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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Jul 14. 2022

6월 22일  수 _ 2022년

 > 4화 뚫고 나갈 거야     


함께 밭일한 아버지, 엄마, 미정, 구씨는 함께 식사합니다.

늘 그렇듯 말없이 식사를 끝낸 아버지가 먼저 일어난 뒤 엄마가 입을 뗍니다.     


엄마  

생전 누구 일 잘한다고 하는 소리 내 못 들어 봤는데 구씨는 아주 이뻐 죽어똑 부러지게 잘한다고뭘 해도 잘했을 거라고우리 미정이 말고 누구 칭찬하는 소리 처음 들어 보네어려서부터 얘만 마음에 들어 했잖아내가 만든 서랍 보고는 맨날 눈 흘기는 양반이 얘가 만든 건 두말 안 해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몰딩도 하고 못 돌리는 기계가 없었어작은 게 얼마나 야무졌는데조기조기조기조거조게 얘 어릴 때 공장에서 찍은 거     


구씨는 어린 미정의 사진을 힐끔 바라봅니다.

엄마의 입을 통해 구씨는 어린 미정과도 알로하 인사합니다. 

이번엔 창희를 통해 미정일 만나는 구씨네요.      


창희

미정이 걔 조심해야 돼요갑자기 욱해요욱할 때 보면 무서워요무서워서 무서운 게 아니라 뭐라 그래야 되나싸움 못하는 애들 특징이 이렇게 차면 큰 사고인데 그걸 모른다는 거 우린 뭐맨날 치고받고 싸워도 사실 진짜 큰 사고는 안 나게 죽어라 계산 때려 가면서 싸우는데 미정이 걘 그냥 자기가 열받으면 여기 앞에 뭐 낭떠러지에 서 있잖아요그럼 냅다 발로 차버릴걸얘는 그냥 머리가 없어요생각이 없어이거 앞뒤가 없는 거야.     


미스테리한 남자, 구씨에게 창희가 속시원하게 질문을 합니다.      


창희  

에어컨 마음껏 트는 집에서 혼자 살고 싶어요사람 목소리 안 들리는 곳에서형은 내 로망이에요혼자 사는 남자근데 여긴 어떻게 오게 됐어요이 동넨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데여기 누구 아는 사람 있어요?     


구씨  

없어     


창희  

근데 어떻게 오게 됐어요어려서 이 근처에 살았어요     


구씨  

잘못 내렸어     


헐... 잘못 내렸다니... 어이없으면서 무척 심오한 대답 같기도 하네요.  

여기 심오한 대화가 이어지는데요, 미정의 회사입니다. 

미정이 ‘해방클럽’을 만든 걸 알게 된 동료가 묻습니다.      


수진  

해방클럽이 뭐하는 데야?     


미정  

해방     


수진  

그러니까 그게 뭐하는 거냐고     


미정  

해방     


수진지희 

......?     


미정  

나도 잘 몰라     


수진지희 

뭐야     


지희  

면피용으로 막 만든 거 아니야행복지원센터 불려 다니기 싫어서?     


미정  

진짜 하기로 했어     


지희  

그러니까 뭘 하는 건데뭘 하는 데일 거 아냐모여서 뭐 하는 건데     


미정  

모여서는 아니고각자     


지희  

각자 뭐하는 건데     


미정  

뚫고 나갈 거야     


지희  

어딜     


미정  

여기서     


지희  

어디로     


미정  

저기로. (창밖을 가리키는     


지희수진 

뭐야?!     


사실 뚫고 나가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구씨였잖아요. 

미정이 구씨에게 추앙하라고 말했을 때, 

구씨가 이렇게 말했더랬죠. 

뚫어야 될 문제를 뚫어엉뚱한 데로 튀지 말고.”     

미정이 반찬을 들고 구씨를 찾아갑니다.      


미정  

고구마 줄기 좋아하는 거 같다고 드시래요     


구씨  

(딴짓하는)     


미정  

왜 이랬다저랬다 해요괜찮았다가 차가웠다가      


구씨  

똑같던데아저씨랑 너랑아니왜 자기가 받아야 될 돈인데 자기가 잘못한 것 처럼 주눅 드나 몰라받아줘좋게 좋게 해 봐라돈 나오나     


미정  

한때 알았던 사람하고 끝장 보는 거 못하는 사람은 못해요돈 못받는 거보다 자기 자신

까지 밑바닥으로 내던져 가면서 험한 꼴 보는 게 더 힘들어요     


구씨  

미안하다술꾼 주제에각자 꼴리는 대로 사는 거지

나도 개선의 의지가 없고 너도 개선의 의지가 없고.     


정작 구씨는 잘 뚫리지가 않네요. 

미정과 구씨 사이는 다시 이격이 넓어집니다.      

한편,

기정은 박이사에게 로또복권을 선물 받습니다. 

사실 억지로 받아낸 거나 다름없긴 합니다만, 어쨌든 받았습니다, 로또.      


기정  

, 1등 맞아서 기절 한번 해보고 싶네요이렇게 힘든데 쓰러지지도 않아코피도 안 나아유나 졸린 애 말하는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네요죄송해요제가 너무 힘들어서이게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생리할 때가 됐...뭔 말이야죄송해요제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네요     


박이사  

심호흡 한번 해보세요천천히. (심호흡 해 보인다.)     


기정  

(따라 하는)     


박이사  

한 번 더천천히힘들 때 심호흡하면 그것도 휴식이라고 좀 괜찮아져요좀 편해지셨죠?     


기정  

머리 밀고 싶어요시원하게 빡빡아니한 번도 머리발 덕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여성성의 상징처럼 놓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힘들게 감고 팔 떨어지게 드라이하고 아무 의미 없는 머리카락에 평생을 시달린 느낌이에요깔끔하게 밀면 쓸데 없는 기대도 없어지고 세상 가벼울 거 같아요. 혹시 머리 밀면 짤리나요?

 

박이사  

겨울엔 아무나 사랑할 거라면서요머리 민 여자를 만날 남자가....     


기정  

당장은 아니고 겨울에둘 중 하나는 꼭 하려고요. 힘드니까 머리카락 붙어있는 것도 짜증 나고 별게 다 거슬려요밤만 되면 이 팔다리랑 목을 다 분해해서 이렇게 깨끗하게 기름칠하고 아침에 다시 끼우고 싶다니까요     


박이사  

그래서 제가 쉬지 않고 사랑하는 겁니다사랑하는 한 지칠 수 없거든요.      


기정인 말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시시콜콜한 디테일들이 다 그녀 입을 통해 전해지니깐요. 

미정이는 현아를 만납니다. 그럴 수밖에요. 구씨와의 관계가 뚫어지지 않잖아요.      


현아  

만나고 헤어지고 수십 번인 거 같은데 왜 매번 헤어질 때마다 이렇게 바닥일까매번 처음 보는 바닥 같아     


미정  

그냥 더 만나든가     


현아  

싫어그 새끼 사랑 끝났어더 나올 게 없어. (맥주캔 벌컥나는 갈망하다 뒈질 거야사랑을 줘나도 줄게더 줘나도 더 줄게선물 따위는 필요 없어이벤트 따위도 필요 없어그냥 사랑만 줘배고파더 줘아씨세상 사랑을 다 쓸어 먹어도 안 채워질 거다너는 나처럼 갈구하지 마너 남자 있지     


미정  

(고개 절레절레)     


현아  

다 줘전사처럼 다 줘그냥 사랑으로 폭발해 버려절대 나처럼 갈구하지 마.      


지금 현아가 한 말은 알면서도 이행할 수 없는 ‘미션’ 같은 겁니다. 

이 ‘미션’ 미정이 언어로 풀이하면, <추앙해>가 되는 것이겠지요.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해방클럽’ 첫 정모가 열립니다. 

세 명은 마주 보지 않고 비 오는 창가 앞에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상민이 합니다.      


상민  

사람을 정면으로 대하는 게 뭔가 전투적인 느낌이야공백없이 말해야 된다는 것도 그렇고혹시 이렇게 하는 게 불편한가     


태훈  

아니요진짜 편하고 좋네요     


상민  

딴 거 없어해방하려면 퇴사하고 이혼하는 수밖에     


태훈  

전 그중에 하나 했는데그것도 딱히 해방은 아니더라구요     


상민  

미안해어딜 가나 속 터지는 인간들은 있을 거고그 인간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고그럼 내가 바뀌어야 되는데 나의 이 분노를 놓고 싶지 않아나의 분노는 너무 정당해     


태훈  

너무 정당하죠     


상민  

너무너무 정당한 이 분노를 매번 꾹 눌러야 되는 게 고역이야일은 드럽게 못하면서 잔소리는 안 듣겠다고 하는 인간들이나 뭐라고 하면 꼰대다참자참자     


태훈  

그래도 참으시네요     


상민  

티나

연미정씨는 왜 해방클럽을 생각했어?     


미정  

사람들은 천둥 번개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바라던 바다갇힌 거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기를 바라는 거 같아요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그래요

어디에 갇힌 건지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그래서 아이게 인생이지이게 사는 거지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요     


천둥 번개가 치는 이날, 

기정은 태훈에게 로또를 선물했고, 

미정은 구씨를 구해내려 빗속을 뛰쳐나갔습니다. 번개가 전봇대를 때려서 구씨가 위험한 줄 알았거든요. 

이 드라마에 조금은 작위적인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다음 장면으로 이 장면은 바로 잊혀져서 다행입니다. 

다음 장면은 밭일을 한 염씨네 가족(기정을 뺀)과 구씨가 쉬고 있는 장면입니다. 

날씨는 쨍한데 비온 뒤라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바람이 미정이 쓰고 있는 모자를 배수로 건너편으로 날려버립니다.      


창희  

으이그저쪽 다리로 갔다 와야지     


엄마  

아이고저쪽이 빠르지     


창희  

이쪽이 빠르죠     


엄마  

눈대중도 없는 놈 저쪽이 빠르지     


창희  

아이...      


구씨  

(운동화를 신으며 일어나는있어 봐     


창희  

제가 갖다 올게요     


창희 일어나 가려는데 구씨는 배수로 반대인 산쪽으로 걸어갑니다.      


창희  

(배수로 건너편 가리키며아니저기 있는데... (미정이 보며어디 가     


배수로 먼쪽으로 걸어가는 구씨의 귓가에 미정의 대사 다시 울립니다.      


(미정)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그래서 봄이 되면 당신도 나도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거예요     


구씨 더 갈 길이 없자 돌아서더니만 냅다 배수로를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구씨 단숨에 배수로를 뛰어넘어 버립니다.      


(구씨)  

확실해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이 돼 있는 거     


(미정)  

확실해     


(구씨)  

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미정)  

응원하는 거넌 뭐든 할 수 있다뭐든 된다응원하는 거     


미정의 모자를 집어 든 구씨 다시 전력을 다해 배수로를 뛰어넘는 모습에서 4화가 끝납니다. 

이 장면 소름 돋습니다, 정말. 저는 생각합니다. 

아, 이 드라마.... 설마 ‘나의 아저씨’도 이렇게 훌쩍 뛰어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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