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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Jul 17. 2022

6월 25일  토 _ 2022년

> 6화 소몰이하듯이 어렵게어렵게          



구씨에게 문자를 받은 미정은 사진을 찍어서 보내요. 

서울을 들어가는 길에 있는 건물 간판.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     


구씨에게 생긴 일은 창희와 두환이 와서 소주병을 치워주려는 일입니다. 

이를 본 구씨는 둘을 내보냅니다. 

내가 싼 똥 누가 치워주는 게 너희들은 고맙냐?”      


한편, 기정이 미정을 불러냅니다.      


기정  

아무나 사랑은 내가 하기로 했어말이 아무나지 진짜 아무나냐너는

어려서 개똥이랑 놀더니 남자를 골라도 꼭.... 이 좁은 동네에서 뭐 어쩌려고     


미정  

뭐가 무서운데평생 그렇게 사람 가려 만나서 잘된 거 있어

우리의 실수는 아니다 싶으면 연습 기회로도 삼지 않고 그냥 패스한 거라며

그래서 여태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며.     


기정  

그래서     


미정  

연습할 거야이제     


기정  

뭘 연습하는데 알코올 중독자랑알콜 중독 아니라고 하지 마

(술 마시려다내가 더 마신다고 하지 마     


미정  

찬혁선배 만날 때 직장 그만두고 사업한다고 했을 때 좋았어사람들이 남친 뭐 하냐고 물어보면 사업해그 한마디가 있어 보여서근데 너무 잘 나가니까 불안했어우린 결혼도 안 했는데 불량으로 계속 반품 들어오고 점점 어려워지면서 어느 때보다 옆에 붙어서 잘해 줬어들킨 거 같았어내가 안도하는 거누구랑 있으면 좀 나아 보일까누구랑 짝이 되면그렇게 고르고 골라놓고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응원하진 않아나보단 잘나야 되는데 아주 잘나진 말아야 돼전적으로 준 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다신 그런 짓 안 해잘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부모한테도 그런 응원 못 받고 컸어우린     


기정과 현아랑 술을 마시면서도 미정은 구씨를 생각합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미정은 구씨에게 톡을 합니다.      


(미정)  

오늘 늦어요언니랑 한잔 해요자꾸 답을 기다리게 되는 맘은 어쩔 수 없지만 두고 봐라 나도 이제 톡 안 한다그런 보복은 안 해요남자랑 사귀면서 조용한 응징과 보복 얼마나 많이 했게요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까너무 좋아요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의 미정은 구씨가 사는 집을 사진 찍어 추앙합니다. 

다음 날, 미정 집으로 찾아온 두환이 어제 일을 미정에게 고해바칩니다.      


두환  

아니창희가 구씨네서 불러서 갔는데 진짜 깜짝 놀랬다방 안에서 빛이 막 장난 아니게 뿜어져 나오는데나 무슨 외계인이 있는 줄 알았잖아가 봤더니 방 안에 소주병이 가득이야해가 또 그 방에 딱 떨어져 가지고 방이 막 후끈후끈해둘이서 그거 치우다가 구씨한테 욕 바가지로 먹고아 뭐 바가지는 아니었는데좀 그랬어청소해주다가 욕 얻어먹고 민망해 뒈지는 줄 알았네진짜     


미정  

도와 달라고 했어치워 달라고 했냐고근데 왜 함부로 들어가서 손대     


창희  

그럼 봤는데 그냥 나오냐     


미정  

인간을 갱생시키겠다는 의도가 너무 오만해     


두환  

누가 누굴 오만... 에이오만 아니야혼자서는 절대 버릴 수 없는 양이었다고     


미정  

혼자 버릴 수 없는 양을 혼자 먹었어그걸 들켰어     


창희  

뭘 들켜몰랐어우리가     


구씨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네요.      


구씨  

적당히 했어야 됐는데너무 열어줬어괜찮을 땐 괜찮은데싫을 때는 눈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면 더 싫고쓸데없는 말인데 들어줘야 되고 나도 쓸데없는 말을 해 내야 되고쯧 무슨 말을 해야 되나 생각해 내야 되는 거 자체가 중노동이야     


미정  

나도 그런데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 한두 시간 되나좋은 시간도 아니고 괜찮은 시간이 그 정도 나머진 다 견디는 시간 어려서부터 그랬어요신나서 뛰어노는 애들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심란했어요뭐가 저렇게 좋을까난 왜 즐겁지 않을까먹고 자고 먹고 자고 쓸데없이 허비되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까? 80년생을 8년으로 압축해서 살아 버려도 하나 아쉬울 거 없을 거 같은데 하는 일 없이 지쳐그래도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가보자왜 살아야 하는지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 지만 사는 동안은 단정하게 가 보자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구씨  

소몰이소몰이.... 본 적 있나 보네.     


미정  

어려서 몇 번     


구씨  

(냉동실에서 빵빠레 꺼내 주는     


미정  

웬 아이스크림     


구씨  

샀어취해서취했을 때의 내가 맨 정신일 때 나보다 인정이 좀 많아     


미정  

좋은데     


이때부터 구씨는 외모도 달라졌습니다. 

홀아비 냄새 풀풀 날 것 같은 알코올 중독자 모습에서 조금 댄디해졌달까?

담날 구씨는 소주병을 치웁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진 찍어 미정에게 보냅니다. 

둘의 일상이 조금 밝아졌습니다. 

구씨가 깨끗이 치운 집안 모습처럼, 둘의 일상이 조금 밝아졌습니다. 

미정이 구씨에게 답톡을 보냅니다, 이렇게요. 

당신 톡이 들어오면 통장에 돈 꽂힌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     


구씨  

오늘 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몰았다소몰이하듯이

겨우내 골방에 갇혀서 마실 때 마시다가 자려고 하면 가운데 술병이 있는데 그 술병을 이렇게 치우고 자면 되는데 그거 하나 저쪽에다 미는 게 귀찮아서 소주병 가운데 놓고 무슨 알 품는 것처럼 구부려서 자그거 하나 치우는 게 무슨.... 내 무덤에서 내가 일어나 나와서 벌초해야 되는 것처럼 암담한 일 같아누워서 소주병 보면서 그래인생 끝판에 왔구나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백만 년 걸려도 못 할 거 같던 일 오늘 해치웠다잠이 잘 올까안 올까     


미정  

무슨 일 있었는지 안 물어어디서 어떻게 상처받고 이 동네로 와서 술만 마시는지 안 물어 한글도 모르고 ABC도 모르는 인간이어도 상관없어술 마시지 말란 말도 안 해그리고 안 잡아내가 다 차면 끝     


구씨  

(웃는멋진데나 추앙했다     


미정  

쫌 더 해보시지약한 거 같은데     


구씨  

(피식)     


미정과 구씨가 얘기합니다. 얘기하다가 웃기도 합니다. 서로 추앙합니다. 

그런데 불길한 기운이 구씨의 핸드폰에 찍히네요. 

이제 구씨의 이름도 밝혀집니다. 

구자경 어디 짱박혀 있냐이제 그만 숨어있어도 된다고! ]      

자, 이제 둘의 관계가 집안 식구에게 밝혀지는 건 문제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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