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어. 그날 119가 왔었는데 심정지 상태에선 119가 옮기지 않는대. 빨리 병원으로 가 달라고 울고불고 사정하는데도 안 된대. 경찰이 왔었어, 안방에. 엄마가 누워 있는데. 싸웠었냐? 보험은 몇 개냐? 이상한 걸 묻더라.
보람
참 희한한 경험 했네요.
엄마를 잃은 염씨가족의 생활이 보여집니다.
출근을 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울고,
밥을 먹으면서도 불쑥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이 와중에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하던 기정이 툭 내뱉습니다.
“엄마, 과로사한 거야, 이거.”
식사 도중 엄씨 집안이 전사가 나오는데요, 고모 보증을 서줬다가 빚을 지게 된 모양입니다.
그때 집이 어려워지면서 그 빚을 갚기까지 꽤나 고생을 한 모양입니다.
거기에 기정의 화가 폭발하는데, 놀랍게도 유골함에서 소리가 나 대화를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죽음‘을 얘기하며 웃는 창희와 두환 정훈의 대화 장면입니다.
이 장면 대사 참 좋습니다.
두환
봉투 받는데, 이렇게 보니까 박진우인 거야.
헉 순간 ‘어?’ 하고 이렇게 보니까 ‘염기정 팀장님이 제 욕 많이 했죠?’
창희, 정훈
(소리 내 웃는)
두환
맨날 이름만 듣던 사람이 다 모이니까 원래 알던 사이처럼 막 반가워 가지고 실수하는데,
아, 장례식장이 이런 맛이 있구나.
정훈
내가 그랬지. 이빨 하나에도 못됐음, 못됐음이라고 쓰여 있다는 여자 이쁘다고. 나 기정 누나 회사 사람들 무리에서 딱 집었어. 저 여자다. 내가 누나한테 이빨 하나하나에도 못됐음, 못됐음, 저 여자죠? 맞죠? 그러니까 ‘어.’ 걸린 거지.
창희, 두환
(소리 내 웃는)
정훈
여태 날조를 했다는 거, 어?
셋 함께 웃는다.
두환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보다도 아주머니 돌아가신 게 더 황당한 거 같아.
전혀 예상을 못 했어서 그런가?
정훈
났으니 가는 거 당연한 건데 다들 적당한 때에 가면은 얼마나 좋을까?
창희
적당한 때가 언젠데?
정훈
팔십?
창희
야, 팔십 돼 봐라.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 맨날 꼬부랑 노인네들 보면서 저렇게까지 오래 사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자긴 팔십까지만 살 거라고. 근데 팔십 되던 해에 ‘어? 할아버지 올해 돌아가셔야 되는데?’ 그랬더니 하시는데
(웃는) 그렇게 오년씩 연장해서 90까지 가시더니 뭐, 그때도 아직 아닌 거 같으시다고....
정훈
쓰읍, 시스템적으로 모든 인간이 다 같이 백세 찍고, 응? 다 같이 아웃하는 거면은....
창희
그럼 난 99세 때 동맹군 만들어 ‘시스템을 파괴하라!’
두환
난 시스템 피해서 도망쳐. 산으로!
함께 웃는다.
창희
없다. 적당한 때가.
두환
그래도 어머니 날은 잘 고르셨다, 금, 토, 일. 덕분에 우리도 삼일 연짱 기정이 누나 남친도 삼일 연짱.
정훈
아, 아무리 봐도 누나가 노난 패 같다, 응? 이게 어머니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남자 찾으면 진짜 염치없는 거다, 응? 근데 곧 뭐가 닥칠 거를 알고 있는 것처럼, 미친 사람처럼 말이 되냐? 응? 고백했다가 까이면은 기억상실증인 척한다는 게, 응?
창희, 두환
(웃는)
정훈
그렇게 막, 어? 급하게 잡더니, 딱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제 누나는 어? 이 집에서 언제 나가도 그렇게 염치없는 인간은 아니다, 응. 아무래도 누나 금방 나간다, 어. 그 남자 삼일, 어? 연짱으로 온 거 보면은, 그래 어.
두환
(웃는) 그럼 우리 염창희 군께서는 또 때맞춰서 회사 때려치우시고 (웃는)
창희
(웃는데 눈물 나는) 진짜, 진짜 놀랍지 않냐? 나의 동물적인 감각. 내가 그러려고 그렇게 때려치우고 싶었던 거야. 근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막 미친 듯이 때려치우고 싶었던 것도 아니야. 그냥 그만둘 때가 된 거 같아서 그만둔 건데.... 영혼이 안다는 게 이런 거다. 나 백수 아니었으면 누가 울 아버지 케어하냐? 셋 다 출근하고 나면 구씨형도 없고 아버지 혼자서, 진짜 눈물 날 거 같다. 근데 나 어릴 때도 이랬어. 고이 때 담임이 앞으로 야자 땡땡이치는 놈들 가만 안 둔다 그랬는데 내가 원래 야자 땡땡이치던 놈도 아니야 근데 이상하게 그날은 집에 가고 싶더라고. 집에 가서 뭐 특별히 할 게 있었던 것도 아니야. 그냥 가고 싶었어. 그래서 갔어. 할머니 혼자 계셨는데, 다녀왔습니다. 그러는데 눈은 뜨고 계시는데 대답도 없으시고, 느낌이 이상해. 그래서 이제 손을 잡아 드려야 될 거 같애서 잡아드렸는데, 조금 있으니까 느낌이 쎄한 게 가셨다 싶은 거야. 갑자기 또 무섭대. 그래서 손을 쓱 뺐는데, 이건 아니다. 그래 다시 손을 꼭 잡아 드렸는데 한 오분 지났나? 아버지 들어오시는데, 할머니 혼자 두고 어디 갔었냐고 내가, 내가 진짜 태어나서 아버지를 그렇게 쥐잡듯 잡아 본 게 처음이다. 우리 아버지 끽소리도 못하고 다 듣고 있는데 그때의 희열? (다들 웃는) 그때 나 땡땡이 안 쳤으면 울 할머니 혼자 돌아가셨다. 이렇게 영혼이 먼저 알아. 그래서 그냥 몸이 가. 내가 염기정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랑 하루 종일 둘이 있다가 누나랑 미정이 들어오면 그래도 좀 들 쓸쓸해.
창희는 두환과 정훈이 바라보는 앞에서 엄마의 인공관절을 잘 묻어 드립니다.
엄마를 보내고 첫눈이 내립니다.
그리고 미정에게는 본격적인 시련이 닥치는데요,
미정은 최팀장 와이프의 전화를 받습니다.
미정은 현아를 찾아갑니다.
미정
팀장 새끼가 여직원이랑 바람을 피우는데 그 여자 번호를 내 이름으로 저장해 놨어.
현아
헐
미정
나 싫어하는 거 다들 아니까 내 이름으로 저장해 두면 안전하다 싶었던 거지. 알고 있었어, 바람피우는 거. 누구랑 피우는지도.
현아
누군데?
미정
옛날에 둘 다 회의에 늦어서 내가 두 사람한테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없는 게 소름 끼치게 똑같았어. 일상 소음이 하나도 없었어. 진공 상태처럼, 둘이 똑같이.
현아
모텔이네.
미정
그 뒤로 착착 꿰지더라. 옛날에 걔 소지품에서 샴푸를 보고 무슨 샴푸까지 들고 다니나 했는데, 샴푸 냄새 똑같은 걸로 걸리지 않으려고 한 거지.
돌연 생기는 미스테리.
미정만 알고 시청자는 모르는, 미정이가 덤덤하게 반응해서 더 빡치는 미스테리.
그년이 누군지는 잠시 미뤄두고 여기 기정이 다시 유림과 독대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기정
아줌마가 일이 좀 있었어. 들었지?
(유림이 반응이 없자) 맥주 오랜만이다. 안다. 마시면 더 힘들다는 거. 마실 땐 쭉쭉 마셔야지. 이렇게 마시다 말면 집 가는 내내 더 힘들어. 아줌마 집이 좀 멀거든. 힘들 거 뻔히 아는데 힘을 내고 싶지가 않아. 그냥 넉다운 되고 싶어. (눈물 훌쩍) 아줌마가 주기적으로 좀 이래. 근데 내일이면 또 금방 괜찮아져.
유림
어른들도 슬퍼요? 엄마가 없어지면?
기정
.....!
유림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기정
내가 네 엄마 해주면 안 돼? 해줄게.
유림
(일어나 나가는)
기정
내가 니 엄마 해주면 안 돼? 어? 아니다 싶으면 잘라, 어?
마침, 들어온 태훈에게 기정은 다짜고짜 청혼합니다.
앞으로 기정과 유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다시 미정에게 장면이 전환되면 곧바로 미스테리가 밝혀집니다.
미정이 엘베 앞에 있는데 수진이 와 함께 기다립니다.
수진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 아무도 오해 안 해. 미쳤니? 둘이 바람피운다고 생각하게.
근데 누군지 알아? 최팀장이랑 바람 피는 여자?
미정
응.
수진
누군데?
미정, 수진을 똑바로 응시합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수진의 표정이 굳어있습니다.
미스테리가 밝혀지는 순간이지요.
다음 장면에서의 수진은 더더욱 가관입니다.
수진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구박댕이 케어해 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네.
돌아서 가는 수진을 쫓아가 핸드백으로 후려친 미정이 자기가 본 사실을 말해줍니다.
미정
그래도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그러는 건 아니지.
상 밑에서 발가락으로 꼬물꼬물, 낄낄낄! 그러는 건 아니지.
부끄러워해야 할 수진이 되려 미정에게 핸드백을 날립니다.
늘 구씨가 술먹던 평상에 앉은 미정. 얼굴은 멍투성이입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미정은 깽값을 물어줘야 해서 대출까지 받습니다. 그러니 수진은 지금 이 시각 곤죽이 되어 병실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미정
나 이제 친구 하나도 없을래. 없어도 돼.
막 담배를 입에 무는 미정의 머리 위로 밤송이 하나 떨어집니다. “아!”
미정이 머리 맞고 토로록 굴러간 밤송이를 보는 미정이 생각합니다.
미정
이게 왜 당신 같을까요? 엉뚱한 데서 엉뚱한 것들이,
나 여기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창희는 시장을 지나다가 미정이 개 잃어버렸다며 펑펑 울었던 사실을 상인 아줌마에게 듣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현아와의 대화입니다.
현아
언니랑 미정인 어떻게 지내?
창희
누난 맨날 질질 짜고, 미정인 똑같지, 뭐.
현아
미정인 우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아이니까.
맞아요, 출근길 기정이 울고 있으면 “버스 와.”라며 덤덤히 진정시키던 미정이였죠.
이런 미정이 시장을 가로지르며 엉엉 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창희는 구씨를 찾으러 갑니다.
롤스로이스가 주차되어있던 곳에서 한참을 기다려 보기도 하는 창희입니다.
집에서 요리하는 창희에게 현아가 전화가 옵니다.
현아
너 왜 청혼하고 씹어? 전화도 안 받고.
창희
바빴어.
혁수
(현아에게 핸드폰 건네받고) 야, 나 아직 안 죽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것들이.
창희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현아는 안 받을 건데요.
혁수
얘가 받으면? (현아 보고) 니가 안 받을 거래.
현아
받아.
혁수
받는데.
창희
나 밥해야 돼요.
혁수
내가 링크 걸어 준 거 봤냐? 납골당. 내가 다 뒤져 봤는데 거기가 제일 좋아, 깔끔하고. 어머니 그리 모시자. 나도 그리 들어가게. 나 니네 엄마 모시는 데로 간다.
창희
형네 엄마랑 들어가.
혁수
우리 엄마 오래 사신다. 나 찾아올 사람도 없고. 니네 엄마랑 있어야 엄마 보러온 김에 나도 보러 올 거 아니야. 현아하고 니 것도 내가 예약해 줄게.
창희
하, 진짜 순장이야?
혁수
니들은 천천히 와. 우리 웬만하면 죽어서도 한곳에 몰려 있자. 심심하지 않게.
현아
(핸드폰 가져가) 미정인?
창희
미정이 뭐?
현아
별일 없나 해서?
창희
네가 물어봐. 너 미정이랑 친하잖아, 나보다.
혁수
(핸드폰 건네받고) 창희야. 난 즐거운 사람이 필요해.
창희야, 즐거워야 된다.
창희
내가 형 때문에 산다.
혁수의 마지막 대사, “즐거워야 된다” 이 말이 신선하게 와 닿습니다.
‘행복해야 된다’ 같은 말보다는 구체적인 느낌이어서인 거 같아요.
다음 장면에서 창희는 아버지에게 차를 사야 된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차 안에서 키스를 하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우리 가족이 화목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네요.
곧바로
염씨 가족은 창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바닷가로 갑니다.
이렇게 지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다시 시간대는 아버지 앞에 앉은 구씨로 돌아옵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구씨에게 미정의 핸번을 적어줍니다.
서울에 들어온 구씨는 단골 바를 찾아가 술을 마십니다.
구씨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다음날 구씨는 핸드폰을 들고 있네요.
구씨
오랜만이다. 나 구씨.
미정
오랜만이네.
구씨
어떻게 지내시나? 그동안 해방은 되셨나?
미정
그럴 리가.
구씨
추앙해 주는 남자는 만나셨나?
미정
그럴 리가.
구씨
보자.
미정
안 되는데.
구씨
왜?
미정
살쪄서. 살빼야 되는데.
구씨
한 시간 내로 살 빼고 나와.
둘이 만났어요.
미정의 머리는 조금 짧아졌고요, 살은.....
구씨
많이 안 쪘는데, 뭐.
멋쩍게 웃는 두 사람.
미정
머리 길었네.
구씨
잘 생기지 않았냐?
미정이 수줍은 여고생처럼 웃네요.
구씨
넌 잘랐네.
미정
응, 조금.
구씨
전화번호 바꿨더라? 겁도 없이.
둘은 걷습니다.
미정
열 뻗쳐서, 전화 기다리다가. 우리 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연락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하겠지. 엣날 번호로 전화한 적 없잖아. 있나?
구씨
보고 싶었다, 무진장. (웃는) 말하고 나니까 진짜 같다. 진짜 무지 보고 싶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