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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Jul 27. 2022

7월 5일  화 _ 2022년

> 15화 저 산이었던 거 같아     


 

14화에서 이름을 묻고 답하는 엔딩이 무척 드라마틱한 엔딩이라 생각했습니다. 

맞아 그냥 여기서 끝나는 게 깔끔하면서 여운을 줄 수도 있겠다...? 

근데 여기서 끝내지 않고 박해영작가는 미정의 성격처럼 무덤덤이 이어갑니다.    


미정  

이름이 뭐예요?     


구씨  

구장경이라고 합니다     


미정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자경  

집에 갔었어     


미정  

언제     


자경  

며칠 전에     


미정  

갑자기 왜


자경  

그냥     


미정  

엄마 돌아가신 거 알았겠네     


자경  

     


미정  

아빠 재혼하신 것도      


자경  

(대답 없이 걷는)     


미정  

(뚫어지게 구씨 보는)     


자경  

     


미정  

신기해서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까만나게 되기는 할까지금 전화 오면 얼마나 좋을까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순간엔 조용하더니 정말 어이없는 순간에....      


자경  

뭐하고 있었는데     


미정  

전쟁 직전오늘 완전 흑화되려고 했었는데     


자경  

누구랑?     


미정  

..... 근데 우리 어디 가요?     


자경  

그러게춥지어디 들어갈래커피숍?     


미정  

추워요?     


자경  

아니 너는     


미정  

나도 별로그냥 걸어요어색할 거 같애커피 놓고 마주 앉아 있는 거     


자경  

생각해 보니까 너랑 커피숍 가서 커피 마신 적이 한 번도 없다.     


미정  

그 동네에서 커피 마실 일이 뭐 있었나맨날 배추 뽑고 무 뽑고그러다가 냉수 마셨

     


자경  

역시우린 이런 들이 어울려     


미정  

편하지나무바람돌은 우릴 거슬리게 하지 않잖아.     


자경  

사람 많은 데서는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서 커피숍 옆자리에 앉은 사람 보면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거슬려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만 있는데     


미정  

우린 그냥 인간을 싫어하는 듯     


자경  

나만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미정  

이렇게 걷다가 앞에서 누가 오면 그 사람도 거슬리지 않아요     


마침 헛둘헛둘 팔운동을 하며 할아버지가 다가옵니다. 

지나가는 할아버지로 잠시 갈라지는 미정과 자경.     


미정  

저 사람도 우리가 거슬릴까     


자경  

일 대 다수일 때는 항상 일이 거슬려다수는 일을 거슬려 하지 않아

일은 늘 경계태세야일이라너만 만나면 이상해생각지도 못한 말이 줄줄 나와     


미정  

우린 이야아니면 일 대 일이야     


자경  

너 나 경계하냐?     


미정  

(잠시 보다진작 전화하지     


커피숍이 싫다는 미정과 자경은 어디로 갔을까요? 둘이 간 곳은 광장시장. 

그곳에서 자경은 미정이 발 편하라고 운동화 사주고 예쁜 장갑도 사줍니다. 

사람이 싫다던 둘이 바글바글 사람 많은 곳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미정과 자경의 데이트를 삼식의 전화가 방해합니다.  

삼식의 전화로 수금을 하던 자경은 얼굴에 상처도 납니다. 

뒤늦게 미정이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온 자경입니다.     


자경  

(얼굴 상처 쓱 닦는그린 거야     


미정  

한 시간 반만에 딴 사람이 돼서 왔네     


자경  

좋다 싶으면 바로... 하루도 온전히 좋은 적이 없다.     


미정  

하루에 오분오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 주면 고맙습니다.’하는 학생 때문에 칠초 설레고아침에 눈떴을 때 오늘 토요일이지.’ 십초 설레고그렇게 하루 오분만 채워요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와! 미정의 이 아름답고 반응은 뭐죠?

엄청나게 긴 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거기다 얼굴에 상처까지 입고 온 자경에게 일말의 삐짐도 없는 미정의 관대함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경  

뭐 여전히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는 거냐

(웃는가 보자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겉옷 벗고 주문하는)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립니다. 

내리는 눈을 맡으며 걷는 미정과 자경.      


자경  

얼마 전에 폭설 와서 운전하는 사람들 다 도로에 차 버리고 간 적 있었어     


미정  

있었어     


자경  

나도 영동대교에서 차 버리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 들더라지구가 이대로 한동안 멈춰 버리면 이대로 걸어서 산포로 가겠구나 최단 거리 잘 찾아서 가면 이십팔킬로새벽이면 도착하겠구나어디에서 어디로 꺾어져서 어떻게 갈지 머릿속으로 자세히 가는데 웃겼어지구가 멈추면 밤새 걸어서 거길 가겠다고 생각한 게그냥 차 타고 가면 금방인데     


자경의 이야기를 듣던 미정이 걸음을 멈춥니다. 

자경이 왜 산포를 떠났을지 미정은 이 말로 어림잡지 않았을까요? 

자경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났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산포를 그리워할 수 없지 않겠어요?     


미정  

기억하나예전에 나한테 돈 꾸고 날랐던 놈전 여친한테     


자경  

전 여찬한테 갔다는 말은 안 했는데.       


미정  

오늘 그놈 결혼식이었어내 돈도 다 안 갚고아직 육백이나 남았는데스드메 다 갖춰서 하객도 부르고 뷔페에서그럴 돈 있으면 내 돈 갚으라니까 그 새끼가 나한테 삽십분을 지랄하는데 듣고 있다가 들고 있던 컵을 부서트렸어내가 아직도 등신 같은 염미정 같나 보지결혼식 가서 신랑신부 뒤에 서서 가장 살벌한 표정으로 사진 찍어 줄 거고나올 때 축의금 챙겨 올 거다죽기로 결심하고 갔어당신 말대로 일대 다수를 감당하면서 축복하는 다수 속에 재 뿌리러 가는 일이 되기로 하고일이 되자완전한 일이 돼 보자사진사가 신랑 신부 친구들 나오라고 하길래 일어나는데 그때 전화가 왔어이 사람 날 완전히 망가지게 두지 않는구나날 잡아주는구나     


아! 박해영작가님. 어디 하나 빈틈이 없네요. 

만났을 때 미정이 흑화되려고 했다는 의미가 밝혀지면서, 

둘은 꼭 만나야 했다.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절대적인 당위성을 부여받습니다.

자경의 오피스텔은 보일러가 고장이 났고요, 바닥에는 술병이 즐비합니다.      


미정  

이렇게 좋은 오피스텔에서 이렇게 난민처럼 살다니     


자경  

술꾼한테는 술잔만 깨끗하면 돼     


미정  

(자겨 옆에 눕는왜 도우미 안 써돈 많다매     


자경  

귀찮아비번 가르쳐 줘야 되고때되면 돈 부쳐야 되고.     


미정  

코시려     


자경  

(이불 끌어다 자경 덮어주는나도 개새끼였냐?     


미정  

이제는 아니야전화 왔는데     


자경  

어제까진 개새끼였고?     


자경이 미정을 찾아오며 시간을 확 뛰어넘는 바람에 창희, 기정의 근황은 아직 모르는데요,

두 남매 모두 궁금합니다. 

직장을 때려친 창희는 무슨 일을 했는지, 태훈에게 청혼한 기정은 어찌 되었는지 말이에요. 

창희는 보니까 편의점 점주가 되어 있네요.       


창희  

돈 못 받으면 어떤 기분인지 모르지 않는데 내가 이제 못 주는 사람들 욕은 못 한다사업할 때 팔 하나 잘라서 직원들 월급 해결된다고 그러면 어디가서 팔 하나 자르고 오고 싶은 심정이었거든     


알바  

군고구마 기계 사업이 말이 돼요집집마다 에어프라이기 있는데     


창희  

가정용 말고 업소용인마저거저거보다 큰 거     


알바  

....     


창희  

막막해서 어디가서 기도라고 하고 싶은데 새벽에 열린 교회는 없고 갈 데가 편의점밖에 없더라그날도 암담해서 여기 이러고 앉았는데 동기 놈한테 톡이 왔어니네 동네 편의점 하나 나왔는데 해 볼 생각 없냐고그게 여기였다내가 그런 놈이야내가 있을 자리 귀신같이 미리 가서 앉아 있는     


알바  

사장님 내일 그냥 미친 척하고 대기업 회장실에 가 있어요내가 앉을 자리라고그냥 느낌이 그렇다고경복궁 같은 데 가 앉아 있지 말고요실현 가능성 1도 없는 경복궁엔 왜 자꾸 가 앉아 있어요이씨도 아니면서     


여기서 중요한 대사가 나오는데요, 창희는 그런 놈이라는 거, 자신이 있을 자리에는 귀신같이 미리 가서 앉아 있는 놈이라는 거입니다. 요거 하나 기억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장면이 넘어가면, 기정은 회사를 옮겨 다른 카드 회사, 디자인팀이 아닌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요. 

마침 보람이 찾아와서 내연녀 수진 전에 회사를 관뒀다고 말해줍니다. 

이 드라마의 특이성이 여기서 도드라집니다. 한수진과 최팀장에게는 전혀 관심도 주지 않았을뿐더러, 기정과 유림의 관계도 녹녹하게 화해로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기정은 유림이를 시어머니 얘기하듯 하고 있네요.      


기정  

애가 말도 없고 그래서 안쓰럽고 그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깡패가 되냐우리 어느 날 아침에 노안 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깡패가 돼 있어걔가 뭐라 그러면 나까지 쫄아서 어버버해그런 애랑 같이 살 자신도 없고아 그렇다고 고모들 손에 맡기고 태훈씨랑 둘이 살자니 양심에 걸리고 걔 스무 살 되면 결혼하자고 했는데걔 스무살 되면 하난 오십인데염병     


원희  

우리 사십 금방 오지 않았니오십도 금방 오지 않을까     


기정  

안 돼오십 그렇게 빨리 오면 안 돼     


원희  

태훈씨랑 오십에 결혼한다매     


기정  

그러니까빨리 오면 안 되는데빨리 와야 돼오십오십에도 무슨 감정이란 게 있을까그 나이 되면 그냥 동물 아닐까 싶다살아있으니까 사는우물우물 여물 먹듯이 먹고 그러는?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의 표정이 쌔해져 기정 뒤를 보면, 

오징어를 여물 먹듯이 드시고계신 오십 대 여자 분이 계셔요.  

 

오십  

살아있으니까 산다 싶은 우물우물 여물 먹는 동물인 오십인 여자가 말해 줄게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데..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마흔은 어떻게 살지오십은 살아 뭐 하나 죽어야지그랬는데 오십똑같아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나는 열 세 살 때 잠깐 낮잠 자고 딱 눈 뜬 거 같아니들도 그렇지?     


2  

난 열 두 살     


오십  

꼭 하나 깎아저년은너는     


3  

가자     


오십  

(기정 향해팔십도 나랑 똑같을 걸     


다음 장면에서 기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얘기하는 이 친구는 조금 뜬금없네요. 

돌연 등장해서는 ‘혼자 살아도 된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마도 이 친구는 박해영 작가를 대변하는 출연이 아닌가 싶어요.
(그녀의 얘기가 박해영작가의 실제 삶과 닮아있다는.....)     


기정  

선우씨 안 보고 싶어     


혜련  

어쩌다 가끔     


기정  

7년을 같이 산 사람이 없어지면 난 되게 허전할 거 같은데     


혜련  

허전한 데 편해진 것도 많아일단 시댁이 없어졌고     


기정  

건 좋네조경선이 없어진 거네     


혜련  

혼자 되니까 예전에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친구들 안쓰럽게 봤던 거 미안해지더라고내가 건방졌구나 혼자 살아도 별문제 없고 충분히 행복한데 먹고 싶은 음식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먹는 거자는 거이 단순한 걸 내 맘대로 하고 산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일주일 동안 총서 안 해도 내가 손댄 그대로다     


기정  

너 옛날에 결혼해서 좋은 점이 새벽 두시에도 떡볶이 먹으러 같이 갈 사람이 있다는 거였었어내가 그 말 듣고 아그렇겠구나좋겠다너 얼마나 부러워했었는데     


혜련  

내가 새벽 두시에 떡볶이 먹고 싶은 날이 맨날 있겠니혼자 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쳇바퀴 돌 듯이 살았는지때 되면 시댁 가야되고 같이 밥 먹어야 될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어떻게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게 결혼생이든 직장생활이든 누구랑 합을 맞추려 애쓰는 건데 아남편 가고 나니까 다 놔지더라구됐다누구랑 합을 맞추려 애쓸 필요 없다혼자 살아도 된다     


기정  

난 아직 합해보지도 못했는데     


다음날, 기정은 우연히도 편의점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사다가 유림이에게 들킵니다. 
 (참 우연이긴 합니다.)

그리고 유림이가 큰고모한테 말하고, 큰고모는 태훈에게 말하며, 이참에 결혼하는 것이 맞다고 얘기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태훈은 맘에 준비를 하고 기정을 마나는데요, 

기정이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 태훈입니다.       


태훈  

다행이에요난 또...      


기정  

(잠시 생각임신인 줄 알았구나아니에요     


태훈  

정말 다행이에요     


기정  

에이. (웃는     


웃던 기정의 표정이 일순 굳습니다. 

지금은 차안인데요, 차안 분위기가 싸해지네요. 

지금 운전 중인 태훈은 어디 도망갈 때가 없습니다.      


태훈  

... 미안해요잘못했어요     


기정  

아니에요     


태훈  

정말 미안해요     


아! 이게 뭔가요. 둘에게 큰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지 걱정되네요. 

여긴 창희 편의점. 예전 직장 친구 민규가 찾아왔습니다.      


민규  

용하다그 대출을 다 갚고난 그냥 자빠졌을 거 같은데 어떻게 버텼냐     


창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아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맨날 산을 봤어지구상에 나 같은 인간이 77억 명 있다는데 77억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어서 인간 하나를 1원짜리 동전 하나로 치환해 놓고 보니까 77억이면 1원짜리가 저 산만큼 쌓여 있는 거래아무것도 아닌 1원 짜리가참 요란하게도 산다 싶더라     


구씨가 말해줬다고는 하나 그가 말한 장면은 본 적이 없어요. 

지금 이 대사는 창희의 입을 통해 몇 차례 반복되었는데요, 

곧 이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한편, 자경은 신회장에게 술 끊으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경  

다녀요병원     


신회장  

안 온다던데     


자경  

딴 데로 옮겼어요김박사는 재미가 없어서     


신회장  

상담이 재밌기도 하나     


자경  

지겨운 인간하고는 10분도 얘기 못 해요     


신회장  

무슨 얘기 했는데?     


자경  

제가 항상 경계 태세래요. (손가락 하나 피며일이라서어디서 술병이 날아오나 칼이 날아오나 살피고 경계하고 잡고 패고파트너가 있어서 짝을 이뤄서 같이 하는 일도 아니고 평생 혼자하루에 오분만 즐겁자는 마인드로 사초칠초짜리 설레는 순간들 끌어모아서 하루에 오분만 채워 보라는데 오늘은 아직 일초도 시작 못 했는데 말하다 보니 지금 살짝 삼초 설렜습니다 육초 오늘은 좀 기네요.       


자경은 오분을 채우기 위해 미정을 찾아갑니다. 

미정, 자경에게 걸어오며 한마디 하네요.      


미정  

열두 번당신 별명 이제 열두 번이야하루에도 열두 번 이랬다저랬다     


자경  

쉽게 보지 마백만 번이야     


못 만난다고 했던 자경이 찾아온 모양이에요. 

둘은 기껏해야 노상에서 오뎅을 먹네요. 

이들의 데이트는 늘 이랬던 거 같습니다. 

그나마 돈까스 먹었을 때가 가장 격식을 갖춘 식사 자리였던 거 같네요.      


자경  

너 알바 안 할래     


미정  

무슨 알바청소?     


자경  

아니     


미정  

그럼?     


자경  

내 얘기 들어주는 거내가 호빠 선수로 들어갔을 때딱 이주만에 이건 도저히 못 해 먹겠다 싶어서 때려쳤던 게 사람들이 죄다 하소연이야     


미정은 지금 자경이 호빠였다는 사실을 처음 듣지만 상관없는 거 같아요.     


남편이 바람이 피는데 어쩌고 저쩌고 차라리 어디 가서 코피 터지게 두드려 맞으면 맞았지이건 못 해 먹겠다 싶더라사람들 얘기는 돈 받고 들어줘야돼십회만 끊자상담의 기본은 원래 십회야십회 끝나고 그래도 여전히 할 말이 있다 싶으면 또 십회너 내 얘기 재밌어 하짆아     


미정  

막 우겨이제     


둘은 집에 와 있어요. 

그곳은 미정이 선물한 난로가 온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보일러가 고장 난 이곳에 난로는 자경과 미정의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장치네요.      


자경  

너 다시 만나고 후회했어미친놈뭐 하러 또 만나서옛날에 산포에서 그렇게 끝났으면 그래도 아주아주 형편없는 놈은 아닌데 무슨 꼴을 보여주려고염미정     


미정  

깜짝이야     


자경  

이것만은 알아둬라나 너 진짜 좋아했다나중에 내가 어떻게 망가져 있을지 나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봐도 서울역에 있을 거 같은데 음뭐 그 전에 확 끝날 수 있으면 땡큔데나 너 진짜 좋아했다     


미정  

감사합니다     


자경  

난 사람이 너무 싫어눈앞에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도 싫어내가 갑자기 욱해서 너한테 어떤 눈빛을 보일지 어떤 행동을 보일지 어떤 말을 할지 나도 몰라겁나근데 이것만은 꼭 기억해줘라나중에 내가 완전 개개개개개새끼가 되도 나 너 진짜 좋아했다     


미정  

녹음하고 싶다     


자경  

녹음해녹음해염미정나 너 진짜 좋아했다염미정. (미정을 안는

십회 끝나고 또 할 얘기 있으면 또 십회 끊고 그렇게 연장하다가 더 이상 할 얘기 없으면 끝나는 걸로우리 그렇게 저물자     


미정  

좋아     


자경  

창희는 어떻게 지내냐     


구씨가 1원짜리 창희를 궁금해합니다.

창희는 지금 산포 아버지에게 전화를 겁니다.       


창희  

어제 대출 다 갚았어요     


아버지  

애썼다     


아버지에게 그렇게 듣고 싶다는 말을 들었지만 

창희는 덤덤히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습니다. 

창희가 집에 남은 기정은 서랍을 열어 가위를 꺼냅니다.

기정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자릅니다.      

자전거를 타는 창희의 모습에서 현아와의 지난 일이 지나갑니다.      


창희  

넌 내가 망가지길 바라냐어떤 미친놈 개수발 들면서 살아있다고 느껴야 되고 필요한 인간이라고 느껴야 되는데 내가 너무 멀쩡하니까 아주 지겨워 죽을 맛이지     


현아  

아니야     


창희  

뭐가 아니야혁수형 처럼 죽을병이라도 걸려야 불같이 달려들어서 불사르는 현아데 내가 너무 팔팔하게 빡세게 일만 하니까 지루해 죽는 거잖아성실하니까평범하니까     


현아  

아씨아악! (머리 쥐어뜯는)     


창희  

나 편의점 하면서 이제 좀 살 만하거든너 재밌으라고 다시 그 지옥 속으로 안 들어가사람들한테 멸시받으면서 똥 덩어리 된 기분 견뎌 가면서 그 개고생 안 해죽을병 같은 것도 안 걸릴 거고평생이렇게 평범하게 살 거야그러니까 그냥 가     


버럭버럭 소리치는 창희의 모습에서 이별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진짜 마지막이 될 이별 순간에서는 창희가 현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창희  

살다가 힘들다 싶으면 그때 와그때도 내가 혼자면 받아줄게쉬었다가 또 떠나야겠다 싶으면 또 가괜찮아우리 이제 정말 서로 축복하고 헤어지자     


현아  

웬 축복너 교회 다녀     


창희  

현아야지현아괜찮아나 너한테 앙금 없어니가 어떤 앤지 모르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끌려 왔다고 화난 거 없으니까 너도 나 못 쫓아왔다고 미안해할 거 없어진짜진짜 앙금 없어진짜 니가 행복하길 바래우리 서로 미워하는 마음 하나도 없이 서로 축복해주고 끝내자     


흐느끼며 가는 현아. 자전거 타다 달리는 자전거에서 내려오는 창희. 

웁니다, 창희. 

얼마나 울었을까 눈이 시뻘게진 창희가 산을 봅니다. 

 

창희  

형 난 일원짜리가 아니고 저 산이었던 거 같애저 산으로 돌아갈 거 같애     


15화의 엔딩을 창희가 장식하는데요, 

창희가 1원짜리가 아니고 산이 되는 장면. 

다시 보니 이 장면 정말 웅장해지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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