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수금하러 다니고, ‘쌔비’가 부산에 갔다고 하자 외상을 직접 받으러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구씨가 ‘삼식이’를 아무 이름으로나 부른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웨이터가 삼식에서 묻는 장면입니다.
웨이터
대표님 왜 형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춘자야, 말자야.
삼식
그, 내가 개명했잖냐. 근데 그 이름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봐.
웨이터
뭐라고 개명하셨는데요? 설마 (키득) 뭐, 빈? (키득) 뭐 이런 거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키득키득)
삼식
(정색)
웨이터
(당황) 아, 씨.
삼식
이 새끼가.
웨이터
(꾸벅) 죄송합니다.
업소에 어떤 미친놈이 술 마시려고 갓난아이까지 데리고 옵니다. 그 아기와 마주 앉은 구씨.
일을 끝낸 구씨 단골 바에 갑니다.
구씨
애기 본 적 있어요? 애기.
마담
애기? 본지 오래된 거 같네요. 갑자기 애기는 왜요?
구씨
가게 애기가 왔었어요. 어떤 미친놈이 애를 데리고 와서.
마담
새가 날아들어 온 것 같았겠네요. (간결하게 차린 식탁을 내려놓는) 드세요.
반찬에 ‘고구마 줄기’가 있네요.
미정이 가져다준 ‘고구마 줄기’가 생각 안 나면 이상하죠.
다음날 출근한 구씨가 소리칩니다.
구씨
염미정!
그 소리에 삼식이 들어오네요. (이거 하려고 앞에서 밑밥 깐 겁니다.)
구씨
미정아, 너 뭐 하고 싶냐?
삼식
예?
구씨
내가 기분이 기깔나게 좋아지고 싶은데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니가 원하는 거 해줄게.
너 뭐하고 싶어?
삼식
.......
구씨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지면 좋겠다. 뭐 그런 거 없어?
미정에게도 직장 동료인 지희도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오늘 어떤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거 없어?”
이 장면 잘 기억해 놓으세요.
구씨
말해 봐.
삼식
집에 가고 싶습니다. 나주에 있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삼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다음 컷트는,
삼식
(구씨가 준 오만 원권을 꼭 쥐고) 나 집에 간다!
구씨도 갑니다, 산포로.
산포로 가는 길 어김없이 미정이 사진 찍어 보내줬던 광고판 글귀를 봅니다.
[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
시간은 과거로 흘러, 과거 장면이 보여집니다. (겨울에서 가을로)
그러니까 구씨가 산포를 떠나고 난 직후로.
그때의 미정은 직장 내 빌런 최팀장에게 쫑크를 먹고 있습니다.
실컷 쫑크 먹고 퇴근하는 미정에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계약직 보람이 말합니다.
보람
최팀장 바람피운대.
미정
그래?
보람
우리 회사 여직원이랑.
이 얘기를 들은 미정이 엘리베이터와 함께 추락하는 커트가 인상적입니다.
집에 돌아온 미정에게 엄마는 구씨와 연락이 되냐고 묻습니다.
심드렁하게 모른다고 대답한 미정은 야밤에 홀로 산으로 향합니다.
(미정)
답답할 땐 오늘 죽자. 죽어도 된다. 그런 심정으로 밤길을 나가요. 불빛 하나 없는 산을 걸어요. 사내놈 하나 떠난 게 뭐 대수라고 행복한 게 무서워 도망친 새끼.
돌연, 들개 한마리가 미정에게 다가옵니다. 아직 잡히지 않은 들개 한 마리가 있었나봐요.
이 들개는 미정이 사귄 개새끼, 개새끼, 개새끼 중 하나일지, 혹은 구씨일지 모르겠네요.
쫄지 않는 미정은 튼튼해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 주워듭니다.
“ 무서울 게 없는 오늘 밤, 난 무사가 된다. ”
미정
붙어, 개새끼야. 배은망덕한 새끼. 너한테 갖다 바친 소시지만 몇 개인 줄 알아?
시원하게 피를 철철 흘리고 싶다.
미정의 눈을 보던 들개는 온순한 표정을 짓고는 숲속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미정)
엉뚱한 곳에 나를 던져놓으면 아주 잠깐 어떤 틈새가 보여요.
아, 내 머릿속에 이런 게 있었구나. 버려진 느낌.
다음 장면은 창희가 혁수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머리도 감겨준 모양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저의 이해도 인계점을 넘어가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부분입니다.
롤스로이스를 범퍼를 우그러진 후 도망친 곳이 암이 재발해서 죽고 있는 본적도 없는 현아의 남친, 그것도 현 남친도 아닌 전 남친이라니....
다들 구씨에게 한 눈이 팔려 창희를 간과하고 있는데요. ‘창희’ 역의 이민기는 무려 이 드라마의 첫 번째 주인공입니다. 드라마가 시작하고 처음 나오는 이름이 바로 ‘이민기’ 배우죠.
지금까지는 전혀 그럴 감이 아닌데요. 이제부터 그는 초울트라사이언으로 거듭납니다.
창희는 좋은 차를 타고 싶었습니다. 그 차에서 애인이랑 키스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던 그 시절에도 창희의 삶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자, 어디에 부딪혔는지도 모를 롤스로이스의 범퍼 우그러짐 사건이 창희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끝까지 지켜보기로 하겠습니다.
그새 창희와 혁수는 엄청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남자가 남자 머리를 말려주는 그 이상의 장면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혁수
처음에 암이라고 그랬을 땐 아, 그래 내가 너무 막살았지. 정신 차려야지. 재발됐다고 했을 땐 바로 딱 현아 잡아야 된다. 이번엔 힘들 건데, 잡아야 된다. 지옥에 떨어져도 거기에 현아랑 너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을 거 같애.
창희
아, 이래서 순장이 생긴 거구나.
혁수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도 무서웠던 거야. 다 같이 가자.
창희
내가 왜 형을 따라가요? 우리가 연애를 했어요, 뭘 했어요?
혁수
혁아랑 연애하는 내내 우리 셋이 연애하는 거 같았다. 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놈하고 셋이. 야, 맨날 창희, 창희 하는데. 야 어떤 놈이 여자 입에서 딴 남자 얘기 듣는 게 좋아? 죽었다 깨나도 그런 사이 아니라고 박박 우겨대는데, 넌 아니어도 그놈은 아닌 게 아닐 거다.
창희
이 형 왜 이렇게 쌩쌩해?
혁수
다 같이 간다고 생각하니까 신나.
창희
나 안 간다고요. 나 형따라 안 가, 미쳤어요.
혁수
상상도 못 하냐? 상상은 나의 힘. 야, 우린 지옥에서도 재밌을 거야.
창희
형, 사람 진짜 잘 엮는다. 왜 이렇게 밀고 들어와?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혁수
나한테 엮였다고 생각해? 너 현아한테 엮인 거야.
(거울 보며) 아, 약이 좋아져서 다행히 머리는 많이 안 빠져.
창희
이 와중에 머리 빠지는 게 걱정이에요?
혁수
그러는 넌? 암 환자 앞에서 아버지한테 혼날 게 걱정이냐?
창희
(한숨)
혁수
큰일 아니다.
쫓아가기 힘들게 진도를 확 뺀 창희와 혁수의 모습에 레이어 하나가 더 깔려있습니다.
창희의 한숨과 이에 혁수가 ‘큰일 아니다.’라고 말한 그 ‘일’은 무엇일까요?
‘큰일 아닌 이 일’을 가장 ‘큰일’로 받아들일 사람은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시청자들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 ‘큰일 아닌 일’을 전달받게 됩니다.
미정과 기정, 그리고 어슬렁 뒤늦게 걸어오는 창희의 출근길.
아버지와 어머니가 탄 트럭이 지나갑니다. (싱크대 설치하러 가시는 길이에요.)
그 트럭에 대고 기정이 소리칩니다.
“엄마! 이 새끼 회사 때려쳤대!”
출근하던 창희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창희
때려치우려고 할 때마다, 여름휴가까진 챙겨 먹고, 이왕이면 추석 연휴까지 그러다가 연말엔 쓸쓸하니까 또 봄은 견딜만하니까.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요. 제가 정선배처럼 돈에 깃발 꽂고 죽어라 달리는 욕망덩어리도 아니고 여기까지 달려 봤으면 된 거 같아요. 제 길 아닌데 계속 떠밀려서 달려갈 필요는 없잖아요.
상사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다. 왜 모르냐?
창희
솔직히 저는 깃발 꽂고 싶은 데가 없어요. 돈, 여자, 명예 어디에도, 근데 꼭 깃발을 꽂아야 되나? 안 꽂고 그냥 살명 안 되나? 없는 욕망을 억지로 만들어서 굴러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난 그냥 내 맘대로 살아도 되고 태어나지도 않은 형이 그리워요.
창희는 이래서 직장을 관둔 겁니다.
창희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묻네요,
“그래서 앞으로 뭐 하려고?”
창희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려고요.
아버지
당분간 얼마나?
창희
아버지 구씨한테 하던 거 반의반만 저한테 하시면 안 돼요? 구씨는 안 보이면 어디 아픈가, 밥은 먹었나. 그렇게 애지중지 마음 쓰면서 어떻게 저한테는.... (한숨) 제가 뭐, 그렇게 썩 잘나진 않았지만요, 그래도 저 밖에서 욕먹고 다니진 않아요. 일하다 보면 인간 아니다 싶은 애들 많은데 저 밖에 나가서 아버지 누구냔 소리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어요. 며칠 전에 회사에서 나온 거라고 집에 갖고 들어왔던 거 그것도 저 그만둔다니까 점주들이 준 거예요. 제 결혼식에 꼭 오겠다고 축의금 50만 원 예약한 사람도 있어요. 근데 뭐, 그 사람들이 전부 인간적으로 다 괜찮았냐? 아니요, 저 정말 힘들었어요! 아버진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기계랑만 일해서 사람이랑 일하는 게 그게 어떤 건지 몰라요. 근데 그래도 얼굴 붉히지 않고 험한 꼴 안 보고 근데 그래도 얼굴 붉히지 않고 험한 꼴 안 보고 선물 받고 나왔잖아요. 그럼 된 거잖아요! 제가 뭐 영원히 논다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그동안 수고했다, 좀 쉬어라, 그래 주시면 안 돼요?
창희가 좀 격해졌네요.
다음날 아버지와의 화해는 이렇게 하게 되네요.
옆 밭 가족과 경주 장면으로 다소 박진감 넘치게 보여지다가
결국 또랑에 트럭이 박히며 코믹하게 마무리됩니다.
이러고 돌아온 엄마는 쌀을 씻으시며 넋두리를 하는데요, 이 대사는 나름 중요해서 옮겨놓습니다. 엄마의 대사를 기록하는 건 처음이네요.
엄마
아휴, 염병. 논두렁에 꼴아박히고 나서도 밥을 안쳐야 되니...
(식탁 의자에 앉아 땀 닦는) 밭 내놔요. 공장에 사람 구하는 거하고 상관없이. 밭일도 아니야, 응? 정신없이 자라는 거에 덩달아 정신없이 뿌리고 거두고. 아이고 더는 못 해, 내가. 당신은 밥 먹고 나서 숟가락 딱 놓고 밭으로 가고 공장으로 가면 그만이지, 어? 나는 공장으로 밭으로 쫓아다니면서 집에 수십 번 들락거리면서 가스 불 켰다 껐다. 이건 뭐, 빨간 날이 있길 해 뭐가 있길 해? 삼백육십오일 매일. 교회 다닐 때는 그나마 하루라도 쉬었지. 그거 싫어서 교회도 다 때려치운 양반이. 나 이제 교회 다닐 거예요!
(연신 땀 닦으시며) 아이고, 진짜 어디가 고장이 났나? 왜 이렇게 땀이 나?
자, 여기 기정이와 태훈의 딸 유림이 둘만 있은 적은 첨인 거 같습니다.
기정
생각해 봤어. 내가 너이고, 아빠한테 여친이 생겼다고 하면.... 싫겠구나. 그 여자가 어때야 마음에 들까? 친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것도 싫을 거고 눈엣가시처럼 쳐다보는 것도 싫을 거고, 속없이 혼자 잘 사는 여자면 그나마 봐주겠구나. 그동안 속없이 혼자 잘 사는 여자처럼 보이려고 혼자 떠벌떠벌했는데 오늘 작정하고 내뱉은 내 설정 어린 말들이 하나도 안 먹혀서 좀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