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목 _ 2021년

by 이게바라

습기 그리고 비



아마 날씨 탓일 것이다.


비가 오기 전 당근 거래가 있어 자전거를 타고 홍제역을 가는데 그곳에 나의 첫 영화 촬영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주인공의 엄마의 집으로 활용되었던 곳이 그곳이다.


분명 날씨 탓이다.

내가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옛날 생각을 하는 거 보면,



꿈이 없었던 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 초쯤으로 기억한다. 다들 어떤 대학 무슨 과를 갈지가 주된 이슈였고, 대학을 나온 뒤에는 어떤 직업을 가질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그때 나는 고민 없이 영화에 관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영화에 관한 일이라면, 배우, 감독. 이렇게 두 가지 직종이 전부였다. 감독은 촬영이며 모든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분야가 배우였다. 그렇다고 주연배우는 아니었다. 조연배우도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역활은 대사 없이 풍경처럼 지나가거나 앉아있는 엑스트라였다.
그 일이 그나마 가장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엑스트라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내꿈의 시작은 참으로 소박하였다.

소박한 나의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엑스트라는 한가롭게는 보이나 무료해 보였다. 그럼에도 배우는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한 나로서는 많은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스크린 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나는 내 꿈을 위해 했던 노력은 고작해야 늘 그래 왔듯 극장을 더 극성스럽게 자주 다녔던 것과 수첩에 지금으로 따지면 콘티를 적어놓고는 했다. 이야기가 아닌 장면. 상황에 대한 묘사에 그치는 수준의 글이었다.
나는 당연히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입시에 실패를 거듭했다.

나는 연극영화과가 아니라면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을 안 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원하지 않는 학과에 입학금만 내놓고 도피하듯 군대에 가게 된다.

군대를 갔다 와서 나는 신문에 난 광고 한쪽을 발견하게 된다. 아, 옛날 일이다. 종이신문에 난 광고라니.... 그 광고엔 나 같은 사람도 들어본 영화사에서 ‘영상편집’을 가르쳐준다는 광고가. 나는 ‘영상편집’이란 것을 배우러 익히 들어 본 바 있는 ‘영화사’를 찾는다.

그곳에서 나는 ‘프리미어’를 배웠다. 함께 배운 그 누구보다 잘했다. 심지어 ‘프리미어’를 가르쳐준 선생이 내가 한 결과물을 보고 어떻게 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나는 그저 영화를 숱하게 많이 본 그 감으로 작업을 했고, 그 영상결과물이 볼만해서였다.

그 결과물로 나는 배우러 간 그 영화사에서 ‘프리미어’ 특강을 해보기도 했다.

그 후 그 영화사 사장이 내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 나는 편집실에 나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감독은 아무나 될 수 없다고 여겼다. 나로서는 감히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때 그 영화사 사장이 그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너는 편집기사보다는 감독이 되는 게 낫겠다....”

그러면서 그 영화사 사장은 내게 다음 작품의 감독님을 소개해 준다.

그렇게 나는 연출부로 시쳇말로 영화판에 발을 딛게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오늘 내리는 빗방울처럼 토독토독 떨어진다.

아주 하찮게.


지난 일을 되짚는 이유는 다 버리기 위함이다.

오늘 내리는 빗물에 다 흘려버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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