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다 흐림
그제 가게에 찾아온 ‘천상천하 유아독존’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 누가 그대에게 왜 영화를 하게 된 겁니까? 하고 묻는다면 뭐라 답변하겠소?>
나는 28일에 썼던 글을 링크 걸어 줬다.
그랬더니
< 헛소리 찍찍해대며 웃기고 싶었던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럼 지금은 왜 (영화로) 웃기 려하지 않소?>
나는 이에 이렇게 답톡을 보내줬다.
< 웃기려는 것이 꼭 주성치여야 웃기는 거겠소? 내 웃음의 본질은 어깃장이오. 일테면 쿠엔틴 타란티노요.>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눈곱만큼의 어깃장을 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어긋 내지는 못하고 미세하게 나만 아는 정도의 어깃장.
예전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표인봉’이 ‘오지명’에게 사사건건 저항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지만 ‘오지명’은 그의 저항을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표인봉’만 혼자 느끼고 만족할 뿐인 극 소심한 저항이었던 거다.
나의 어깃장이란 흡사 이와 같은 소심하고 비겁한 어깃장이다.
그랬기에 나에게 있어 어깃장은 웃기는 거였다.
그래 봐야 수업시간에 헛소리 찍찍해대며 수업 분위기 흐트러뜨리는 거였지만.
곧 나는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아니지만
신체의 연식으로 어른이 된 나는 다시 어깃장 놀 꺼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영화> 다.
세상 그 누구도 몰라도 나 홀로 하는 극 소심한 어깃장.
영화.
근데 애석하게도 어깃장을 놓지 못하고,
어깃장 놓으려는 내 의지만 어깃장을 당하고 있다.
내내.
계속.
이 어깃장도 어깃장이다.
이것이 진짜 어깃장.
어깃장에 또 어깃장.
그 어깃장에 재차 어깃장을.
끝까지 어깃장에 어깃장을.
어기여차 어깃장.
어하둥둥 어깃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