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With You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오릅니다.
엔딩크레딧에 지나치는 그 '이름'.
그의 이름을 보자 옛 일이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년전,
저는 술자리에서 한 여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얘기를 합니다.
누구처럼 술이 취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그 시절 저를 생각하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런 저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고소하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공표합니다.
저는 그 다음날로 그녀 앞에 사죄하고 사죄합니다.
그녀는 제 사죄를 받아주고 저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제야 한 숨 돌리며,
필름이 끊긴 제가 그녀에게 한 얘기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그날 그녀에게 말한 '얘기'를 입에 담기 싫다고 거절했지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아야 진짜 사죄가 아니겠냐고 그녀를 설득했습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거절을 한 후에야
제가 술에 취해 했던 얘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뽀뽀 한 번 하자"
였습니다.
“ MeToo ”
저는 제가 한 만행을 고백합니다.
나도 당했다가 아닌, 저도 가해자였습니다.
그런 의미의
MeToo 입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솔직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MeToo' 운동을 촉발한 사건이 있습니다.
안태근 검사가 서지현 검사를 장례식장에서 더듬은 사건.
그의 말대로라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8년 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시 제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녀가 몇 번의 거절 끝에 말해준,
내가 그녀에게 했던 성희롱 대사를 듣는 순간 맥이 풀렸습니다.
'겨우 그 얘기 가지고 그렇게 고소 운운하며 이 난리를 쳤단 말인가?'
‘고작 "뽀뽀 한 번 하자"는 말에 그리 입에 담기도 싫은 수치심을 느꼈단 말인가?’
그 당시에는
이 상황을 전해들은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를 나무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심지어 여자까지)
하지만
저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정보를 얻습니다.
첫째,
저가 술김에 했던 말에 그녀는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의 입에 담기도 싫은.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둘째,
그녀에게는 내가 대하기 어려운 '선배'였다.
저는 그녀에게 사죄를 하면서 그녀와 꽤 긴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안개속의 미로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알려준 두 가지 정보로 저는 그 미로를 꾸역꾸역 찾아나가기에 이릅니다.
그녀가 느낀 수치심 이전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에게 저는 강자, 갑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보다 힘만 우월한 남자뿐 아니라
그녀가 하고 싶은 일 쪽 계통에 저는 선배였던 겁니다.
물론 저도 그 당시 영화를 막 시작한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았기에
제가 갑의 위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저는 두 번째 정보를 이해하고서야 그녀가 느낀 수치심이 이해가 갔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우리는 수시로 상처를 받습니다.
선배, 상사, 상급자, 클라이언트, 선생, 교수 등 우리들 보다 힘 있는 자들에게 말이죠.
거기에 또 하나가 여자라는 위치입니다.
여자.
우리 남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여기서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의 다름의 성구분이 아닙니다.
그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가부장제에 패권을 쥐고 있는 남자와 그 외의 성을 말합니다.
이 권력에서 누락된 여자의 삶은 실로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이재용이 노동자의 삶을 가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네요.
저는 여자를 모릅니다.
알 수 없지요.
그런 제가 술김이라는 미명아래 했던 말은 성희롱 이상의 폭력입니다.
지금 서지현 검사를 향한,
서지현 검사로 촉발된 MeToo 운동에 대한 시각이 나뉘고 있습니다.
MeToo 운동 대한 반발은
예전에 제가 행한 일을 두둔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 남자들은 현재 MeToo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닥 곱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마치 ‘샤이보수’처럼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감히 말합니다.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안태근의 성추행 사건은
어떤 미친 또라이가 지하철에서 여자 엉덩이를 만지는 따위의 성추행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한 나라의 힘이 집중되어 있는 권력 최상층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자신의 과실을 인정 하기는 커녕 지위를 이용해 오히려 2차 피해를 가하는.
그리고는 그 일을 비호 은폐하는.
그래놓고는 술자리에서 낄낄대며 또 그 짓거리를 할 것이 뻔한.
지하철에서 여자 엉덩이에 손을 대는 또라이 보다 백만 배 죄질이 나쁜.
한편으로는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서지현 검사의 발언은 용기를 넘어서는 어떤 무엇입니다.
그의 결단으로 촉발된 MeToo 운동에 부끄러운 가해자였던 저는 남자이지만 동참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영화 현장에서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만나서 반가왔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