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에거스 감독님 만나 봬서 참 반갑습니다.
2025년 저는 눈을 다시 뜹니다.
심봉사가 눈을 뜨듯 번쩍 뜹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심청이 같은 딸은 없지만
영화를 기깔나게 찍는 감독님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제 눈을 찔러 감각을 되살리신 감독님들을 불러봅니다.
<경계선>의 알리 아바시 감독,
<아노라>의 션 베이커 감독,
<티탄>의 쥘리아 뒤크르노 감독,
<에일리언; 로물루스>의 페데 알바레즈 감독,
마지막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이 모든 감독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눈에 감각이 살아났던 거 같습니다.
그리하여
2025년 벽두에 저는 <서브스턴스>를 만납니다.
눈에 감각은 살아났지만 침침했던 눈에 안약을 톡 떨어트리고 개운해지는 느낌.
<서브스턴스>는 제게는 한 방울의 시원한 안약과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자~
그동안 동태 눈깔이던 제가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영화가 막 보고 싶어 집니다.
여기서 잠깐!
잠시 플래시백으로 과거의 게슴츠레한 제 동태 눈깔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대표적 사례로 무려 극장에서 영화를 봐도 잠이 들기 일쑤였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자 보는 것에는 지루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한때 영화를 사랑했던 기억의 관성으로 영화에 시선을 두고는 있었지만,
진심으로 보지 않았던 겁니다.
이렇게 안일하게 눈에 초점을 잃고 졸고 있는 사이
동태 눈깔마저 밝혀주는 눈부신 감독들이 나타났던 겁니다.
서론이 너무 지저분했네요.
그리하여 제가 올해 <서브스턴스>에 이어 소개하고 싶은 영화는,
<노스페라투>
<노스페라투>는 영화라는 것이 탄생하고 불과 30년이 되지 않아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악명 높은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리메이크했더랬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그냥 지나쳤습니다.
왜냐하면 드라큘라의 외모가 너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호러 영화이기는커녕 그 모습은 채플린 영화에 가까웠기에 이자벨 아자니의 모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도저히 볼 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노스페라투>에는 왠지 모르게 끌렸습니다.
과연 2024년에 흑백영화로 만든 <노스페라투>는 어떨까?
영화 본 느낌은,
한 마디로
와.......!!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라는 유물을 꺼내 몸소 체험하는 느낌이랄까요?
시간을 뛰어넘어 1922년도로 가 영화를 만끽하는 기분.
영화의 속살을 질펀하게 만지고 또 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노스페라투> 시대착오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유별난 영화로 느껴졌던 <노스페라투>
큰 감흥을 받았던 탓에 저는 앞서 만들어진 <노스페라투> 두 편을 다 보았습니다.
여기에 예전에 봤던 영화까지 다시 챙겨 보게 됩니다.
그 영화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대부 시리즈’를 끝내고 기가 충만할 시기에 찍은
<드라큘라>입니다.
이 세 편의 영화가 모두 브램 스토커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건 알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1922년도에 <노스페라투>를 계승하기 위해 이 영화를 찍은 것이라는 것을. 부분적으로 헤어조크의 <노스페라투>도 가져오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1922년 작을 되살려는 확신에 찬 신념이 보입니다.
여기서 저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너무나도 궁금해집니다. 사실 저는 이미 로버트 에거스에게 반해버렸음을 시인합니다. 그것도 홀딱!
그래서 급하게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아직 ‘햄릿’ 이야기를 가져온 <노스맨>은 보지 못했지만
<라이트하우스>와 <위치>는 봤습니다.
이 두 영화는 정말이지 이야기를 떠나 그냥 홀린 듯이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영화에 대해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혹은 할 얘기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버트 에거스의 영화는 진정 봐야만 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니 응당 보는 것이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의 영화는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보는 것 자체로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아~, 절대로 유튜브 요약본으로 봐서는 안 되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그런 영화인 겁니다.
OTT로 1.25배로 속도를 조절해서 보거나 작은 화면으로는 봐서는 그 맛을 알 수 없는,
영화의 러닝타임 온전히, 그리고 극장에서 화면 구석구석 꼼꼼히 봐야만 하는 그런 영화란 말입니다!
(애석하게도 그의 전작들은 극장에서 놓치고 말았지만 <노스페라투>는 극장에서 봐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야기가 시각적으로 화면 속에 펼쳐져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재밌으면 재밌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모름지기 영화란 이야기 이상의 것이 영상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몽타주니 이런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요.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늘어놓는 것이 아닌 한 장면 혹은 한 커트의 이미지로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방식 말입니다.
일테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8>의 첫 장면에서 눈밭 저 멀리 마차가 오는 장면이라든지,
<토리노의 말>에서 마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라든지 말이지요.
음, 벨라 타르 감독(‘토리노의 말’을 연출한)을 꺼내놓으면 타르코프스키 같은 감독이 딸려 나올까 봐 적절한 예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로버트 에거스는 타란티노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화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벨라 타르나 타르코프스처럼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영화에 세례를 받은 영화 성직자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 안 되겠네요. 누구나 다 아는 ‘햄릿’ 이야기지만 그(로버트 에거스)라면 어떻게 ‘명징하게 직조’했을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봐야겠습니다.
전 <노스맨> 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