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는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 드라마입니다.
이미 끝난 드라마이지만 ‘조금 더 묵혀 두었다가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나의 아저씨’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용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나의 해방일지'를 보게 된 것은,
‘나의 해방일지’를 열렬히 좋아하는 손님에게 자극이 된 것이 두 번째 이유고요,
(오랜 단골이신데, 여중생 같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의 해방일지’ 종방 기념파티를 하시더라고요.)
그보다 첫 번째 이유는,
마침 디스크가 재발해서 꼼짝을 할 수 없어
‘나의 해방일지’를 단숨에 다 봐버리고 말았습니다.
후딱 봐버렸기 때문에 쉽게 잊힐 거 같아 조바심이 납니다.
그래서
차곡차곡 쌓아두려고 합니다.
부디
나에게도 ‘나의 해방일지’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자, 1화 시작합니다.
> 1화 _ 계란 흰자, 산포시 (나름 소제목을 정해봤습니다.)
염미정(김지원)은 경기도 산포시에 삽니다.
신도시가 아닌 아직도 밭 한가운데 집이 있는.
미정의 집에 가려면 당미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3-1번을 타야 합니다.
미정의 언니 기정(이엘)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2화 초반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기정
밝을 때 퇴근했는데 밤이야. 저녁이 없어.
미정이네는 그만큼 서울에서 먼 곳이래요.
미정의 오빠 창희(이민기)는 아버지(천호진)에게 식사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창희
아버지 제가 차도 없고요, 경기도민이에요. 어떻게 연애를 하고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모든 역사는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제가 차가 없습니다, 아버지.
어디서 키스를 해요, 남녀가!
창희는 전날 애인한테 이런 말까지 들으며 헤어진 터였습니다.
예린
너 아니? 너 견딜 수 없이 촌스러워, 아주 끔찍하게 촌스러워!
창희에겐 동네 친구 두환이 있는데요, 그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 이름은 ‘알로하’인데요, 손님이라고는 오지 않아 ‘인사’할 일이 없는 카페입니다.
(3화에 손님 찾아오는데요, 원두가 오래돼 맛없다며 손님을 내쫓는 그런 카페입니다.)
이곳에 모인 미정과 창희는 이런 얘기를 나누네요.
창희
두환이 넌 딱 촌스런 인간이고 난 그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경계선상의 인간이고.
걔가 경기도 보고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를 몰라.
내가 1호선을 타는지 4호선을 타는지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냬?
두환
사람이 좋으면은 그 사람 사는 동네 먼저 검색해 보는 게 인간인데.
창희
뉴욕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하고 많은 동네 중에 하필이면 계란 흰자에 태어나 갖고...
미정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
창희
달랐어.
두환
달랐다고 본다.
여기에 미정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미정
난 어디서나 똑같을 거 같은데, 난 어디 사나 이랬을 거 같아.
말 많은 창희와 기정과는 달리 미정은 말이 없어 보여요.
방금 한 대답처럼 슴슴하니 평양냉면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미정이도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 해요.
회사에서 벗어나 카페에 앉아 일을 하며 가상의 ‘누군가’와 대화합니다.
(미정)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거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예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난 벌써 당신과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당신 없이 있던 시간에 지치고 힘들었던 것보단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 게 더 기특하지 않나요?
퇴근길 미정은 가상의 누군가인 ‘당신’과 계속 얘기합니다.
(미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죽을 거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 낸 거예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당신.
적어도 당신한테 난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겠죠.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만나지지도 않는 당신. 당신. 누구일까요?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쯤 될까요?
미정은 출퇴근 길 지하철 창밖에 보이는 광고판 문구를 유심히 봅니다.
[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
하지만 미정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네요.
은행원
신용대출은 연체가 5일 넘어가면 카드도 정지되고 문제가 복잡해져요.
이래서 함부로 신용대출받아서 돈 빌려주는 거 아닌데, 잔금이 얼마 남아 있는진 아시죠? 천오백사십팔만 사천 원을 매달 백오십만 원 정도씩 환원해야 되는데,
조만간 집으로 우편물이 발송될 거예요.
오늘은 창희 집 마당에 다들 모여 한잔하네요.
기정
난 조선시대가 맞았어. ‘오늘부터 이 사람이 네 짝이다’ 그러면
‘예, 열렬히 사랑하겠습니다.’ 그러고 그냥 살아도 잘 살았을 거 같애.
사람 고르고 선택하는 이 시대가 난 더 버거워.
두환
난 맨날 까여도 이 시대가 좋아.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난 백퍼 쌍놈이거든.
정훈
지금도 쌍놈이야.
(정훈은 초등학교 선생님인 창희 친구입니다.)
창희
(피식 웃는)
기정
귀뚜라미가 울 땐 24 도래. 안단다, 쟤들도.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온다는 거를.
그래서 저렇게 간절히 구애 중인 거란다. 겨울을 혼자 나지 않으려고.
하물며 이런 미물도 사랑하는데. 어? 인간이. 당연한 거 아니니? 야, 미물도 알아.
짝 없이 혼자 겨울나는 게 어떤 건지. 쟤도 저렇게 구슬프게 우는데, 어?
겨울이 온다고, 춥다고. 혼자 두지 말아 달라고 저렇게 우는데.... 우리도 하자.
창희
뭔 소리 하나 했다, 이씨. 아, 그럼 고양이도 하고 벌레도 한다고 인간도 해야 돼?
개도 길바닥에 똥 눠. 그럼 인간도 길바닥에 똥 눠야 돼?
기정
하지 마, 새꺄. 그럼 너는. 너 하지 마, 하면 너 죽어.
(미정 보고) 야, 하자. 하자고, 어? 난 할래. 할 거야, 아무나 사랑할 거야, 난.
미정
진짜 아무나?
기정
진짜 아무나. 왜 아무나 사랑 못 해. 여태 가리고 가려서 이 모양 이 꼴이니?
고르고 고르다가 똥 고른다고, 똥도 못 골라 보고. 아무나 사랑해도 돼. 아무나 사랑할 거야.
창희
니네 내일부터 눈에 띄지 마라.
정훈
미친.
창희
(구씨 지나가자) 저기 아무나 지나간다.
두환
염기정 눈에 띄지 마요. 수그려, 으악, 으악!
웃던 미정, 구씨(손석구) 쪽을 봅니다.
정말 아무나인 이름도 모르는 구씨를요.
미정은 구씨를 찾아갑니다.
어! 미정이 아무나인 구씨에게 사귀자고 하려고 그러나?
그런데 미정이 구씨에게 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미정
우편물 좀 받아줄 수 있나 해서요. 집에서 받으면 안 되는 게 있어서.
구씨는 미정의 비밀을 공유하게 됩니다.
미정과 구씨의 뜻밖의 관계가 시작되며 끝이 납니다.
첫 화는 별 느낌이 없네요.
박해영작가는 첫 화부터 재미를 주기보다는 씨를 오래 뿌리십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삼형제가 사는 동네 ‘후계동’에 공을 들인 것처럼
이번 1화에는 미정이네 가족이 사는 ‘삼포시’ 소개하는데 많은 부분이 할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