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양반다리지
추석이라 집에 다녀왔어.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집이야.
멀지 않아. 지하철 타고 가면 되는 집.
가서 점심 먹고 온 거야.
근데 어머니가 예배를 보재.
그래, 난 이른바 모태신앙이야.
하지만 난 무신론자에 가까워.
무신론자에 가깝다는 말은,
신이 있다고 한들,
(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신은 인간사에 자잘하게 개입을 안 한다는 얘기.
그러니까
신한테 굽신거릴 필요 없다는 얘기야.
다만 죄짓고는 살지 말아야지.
다행인 것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이 인정을 해줘.
(여기엔 쓰레기 같은 목사들이 큰 도움됐음은 물론이야.)
완전 할렐루야지.
가정예배를 볼 때, 아버지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심에도
난 버젓이 양반다리로. 심지어 눈도 잘 안 감아.
내가 그랬잖아. 신이 있다고 한들 내 기도에 관심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굽신거릴 필요 없다고.
그런데 말야, 오늘 가정예배는 좋았어.
오늘 말씀은 호세아 4장 1절부터 3절 말씀.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인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 진리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이건 뭐, 세상에 진리도 사랑도 없고. 피가 피를 뒤잇고. 심지어 새가 다 쇠잔하고 바다에 고기가 없어진다니.
아버지가 이 구절을 읽어주시며
중국의 목사 윈 형제와 링컨 대통령의 기도를 예로 들어주시는 거야.
그들의 기도가 이랬다는 거야.
윈 형제는 시련을 짊어질 등짝을 달라고 기도했고,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지든 이기든 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기도했다는 거야.
언 듯 별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이들은 신에게 무엇도 원하지 않았어.
시련이 오면 그대로 짊어지겠다는 것,
전쟁이 진다고 한들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겠다는 거잖아.
엄밀히 전쟁에 진다고 한들 절망하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이야.
시련이 온다고 한들 절망하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이야.
세상이 어떤지는 호세아 4장 1절부터 3절을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고.
추석이라고 오랜만에 찾은 집.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하신대.
어머니는 우리 아들 잘 되라고,
아버지는 시련이 와도 좌절하지 말라고 기도하신대.
난 두 기도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이란 게 뭐야.
다 그런 거지, 뭐.
하지만 어머니 기도보다는 아버지 기도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네.
오늘은 날씨가 맑아 보름달이 잘 보여.
나도 기도나 해야지.
어떠한 시련이 와도 그 시련을 버틸 기립근을.
하지만 그보다도 어머니 아버지의 건강을.
.........
그러고 보니 인간은 나약하여 무신론자가 되기 힘든 거 같아.
그래, 오늘은 명절을 맞아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기도 한 번 한다.
신에게 굽신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