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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Jul 12. 2022

6월 20일  월 _ 2022년  

> 2화 _ 날 추앙해요               



2화가 시작하면, 

미정이 부탁한 우편물을 받은 구씨입니다.      


한편 미정은 서울에서 술 한 잔 합니다. 

이제는 산포를 벗어나 서울에 사는 현아(전혜진) 생일이라 다 모였습니다.      


기정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돼. 

사내연애 중독도 아니고 한 회사에서 계속 딴덴 여자가 없나? 쯧     


정훈        

우리 박진우 씨 또 여자 바뀌었나 보네? 나는 아는 사람 같애. 

하도 들어 가지고.      


기정        

그놈은 그렇다 쳐. 난 여자들이 더 이해가 안 돼. 다 알아, 누구누구랑 사귀었는지. 어? 

회사에 그 인간이랑 사귀었던 여자가 줄줄이야. 그런데도 사귀고 싶어? 

박진우의 원오브뎀으로 그렇게 하찮은 여자가 되고 싶냐고? 하, 진짜 이해 안 돼.      


창희  

이해 안 해도 돼. 난 네가 이해가 안 돼. 엔조이 되는 사람들끼리 엔조이 하겠다는데, 니가 뭔 상관이냐고, 남 연애사에. 뭐가 하찮아? 그럼 뭐, 나 만났던 여자들은 다 하찮아? 내 입장에서 보면 그 여자들은 내 인생의 원 오브 뎀이야. 아니, 뭐, 세상 남녀들이 다 너처럼 남자도 하나, 사랑도 하나. 하나가 아니었어도 하나였던 척 너밖에 없었던 척 뭐, 그러고 살아야 돼? 그들만의 리그야. 네 리그가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두라고, 놀게. 

그 사람들? 지금 다 해피해, 즐거워. 남 시선 신경도 안 써. 네가 죽어라 욕해도 신경도 안 쓴다고.      


기정  

왜 나만 건너뛰어?          


헐, 기정인 정말 연애가 시급합니다.

현아가 뒤늦게 도착했네요.                                                                


현아  

남자친구랑 헤어질 거에요.      


기정  

왜? 됐다, 궁금하지도 않다. 네가 사귀었다 헤어진 거 한두 번이냐?      


현아  

그 자식이 침대 산다잖아요. 사귄 지 2년이 넘었는데. 아니, 침대가 한두 푼  이야? 결혼을 하면 내가 혼수로 해 올 건데 지가 침대를 왜 사? 나랑 결혼  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 못 하는 거지.      


옆테이블 아저씨 

(함께 술마시는 아저씨에게) 돈이 많은 거 아냐?      


현아  

(옆 테이블 아저씨에게) 그 인간 돈 없고요, 더블도 아니고 싱글 침대 산대  요. 80만 원짜리 싱글 침대를. 미친 거죠. 예, 평생 혼자 살겠다는 거죠.           


곧 미정과 현아의 대화, 몽환적으로 연출된 장면입니다. 

술을 먹고 하는 대화라 몽환적으로 연출이 된 거겠죠?          


미정  

사람들은 말을 참 잘 하는 거 같아.      


현아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말로 끼를 부리기 시작해. 말로 사람 시선 모으는데,   

재미 붙이기 시작하면 막차 탄 거야. 

내가 하는 말 중에 쓸 데 있는 말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알아? 없어, 하나도. 

그러니까 넌 절대 그 지점을 안 넘었으면 좋겠다. 

정도를 걸을 자신이 없어서 샛길로 빠졌다는 느낌이야. 

너무 멀리 샛길로 빠져서 이제 돌아갈 엄두도 안 나. 

나는 네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귀해.      


미정  

다시 태어나면 언니로 태어나고 싶어.      


현아  

전생에 너처럼 살다가 ‘다시 태어나면 막 살아야겠다’ 한 게 지금 나고. 

또 나처럼 살다가 ‘아, 이것도 아닌가 보다. 다시 태어나면 단정하게 살아야겠다.’ 한 게 지금 너야. 너나 나나 수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했어. 왜 이래? 순진한 척.      

미정  

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거 하나 없이.                



다음날,

기정이 일하는 회사입니다. 

기정이 하는 말로 아빨 하나하나에 ‘못 됐음’‘못 됐음’ 쓰여있는 이팀장이 신입사원 앞을 가로막습니다. 

          

이팀장  

로또 주면서 그랬지? 설렘을 선물하는 거라고. 이제 토요일이면 설렐 거라고.    

  

은비  

어떻게 아셨어요?      


이팀장  

여기 박진우 이사한테 로또 안 받아 본 여자 한 명도 없어. 

금요일에 주면 좋잖아. 꼭 월요일에 준다. 로또 보면서 일주일 내내 자기 생각하게 하는 거지. 너무 싼 작업법 같지 않아? 5천원으로.  

         

여기 박진우 이사의 로또, 기정만 받아본 적이 없다네요.      

     

기정  

아무한테나 전화 와서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      


원희  

여태 떠들었는데 맨날 떠들었는데 여전히 떠들고 싶니?      


기정  

나 하고 싶은 말을 못 했어. 존재하는 척 떠들어 대는 말 말고 쉬는 말이 하고 싶어. 

대환데, 말인데 쉬는 것 같은 말. 

섹스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 남자랑 말이 하고 싶어.           


현아는 생일날 남친과 헤어졌다고 말하고, 

창희는 이미 헤어졌고요.....

기정은 외로움에 아무나 사귀겠다고 선포를 하더니, 

그 이유는 아무나랑 얘기를 하고 싶다고 거랍니다. 

정작 퇴근길의 미정은 아무나를 설정해놓고 대화를 하고 있어요.            


미정  

초등학교 1학년 때 20점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시험지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 가야 했는데 꺼내진 못하고 시험지가 든 가방을 보면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어요.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보여주면 안 되는 해결은 해야되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 지금 상황에서 왜 그게 생각날까요? 뭐가 들키지 말아야 하는 20점짜리 시험지인지 모르겠어요. 남자한테 돈 꿔준 바보 같은 나인지 여자한테 돈 꾸고 갚지 못한 그놈인지 그놈이 전 여친한테 갔다는 사실인지 도대체 뭐가 숨겨야 되는 20점짜리 시험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20점짜리인 건지.           


지금 상태가 가장 안 좋은 건 미정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못하는 미정은 행복지원센터 상담원 앞에서 눈물을 터트려 상담팀장(향기)을 당황하게 했어요.           


미정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진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집에 돌아온 미정, 구씨를 찾아가 시비를 걸듯 말을 겁니다.           


미정  

왜 매일 술 마셔요?      


구씨  

아니면 뭐 해?      


미정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무척 뜨악한 장면입니다. 

“나를 추앙해요.”라니....? 

그래서 그런지 다음 장면에서 구씨는 ‘추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봅니다. 

추앙推仰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respect. worship reverence     


뭐지? 
 ‘추앙’ 

이거 잘 못 회수하면 완전 망작 되는 겁니다. 

앞으로 박해영작가 이 낯선 ‘추앙’을 어떻게 회수해내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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