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벽두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너무나도 완벽한 그녀에게 제 온몸의 감각이 감화된 하루였습니다.
지금도 그녀에게 털린 온몸, 아니 영혼까지 저릿저릿합니다.
저의 솜털 끝까지 삐죽 서게 만든 그녀는 코랄리 파르쟈.
<서브스턴스>의 감독입니다.
오늘 (1월2일) 아침, 새해 일출을 보듯 맞이한 <서브스턴스>.
데미 무어와 마거릿 퀄리의 압도적 연기는 일단 뒤로하고 감독님부터 칭송하고자 합니다.
프랑스가 국적인 그녀는 뤽베송의 DNA를 이어받은 듯 보입니다. 워낙에 영화를 빼어나게 잘 만들어요. 지단의 우아한 발재간과 경기 장악력을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코랄리 파르쟈는 뤽베송과 결이 전혀 다릅니다.
차라리 작년에 <티탄>으로 알게 된 ‘쥘리아 뒤크르노’를 빌려 설명하는 것이 용이할 것 같네요.
둘의 공통점은 국적이 같다는 것 외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괴랄한 매력에 있습니다.
저는 사실 코랄리 파르쟈를 전에 강렬하게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데뷔작인 <리벤지>를 통해서.
쥘리아 뒤크르노의 입봉작 <로우>를 OTT 쇼핑 중 우연히 만난 것과 같은 경우였습니다.
쥘리아 뒤크르노의 <티탄>은 극장에서 놓쳐 통탄을 금할 길이 없지만, 오늘 본 <서브스턴스>는 극장에서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여튼 두 감독의 괴랄한 매력은 흡사하지만 차이는 분명합니다.
쥘리아 뒤크르노의 영화가 저를 압살하였다면,
코랄리 파르쟈의 영화에게 저는 매혹당했습니다. 온몸을 뚫고 영혼까지 송두리째 말이에요.
코랄리 파르쟈는 영화 외적인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그 속에 깃든 쏘울도 자유자재로 점프합니다. 일테면 남성의 시각에서 시작한 영화는 어느덧 여성 심리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습니다.
그녀의 데뷔작 <리벤지>가 그러했고, <서브스턴스>도 그러합니다.
남성의 시선을 정확히는 알고 있지만 동조하거나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솜씨로 활용합니다. 일테면 음식을 꾸겨 넣는남자의 입을 여자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극단적으로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방식은 여자 주인공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출하는 장면입니다.
한편으로는 영화 속 여주가 고통받는 순간에 보여주는 곤충은 여성, 남성의 시선을 벗어난 인간 초월적인 시선도 견지합니다.
이 모든 예가 그녀의 두 편의 영화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단 두 편의 연출로 뚜렷한 그녀의 인장이 된 겁니다.
그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선배 감독들의 인장까지 거침없이 갖다 씁니다. 그 인장을 허투루 쓰지 않고 영화에 결정적 맥락에 딱 딱 찍어댑니다.
일테면 <리벤지>의 마지막 격전에서의 장면은 <샤이닝>의 엔딩 시퀀스를 제대로 끌어왔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멋지고 절묘했습니다.
오늘 저를 앗아간 <서브스턴스>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거기에 음악과 사운드로 극을 조물거리는 솜씨는 영화 속 ‘수(마거릿 퀄리)’ 의 카메라를 잡아먹는 댄스보다 화려합니다.
저는 <서브스턴스>의 매 장면마다 할 얘기가 산더미지만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왜냐면 앞으로 수차례 더 꺼내 맛볼 테니까 말입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고 끝맺으려고 하는데요, 그것은 영화의 인트로와 엔딩 컷 간에 관통되는 이미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만든 두 편의 영화가 모두 시작과 끝이 절묘하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리벤지>의 첫 장면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알리’ 등장씬의 헬기 버전으로 시작합니다. 낙타를 탄 알리와는 달리 헬기이기에 사운드까지 점차 커지면서 말이죠. 그렇게 시작한 <리벤지>의 엔딩은 제니퍼를 데리러 오는 헬기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오며 끝이 나게 되는데요, - 실은 악당 리차드가 부른 헬기입니다만, - 헬기 소리가 크게 들려올 때쯤 등지고 서 있던 제니퍼가 관객을 향해 돌아보며 영화가 끝이 납니다.
관객 모두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제니퍼를 오해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알리 등장처럼 헬기에서 내린 제니퍼는 엉덩이 살이 다 드러나는 치마를 입고 캔디를 빨며 헬기에서 내린 겁니다. 곧 그녀는 캔디 대신 리차드의 성기를 빠는데요, 이것으로 관객은 특히 남자 관객은 코랄리 파르쟈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겁니다. 그럼으로 엔딩에서의 제니퍼 시선은 관객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한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계획안에 있던 것은 물론입니다.
<서브스턴스>의 처음과 끝은 더 절묘하고 매혹적입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의 보도블록에 새겨진 이름을 막 만들어 넣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다시 그 보도블록에서 끝나는 엔딩은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보도블록에 떨어진 햄버거로 인하여 보도블록이 잠시 꾸는 꿈과 같은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가 분한 엘리자베스 스파클 캐릭터에 대해서만 얘기해도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오늘은 코랄리 파르쟈 감독만 살짝 언급하고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미루어 짐작하자면 올해 <서브스턴스>보다 훌륭한 영화는 나올 수 있겠지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서브스턴스> 때문에 2025년 시작이 참 좋습니다.
여기에 멧돼지 사냥 소식만 전해지면 참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