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다 흐려짐
오늘도 여자친구와 곱단이랑 산책을 했다.
(요즘은 여친이 바쁜 관계로 곱단이 산책길에 꼽사리 껴야만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오늘은 곱단이를 받아주는 식당에 들어가 식사도 함께 했다. 쭈꾸미 전문 집인데 고르곤졸라 피자가 더 맛있는 집이었었다. 무엇보다 곱단이와 함께해서 더 기분 좋은 식사였다.
오늘은 내 여자친구의 반려견 곱단이 얘기를 조금 하고자 한다.
웰시코기인 곱단이는 유기견이었다. 2012년 5월 3일 약 여섯 살의 나이로 여친 집에 왔다. 그러니까 현재 곱단이는 약 열네 살 정도 된다. 나이가 꽤 든 데다가 웰시코기 특성상 허리가 길다 보니 디스크로 고생을 했었다. 곱단이 뒷다리에 이상이 생긴 것은 작년 봄부터였다.
그때 여친은 곱단이를 반드시 걷게 한다며 일주일 넘게 입원도 시키고 퇴원 후에 더 안 좋아지자 용하다는 의사 선생을 찾아다녔다. 그러기를 일 년에서 계절이 세 번 더 바뀌었다.
현재 곱단이는 이런 상태다. (오늘 산책할 때의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작년 봄에 치료로 부항을 뜨고 있는 곱단이다.
곱단이는 다시 걸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워낙에 나이가 많은 데다가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사실 여친과 곱단이가 처음 만난 2012년 5월 3일에 둘은 무척이나 서먹한 사이였다.
이유인즉 그때 곱단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여친의 룸메였다.
여친의 룸메는 평소 알고 지내는 수의사를 통해 곱단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처음부터 키우기로 하고 데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여친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한 달만 키워본 후 키울지 말지 결정하자는 룸메의 권유로 데리고 온 거라 했다.
그게 벌써 9년 전. 지금 곱단이는 여친만 찾는다. 오로지 여친만 찾는다.
이유는 정직하다. 여친이 곱단이를 지극히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곱단이를 대하기 때문이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곱단이의 똥오줌을 치워주고 휠체어에 유모차까지 챙겨 매일 산책시켜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참 못 할 짓인 게 부모 자식 간에도 힘들 수 있는데 하물며 곱단이는 인간과 종까지 다르지 아니한가!
처음엔 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도가 지나치다고도 생각했다. 무엇보다 곱단이한테 들어가는 병원비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이 감동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감동도 가끔 보니까 그렇지 그녀의 삶으로 들어가면 전쟁과 다름 아니다. 웰시코기는 대형견은 아니지만 중형견에 속한다. 이런 웰시코기를 수시로 오줌을 누여줘야 한다. 이 때문에 여친은 새벽에 수차례 일어나야 한다. 곱단이 오줌 누이려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여친은 손목에 관절염이 생겨 운동선수나 붙이는 파스를 항상 붙이고 있다.
그럼에도 여친은 곱단이와 헤어질까 봐 항상 노심초사하며 더 잘해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 모습이 항상 숙연해지면서 존경스럽고......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그녀는 곱단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치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