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2024년 담벼락 끄트머리에 하는 낙서
2024년을 지나가며,
2024년 담벼락 끄트머리에 끄적끄적 낙서합니다.
2024년 끄트머리에 계엄이라는 큰일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윤석열이 대통령 직무를 정지당한 상태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뉴스를 끊고,
영화에 몰입하며 허송세월하고자 합니다.
‘허송세월’에 ‘몰입’이라.....
헛되이 시간을 보냄에 ‘몰입’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몰입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같은 몰입이라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이윤이 남게 되면 우리는 그 행위를 허송세월이라 칭하지 않습니다. ‘몰입’해도 이윤이 남지 않을 때, 그 시간을 온전히 허송세월이라 말하지요.
저는 ‘영화’에 몰입해 허송세월하고자 합니다.
그동안은 영화에 몰입이 잘 안되어 허송세월조차 버벅거리는 내게
다시금 ‘영화’에 몰입하게 해준
몇 분의 감독님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할 감독은
<어프렌티스>의 알리 아바시 감독님입니다.
알리 아바시 감독은 얼마 전에야 처음 알게 된 감독님입니다.
<경계선>이 2019년도에 나왔음에도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의 전작을 찾아보면서 올 10월에 개봉할 <어프렌티스>를 극장에서 영접하기 위해
경건한 맘으로 기다렸습니다.
그의 영화는 <경계선>에서 <성스러운 거미>까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특히 <경계선>은 제 인생 영화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새로운 에일리언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에일리언, 로물루스>의 페데 알바레즈 감독입니다. 리들리 스콧의 바통을 이어받기에 페데 알바레즈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물론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 더 다크>로 이미 재주를 인정받았지만,
이번 <에일리언, 로물루스>로 그의 재능이 어디까지 뻗칠지 가늠할 수 없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냥 지나쳤던 2013년에 리메이크 된 <이블 데드>도 다시 찾아보니 그는 이미 미친 재능을 타고난 감독이었습니다.
다음 감독님은 <티탄 2021>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입니다.
저는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를 올해야 보게 되면서,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언제가 OTT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본 <Row>의 감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티탄>과 <로우> 모두 제게는 너무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저는 이 두 영화의 이야기, 분위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두 영화와 <경계선>이 저에게는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하여 <경계선>을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연출했어도 참 흥미로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션 베이커 감독입니다.
2024년의 대미를 장식한 감독.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운 감독.
사실 영화 <티탄>을 보게 된 경위도 션 베이커의 <아노라> 때문이었습니다.
각종 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저는 칸의 황금종려상도 어떤 영화가 받았는지 그동안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점 반성합니다.)
헌데 이 영화 <아노라>..!! 이 영화가 칸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지 뭡니까?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니! 칸이 무척 재밌는 영화에게 상을 준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기생충>에도 주었지만 <기생충>은 의미도 꽤 탄탄해 황금종려상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노라>의 황금종려상은 오히려 옛날 옛적 <펄프픽션>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의 신선함에 더 가까웠습니다. (순전히 제 느낌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노라>가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진행이 너무너무 흥미진진합니다.
저는 션 베이커에게서 <천국보다 낯선>의 짐 자무쉬와 쿠엔틴 타란티노가 디졸브 되어 보입니다.
이런 참신한 감독을 만났으니 그의 전작을 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션 베이커의 전작들을 털어보았습니다.
<레드 로켓>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타렛> <텐저린>
단 한 편도 버릴 게 없는 너무나도 재밌고 사랑스런 영화들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포르노 배우가 아니면 몸을 파는 사람들, 혹은 그녀의 어린 자녀들, 혹은 행색은 여자이나 드레스 속은 남자인. 거기에 이런 남자만을 탐하는 택시드라이버...
거기다 그의 영화 엔딩은 언제나 관객의 목을 꽉 졸랐다가 숨이 멎을 때쯤 풀어줍니다.
그의 영화는 내장 깊숙이 있는 설움이 북받쳐 올라와 목에 턱 걸리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션 베이커가 만들어 낸 설움은 칙칙하거나 어둡지 않습니다. 그의 설움은 삶을 지탱하는 생기로 발산됩니다.
저는 션 베이커 감독님 덕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쭉 훑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티탄>도 보게 되고,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TV 시리즈 <에어울프>와 <와일드 번치>의 어네스트 보그나잇의 젊은 시절 주연 영화 <마티>도 보고, 이브 몽땅 주연의 <공포의 보수>도 이참에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올해 리메이크되어 넷플릭스에 공개된 <공포의 보수>도 반갑게 보려고 합니다.
앞서 소개한 감독님들 도움에 힘입어,
저는 다시 영화에 몰입해 허송세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송세월할 2025년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