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월 _ 2020년

by 이게바라

하늘을 보지 않은 날


오늘 ‘알만한 감독’에게 <네가 보이면>을 보냈다.

이는 모니터링이 아닌 내가 원하는 제작자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해다라는 이유에서다.

‘알만한 감독’께서 내가 원하는 제작자가 함께 영화를 한 적이 있어서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우선은 ‘알만한 감독’ 눈에 허접한 시나리오로 보이지 않아야 그도 가능한 일이다.


once upon a time..... 나는 이랬다. 시나리오를 다 쓴 뒤 시나리오를 프린트해서, 프린트할 때도 영화사 대표의 이름을 명시해 일일이 봉투에 넣어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이를 ‘영화사 원정길’이라 칭하며 그 썁스러움을 버텼다. 흔히 말하는 문전박대를 번번이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영화과 졸업을 앞둔 학생이나 하는 짓인 것이다. 아니 똘똘한 학생은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모습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려는 행동이라 여기며 스스로 안위했던 거 같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혼자 하는 딸딸이 다름 아님을 금방 깨우쳤다. 시나리오를 받아 드는 입장에서는 검증에 검증을 거듭해야만 한다. 특히 그가 감독을 겸하겠다고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연출부를 경험하며 친분을 쌓은 제작자에게 시나리오를 내미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이상적이라고 할만한 친분의 제작자가 없다. 있다고 하면 이미 영화 제작할 여력이 없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생판 모르니만 못한 제작자들뿐이다.


예전에 나는 내가 영화를 잘할 줄 알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상상대로 영화를 만들면 정말 흥미진진한 영화가 나올 줄 착각했던 때. 지 잘난 맛에 주위 사람들이 거추장스러웠던 시기. 이미 그 시기는 지나갔고,

허접한 나만 남았다. 주위에 사람도 많지 않다. 이번에 ‘알만한 감독’에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전에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위 사람에게 부탁하고 사정하고 조아리며 조금이라도 틈이 있다면 비집고 들어가려고 한다.


영화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그 쉬운 진리를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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