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봄날
어제 영화 <버닝>을 이야기했다.
벤은 종수의 내면이라 했다.
나는 내 내면의 벤을 죽였다 여겼다.
하지만 지나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내면의 벤을 내 의지로 죽인 것이 아닌 청부살인을 했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어른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나에게 나를 죽이라 살인을 청부한 자가 누군지 생각해본다.
내 눈을 가리고 나를 부른 그는 ‘현실’ 일지도 모르고,
한때 나에게 사랑을 깨우쳐준 ‘그녀’ 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나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비겁한 ‘나’ 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다.
<버닝>에서처럼 스스로 죽이고 태워야 한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나’의 눈동자를 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내 안의 벤은 죽지 않았다.
벤을 죽여야 한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매일 방을 청소하듯이 매일매일 죽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써 자유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