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지 못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 홈>을 이틀 만에 완주.
<스위트 홈>의 재미와 완성도를 떠나,
난 늘 이런 이야기를 꿈꿨다.
이런 이야기가 웹툰이나 웹소설이 아닌 영상으로 만들어지길 원했다.
이제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 거칠 것이 없어졌다.
아주 예전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다. 하지만 사이더스라는 힘 꽤나 쓴다는, 영화판이란 동네에서 껌 좀 씹는다는 제작사의 우격다짐으로 만들어낸 영화다.
그 당시에는 그런 영화를 어떻게 홍보할 줄도 몰랐다.
그 후 영화판은 돈 있는 아이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우격다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네가 되었다. 돈 있는 아이들은 똑똑했다.
영화의 속내가 사기와 도박임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모험심이 부족했다.
급기야 재미와 예술성마저 데이터로 뽑아 저울질하고는 했다.
내가 난생처음 쓴 시나리오가 있다.
그 당시 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와이 슈운지가 만든 ‘에일리언’.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종내에는 외계인이 나오는 이야기.
이 시나리오를 봉투에 넣고는 내가 엄선한 몇몇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내 시나리오는 참으로 미숙하였다.
제작사에서는 당연히 맘에 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시나리오를 까는 그들의 핑계는 한결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는 아직 일러요.”
<지구를 지켜라> 이후 많은 창작자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이른 이야기를 앞당기고자 무던히 노력했던 거 같다.
봉준호의 <괴물> 박찬욱의 <박쥐>는 앞당기기보다는 훌쩍 뛰어넘은 느낌이고,
연상호의 <부상행>이 한계를 주류의 영역으로 영화판이란 현실의 동네로 확 잡아 끌어내린 느낌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한계를 끝 간데없이 확장시킨 이야기가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나올 줄 몰랐다.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자면 <인간수업>이 이 부분에서 이미 담을 무너뜨린 바 있다. 공교롭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이 모든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시작되었다.
심지어 꼭 극장에서 큰 화면로 봐야 할 법한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직행했다고 하지 않는가.
코로나로 극장의 붕괴,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건립으로 더 이상 영상의 왕좌는 ‘영화’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스위트 홈>이 그 압도적 시작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