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를 꿈꾸는 당신께
저는 배우를 경외합니다.
오롯이 관객을 대면하는 분은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스크린 앞에서 웃고 울고 두려워하고 혹은 사랑에 빠지는.
이 모든 감정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눈썹 하나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겪은 체험입니다.
그렇게 스크린에 몰입했고,
그리하여 저는 결국 영화 만드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배우를 꿈꾸지 못 하고 카메라 뒤로 숨게 됩니다.
저를 영화현장까지 이끈 이는 배우, 그들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연극을 관람했던 기억은 이렇습니다.
처음 관람한 연극은 ‘대머리 여가수’라는 연극이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니, 보는 내내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봤던 연극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첫 연극 관람은 봤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경험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연극의 내용이 아닌 오로지 배우의 연기하는 모습을 체감했습니다.
이오네스코라는 극작가가 펼쳐낸 이야기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당시 저로써는 이해할 수도 없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오로지 기억나는 것은 바로 내 코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입니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말하는데 침이 튀는.
그들의 손짓 발짓은 내용과 상관없이 격정적이고 아름다운 움직임이었습니다.
MeToo 운동으로, (서지현 검사님의 용기로)
연극계의 치부가 까발려졌습니다.
그 실체는 정말 역겹습니다.
그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목소리까지 변조된 인터뷰에서
그를, 아니 그 새끼를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괴물에게 짓밟힌 여배우들은 그 괴물의 밀고하는 순간에도
그 괴물을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몸서리쳐지는 치욕과 수치를 당하거나 감내했다면 그것은 배우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괴물에 뜯긴 상처로 인하여 혹여 배우가 되려는 자신의 욕망을 자책하지나 않을는지요.
그 욕망은 아름다운 것인데.
저처럼 배우의 모습에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여 꾸는 꿈일 텐데.
그 욕망을 이용해 그들을 짓밟고 능욕한 그 새끼는 괴물입니다.
사과하는 기자회견에서조차 합의하에 했다고 지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으로 포박하여 저항 못 하는 것을 합의라고 믿는.
그 새끼는 괴물입니다.
배우들의 꿈을 한 입에 씹어 삼킨 괴물입니다.
배우를 욕망하는 많은 그들.
특히 여자라는 이름으로 배우를 꿈꾸는 그들을 위로합니다.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의 꿈을 탓하지는 말길.
그 꿈은 참 아름답습니다.
배우를 꿈꾸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