠! 저도 아빠가 그랬듯 매 순간 내가 놓쳤던 소소한 것들에 행복하며 최선을 다해 살게요!”
<여고괴담>의 ‘재이’처럼 반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감 제로의 그녀는 또래의 아이들이 열을 올리던 발표라든지 교우관계라든지, 선생님께 받는 관심과 인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하교 후 좋아하는 TV 쇼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는 것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사랑의 굴레> <청춘의 덫> <조선왕조 500년> 등의 치정극을 보며 어른들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존재감 제로인 그녀도 결국 교실의 빅마우스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음악을 듣기 위해 동네 롤러장을 찾은 그녀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빅마우스는 “저 아이는 롤러장에 다니는 날라리”라는 유치한 소문으로 그녀를 ‘아무도 몰랐던 진짜 날라리’로 낙인찍어 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일이 그 말에 변명하거나 대꾸하는 것이 귀찮았다. 맞받아쳐 교우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트리플 A형이었던 그녀는 소심함과 예스병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방송국에서는 유난히 학벌이 높은 PD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아닌 듯 은근히 노골적인 ‘학벌 따지기’와 ‘학연 챙기기’는 때마다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SKY 신방과 출신’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된 못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시작은 회사의 모 국장으로부터였다.
국장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어! 너 말이야 대학 어디 나왔더라?”라고 큰 소리로 물었다. 그녀가 졸업한 대학교가 어디인지 뻔히 알면서 매번 물었다. 그녀가 “건국대학교 졸업했습니다.” 대답하면 “아 맞다. 그랬었지? 넌 패스!”라고 빈정대듯 말하고는 그녀와 함께 있던 PD에게 “넌 어느 대학 나왔지?”라고 다시 물었다. 질문을 받은 이가 퉁명스럽게 “고대 나왔는데요?”라고 대답하면 “아우~ 그래야지. 너 이리 와서 인사할 분이 있어.” 하며 으레 손을 잡고 국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모 변호사로부터 ‘이대 출신’이 아니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달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녀는 대학을, 그것도 ‘in 서울 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차별의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이대 나온 여자’가 아니어서 자리를 옮긴 이후, 그녀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시니컬한 독설가가 되었으며 타인의 시선과 웃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뒤틀린 마음이 가슴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사람이니까 실수는 할 수 있지’라고 용서하지도 않았으며, 친절한 사람들에게는 ‘뭔가 나에게 원하는 게 있지?’라는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가시 돋친 태세로 세상에 나서자 놀랍게도 세상은 그녀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 앞에서는.
그녀는 어느덧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선배가 되어있었다.
“너 착하게 살지 마라, 그럼 사람들이 너한테 못되게 군다?
근데 네가 못되게 굴잖아? 그럼 너한테 사람들이 착하게 굴어”
― <미쓰 홍당무> 중에서
<계속>
김미연 PD
JTBC <방구석1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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