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촛불집회 전날에....
드라마를 좋아하는 길라임에게
들려주는 영화 속 악당 두 번째 이야기
영화 속 악당은 쉽게 죽지 않는다.
늘 이러저러한 당위성을 떠벌이며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리고는 늘 한쪽에서는 살 궁리를 한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이것이 영화 속 악당이 죽기 전에 늘 하는 짓거리다.
하지만 악당이 이렇듯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악당의 목숨을 쥔 주인공이 측은지심을 가지고 악당에게 말을 시키는데서 비롯된다.
예나 지금이나 악당과는 대화하면 안 된다.
요즘 영화에서의 악당은 예전처럼 구걸 따위는 하지 않는다.
구걸은 고사하고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않는다.
악당은 수치심이 없는 관계로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다.
도리어 요즘 악당은 자신이 살기 위한 수단으로 주인공을 시험에 들게 한다.
끊임없이.
하여 주인공은 악당의 손아귀에서 살려고 동분서주하게 된다.
(우리도 매주 광화문에 나가는 것이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예전의 악당이 주인공에게 비굴하게 살려달라며 등 뒤로 권총을 빼는 식이라면,
요즘 악당은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주인공을 죽음의 위협 속으로 몰아넣는다.
영화가 끝나도 악당은 죽기는커녕 유유히 군중 속으로 사라지며 속편을 예고한다.
악당이 비굴하게 생명을 구걸하는 영화는 이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명을 구걸하며 등 뒤로 권총을 빼내는 악당의 행동은 차라리 귀여웠다.
내가 악당임네 하며 짓던 음흉한 웃음소리와 지극히 악당스러운 눈빛이 도리어 그립다.
스스로 순수하다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요즘 악당은 죽이기가 너무 힘들다.
주인공이 사력을 다해 공격을 해도 악당은 상황마다 기름장어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는 영화는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한 영화가 있는데 다행히도 악당의 대사가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님으로 힘들고 지치더라도 분노를 멈춰 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악당이 대를 잇는 이 지긋한 시리즈물을 종식시켜야 한다.
긴 시리즈였던 만큼 악당은 좀처럼 박멸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엔딩만큼은 예전 영화처럼 통쾌하고 확실하게 악당을 처단하는 걸로 매듭짓자.
악당의 시체를 마차에 끌고 다니면서 승리를 자축하자.
그러기 위해서
날이 밝으면 또 광화문으로 나설 것이다.
악을 소탕하고 말,
가장 아름다운 백만 명의 주인공이 있는 그곳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