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해할 수 없다

글러먹은 어른 되기

by 이게바라

저 술장사 한다 했잖아요.

그거 아세요? 올해부터는 2000년생이 술을 먹어도 됩니다.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이 성인이 된 겁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월드컵 4강을 경험해보지 못 했고,

스마트폰이 당연시 되는 세대입니다.

저는 요즘 술을 마시는 2000년 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근데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70대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벌써 재작년이 되었네요.

재작년 12월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오시는 할아버지 손님인데요.

작은 체구에 야구모자를 쓰고, 옅은 색깔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다니시는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이신 할아버지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소싯적에 영화 간판을 그렸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스마트폰에 담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제게 보여주며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쓴 시를 읊으시는가 하면,

신청곡은 늘 같은 노래였습니다.

195,60대 허리우드 서부영화 ‘하이눈’과 ‘셰인’ OST

작년 가을부터는 아이유가 부른 ‘10월의 마지막 밤’을 반복해서 듣기를 원했죠.

그랬던 그가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낸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담긴 태극기 집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제게 보여준 겁니다.

그는 심지어 몇 백만 원씩 내가며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 낭만적인 할아버지 손님의 정체는 열혈 '박사모' 였던 겁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 할아버지가 너무 꼴 보기 싫었습니다.

심지어 이 할아버지가 정치 얘기를 할 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습니다.

“정치 얘기 그만 하시라구요.”


그 때문인지 그 할아버지는 제 가게를 자주 찾지는 않습니다.

그지만 잊을만 하면 한 번은 들리십니다.


저는 불현듯 그 분을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죠. ​

그래서 할아버지의 자기 얘기를

아무 대꾸 없이 유심히 들어보았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더듬어 가다보니 그곳에는 그 할아버지의 청춘이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인권유린하며 독재하던 시기에

그 할아버지는 젊었고 왕성했으며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도 하였습니다.

엄혹한 시절이 그에게는 화양연화였던 겁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한들

자기 자신이 늙고 병들었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 할아버지에게 박정희 시대는 지울 수 없는, 지워서는 안 되는.

무턱대고 옹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청춘' 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아무 댓가 없이 자신의 돈 몇 백씩 기탁해가며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박사모'가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박사모'를 만분지 일이지만 얼추 이해하고 나니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21세기에 태어난 인류가 술을 먹는 이때 어른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한편으로는

이해한다는 것이 적당히 타협한다는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게 맞는 걸 겁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거 쉽지 않아요.

박사모 할아버지는 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좌파라며(좌우가 뭔지는 모르는 저한테) 몰아세우는 것을 봐서는 말이죠. ​

그렇게 자기가 옳다고 밀어붙이는 모습을 봐서는 말이죠.

심지어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치 않고 몰아붙이면서 하는 한 마디는 이겁니다.

"나야 다 살았잖아. 내가 이러는 건 다 너처럼 젊은 사람을 위해 이러는 거야."


오~ 이런! 나를 위해서라네요, 이 할아버지.

21세기 태어난 친구들보다 이 할아버지가 어른이랄 수 있을까 싶습니다. ​

만분지 일, 얼추 이해했던 할아버지는 그냥 이해할 수 없는 할아버지입니다.

저도 어른 되기는 글러먹었거든요.



저는 그냥 그러려니 그렇게 이 할어버지에게 와​인 한 잔을 팝니다.

저는 술장사를 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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