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6일 _ 검은 사제여, 나를 구마 해주오
작년 봄이었을 거다. 한 영화감독 지망생이 나에게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나는 그 시나리오를 보고 난감했다. 왜냐하면 너무 나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재미없게 봤다.
나는 그 영화감독 지망생과 그리 친하지 않은 터라 대략 재미없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후 삼 개월 안에 그 시나리오는 영화제작자와 계약을 체결했고, 캐스팅마저 끝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 영화가 바로 <검은 사제들>이다.
나는 <검은 사제들>이란 영화를 찍기 전 시나리오를 보고 이렇게 얘기했었다.
투자자에서 시나리오를 싫어할 거 같고, 배우들도 좋아하지 않지 않겠냐고.
하지만 잘 알다시피 영화사, 집에서 제작을 했고, CJ에서 투자했으며,
캐스팅은... 더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덧붙여 나는 감독에게 이런 충고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영화가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단편영화,
<12번째 보조 사제>가 섹시해서이지 시나리오가 흥미로와서가 아닐 거라고.
이 같은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검은 사제들> 시나리오는 재미없었을뿐더러 읽기도 무척 힘들었다.
(나는 읽기 싫은 글이 눈 앞에 펼쳐지면 어김없이 난독증이 심화되는데, 이 시나리오가 그러하였다)
하지만 영화 <검은 사제들>은 너무 좋다.
<검은 사제들>의 감독은 내가 예상했던 재능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의 재능은 영화를 새끈 하게 찍는 정도가 아닌, 장인의 집념까지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것을 진정성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지, 진짜 이야기꾼이라고 말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진심을 다해 엑소시즘을 파고들었다.
엑소시즘을 믿지 않는 신부들을 웃어넘기는 김신부처럼, 감독은 진실로 엑소시즘을 믿었다.
최소한 영화를 준비하고 만드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런 그에게 라스트 엑소시즘 장면에서 뭔가 더 보여주고 싶은 유혹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영화 관계자 중엔 마지막이 아쉽다, 혹은 허탈하다는 식의 반응도 있었던 거 같다.
그네들은 좀 더 영화적인 무언가를 기대했을 텐데... 만약 그 도를 넘었다면,
지금의 <검은 사제들>처럼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감독의 진정성은 영화의 플롯도 뒤흔든다.
이 영화는 한 시간을 엑소시즘을 보여준다. 그냥 내리 절정인 것이다!
시나리오가 재미없다던 내게 감독은 호언장담했다.
이것이 새로운 방식의 영화라고.
그의 호언장담은 맞았다.
<검은 사제들>는 우리나라에서는 안 다루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삼아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를 접근하는 감독의 마음가짐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새로웠던 것이다.
믿기 힘든 '엑소시즘'을 감독은 신심을 다해 믿어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만약 그것이 불안했다면 라스트에 영화적인 뭔가가 더 들어갔을 테고,
그랬다면 <검은 사제들>은 여느 호러 영화처럼 평범해졌을 것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영화는 90분에서 120분 사이를 오가는 영화적인 영화.
최근에 본 '그래비티'나 타란티노의 영화들.
하지만 내 안에 시스템 눈치를 보던 악령이 깃들어 있다.
마치 김신부의 '엑소시즘'을 믿지 않고 비웃는 신부들처럼.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
'검은 사제들'이여 나를 구마 해주오.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