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과의.... 그 황홀한 시간
영화 '중경삼림'의 양조위 첫 등장 장면이다.
어둠 속 골목에서 뭔가를 적던 경찰 663은 카메라를 향해 걸어온다.
바로 아래 장면 전, 낮은 곳에 있어서 잠깐 모자밖에 보이지 않던 그가 화면 앞으로 걸어온다.
이 모습은 흡사 관객에게 달려드는 것과 같다.
이 모습을 보는데 내 가슴이 다 철렁 내려앉았다.
오~ 양조위
이 한 컷으로 왕정문이 왜 사랑에 빠진 것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애인과 헤어진 양조위가 먹는 것을 늘 블랙커피.
양조위를 생각하며 기다리는 왕정문의 맘을 이 한 컷이 고스란히 설명해주고도 남는다.
1994년... 20세기.
지금으로부터 20년도 훨씬 지난....
막 영화를 꿈꾸며 처음으로 만든 영상이 있었다.
영상이라 함은 영화도 아닌.. 그러니까 그냥 영상.
영화 만드는 일을 꿈꾸며 만든 그 영상 엔딩에 나는 중경삼림의 '몽중인'을 넣었다.
오늘 영상자료원에서 바로 이 영화 '중경삼림'을 봤다.
이 영화를 나는 지금은 사라진 '씨네하우스'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629&cid=40942&categoryId=33132
혼자서 봤다.
이 영화에서처럼 실연을 당해 서가 아니라,
데이트 신청을 한 여자에게 바람을 맞아서.
그래서인지
난 이 영화가 유치한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다.
(왕가위를 그리 좋아하면서도 이 영화는 다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다시 만났다.
그것도 35mm 필름으로.
'중경삼림'과 더불어 전날 함께 본 영화들.
'해피투게더' '화양연화'가 모두 필름으로 상영하였다.
지글대는, 흔히 비가 오는 필름을 다시 만난 것은 그저 만났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러니까 필름의 질감이 망막을 애무하는,
혹은 마구 문지르는 느낌.
그것도 필름을 가장 현란하고 유려하게 만든 왕가위의 영화를.
이것은 낡은 유물을 보고 옛것의 정취를 느끼는 수준을 넘어선,
참으로 신선한,
황홀한,
시간... 시간... 시간.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