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 뒤
“난 누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음악 한다고 해요. 티비에 나오냐고 물으면, 아직 앨범 못 냈다고 얘기하고요. 그럼 사람들은 딱하게 보거나 한심하게 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음악을 한다는 건 내 직업이니깐요. 왜 내가 직업을 숨겨야 되나요? 한기자님의 직업의식 때문에 왜 내 직업이 함부로 아무 데나 버려지나요? 내 직업은 한동진씨 애인이 아니라 밴드 키보디스트예요. 난 그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이니깐요.”
위의 대사는 2002년에 방영한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이나영 대사다.
이 드라마에서 전경으로 분한 이나영을 좋아했다. 누구라도 안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그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음악 한답시고 허세나 부리는 뮤지션이 아닌 그냥 음악 하는 사람인 거다.
다음도 그녀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사다.
“복수씨 그냥 사는 동안 살고 죽는 동안 죽어요. 살 때 죽어있지 말고 죽을 때 살아있지 마요. 남자인 동안엔 남자로 살고, 장애인인 동안엔 장애인으로 살아요. 내가, 내가 애인인 동안에 애인으로 살고 보호자인 동안엔 보호자로 살래요. 그냥 그렇게 살면 돼요.”
오늘 2018년에 개봉하여 8천 명의 관객도 채 보지 못한 <뷰티풀 데이즈>를 봤다. 이나영이란 배우가 나온 영화라서.
(이 영화를 만 명의 관객도 보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아직도 이나영하면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 모습이 어른거린다.
‘전경’이 이나영 같고 이나영이 ‘전경’이라 여겼다. 그렇게 배우 이나영에게 ‘전경’이란 캐릭터를 붙이고는 그녀를 잊고 지냈다.
<뷰티풀 데이즈>를 본 오늘,
이나영이란 배우에서 ‘전경’이란 스티커를 떼어내기로 했다.
아직 무얼 붙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떼어내는 게 맞다.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전경’이 ‘고복수’와 헤어지고,
어른이 되었다.
사뭇 다른 분위기, 다른 아우라.
오늘 난 ‘고복수’와 이별하고 돌아온 배우 이나영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참 반갑다고, 돌아와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