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일 _ 2020년

part2

by 이게바라

파란 하늘



아침부터 시작한 촬영은 갓 4시가 지난 비교적 이른 시간에 끝이 났다. 촬영장이 가까웠기에 일요일 오후 한산한 거리를 산책하듯이 걸어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굳이 안 가던 길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그러면서 문득 나의 어머니 젊은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른바 주공아파트라고 하나? 넓지 않은 평수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그곳 가장 높은 층수인 5층에 어머니가 있다. 무척 젊고, 날씬한 어머니는 헤어밴드를 하고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고 있다. 반 팔에 긴치마 원피스다. 헤어밴드를 한 탓에 반듯한 이마가 반짝 빛이 난다. 날씨는 따뜻해서 베란다 창문은 다 열려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아파트인데도 거실엔 피아노가 한 대 있다. 어느샌가 피아노 앞에 어머니가 앉아있다. 반짝이는 이마가 까딱이고 긴 팔이 움직이며 피아노를 친다.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엄마여서가 아니라 여자로 참 예쁜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머니가 했던 피아노 연주는 ‘바이엘’ 수준의 연주였다. ‘엘리제를 위하여’ 정도였던 거 같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나도 엄마에게 젓가락 행진곡을 배웠다.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 도입부 치는 걸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 단편 촬영장을 갔다 오는 길에 나는 뜻밖에도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먼 옛날에 내 어머니와 만났다. 나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젊고, 너무나도 날씬하고, 너무나도 반듯한 이마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촬영장에서 잠깐이나마 일을 하고 나니 맘이 싱숭생숭했다. 헤어진 여친의 뒷모습을 본 것 같은 기분. 그리하여 뒤늦게 쫓아가 보지만 이미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는. 그런 기분 말이다.


그날 집으로 오는 길이 그랬다. 정해지지 않은 길로 찾아 걸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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