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
어제는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년 전 봄, 그 친구는 아버지도 보내드려야 했다. - 그때 이미 어머니는 장례식에 참석을 못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으셨다.
그 친구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진심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늘 내 맘 한편에 자리 잡은 걱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수년 전의 일이다. 시나리오를 쓴답시고 동해 펜션에서 3개월 정도 기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펜션 사장은 젊은 시절 마라톤 선수였고, 이후는 스킨스쿠버 강사로 여기, 바닷가 앞에 펜션 사장이 된 분이셨다. 나를 그곳에 소개했던 지인의 사촌 누나가 있다. 그 누나도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그 사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나에게 그 펜션 사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물 안에서 저 사람 보면 진짜 아름다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누나는 그 사장 형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 펜션을 떠나고 무심코 그 의 안부를 나를 그 펜션에 소개했던 지인에게 물었다.
지인에게 돌아온 답은 놀랍게도 펜션 사장 형은 돌아가셨다는 거였다.
아침에 스킨스쿠버 팀을 바다에 보내고 펜션 1층에 있는 로비 겸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앉은 채로 죽었다는 거였다.
그 1층 로비 겸 식당에 나는 꼬박 석 달을 앉아있었다. 시나리오를 쓴답시고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는 있었지만 멍하니 바다만 바라봤던 곳, 그곳에서 그분은 바다를 보며 돌아가신 거다.
유언이 끝나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트를 걷어붙이고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달려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 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조르바’의 죽음은 이러하였다.
그 펜션 사장 형의 죽음은 ‘조르바’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도 이렇게 죽고 싶다.
분연히 죽음과 직면하고 싶다. 죽음을 피해 도망가고 싶지 않다.
평생을 내 뜻대로 살지 못했기에 죽는 순간만큼은 두 눈 부릅뜨고 죽음의 세계로 성큼 내딛고 싶다. 그렇게 죽고 싶다.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그 맘에 걸리는 건, 바로 부모님이다.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난 다음에 죽어야 한다는 생각.
부모님보다 먼저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그거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어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보내드린 친구가 참 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친구라면 이제 정말 맘 편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름밤,
떨어지는 비를 보며 죽음에 젖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오늘은 죽음과 함께라서 안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