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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금 _ 2025년

처절한 엔딩의 감독 '로저 글래스'

by 이게바라

1월 31일 저는 OTT 플랫폼을 서성이다가 눈이 번쩍 띄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눈에 띈 이유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이라는 것 외에 포스터가 주는 강렬함 때문이었습니다.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 찾아보니, ‘로즈 글래스’


헉! 다름 아닌 <세인트 모드>의 감독이었습니다.


작년 요맘때였을 겁니다. <세인트 모드>를 OTT에서 우연히 찾아본 것이.


그 후 저는 로즈 글래스 감독을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홍보 문구에 ‘A24’ 에서 만든 영화라는 것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검색해 보니 이곳에서 제작한 영화들은 대략 추려보면 이러합니다.


아리 애스터의 모든 영화를,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랍스터>와 <킬링 디어>를.


거기다 조나단 글래이저의 <언더 더 스킨>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바로 전에 섭렵한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와 <라이트하우스>까지


그리고 로즈 글래스의 <세인트 모드>도.


와! 이쯤 되면 더 할 말 없는 제작사입니다.


최근에 반한 영화들이 즐비합니다.


홍보 문구에 왜 제작사를 박아 넣었는지 완전 납득됩니다.


이번 리뷰도 늘 그렇듯 잡소리가 참 많습니다.


감독을 중심으로 전작들에 포커스를 맞추다 못해 제작사까지 언급하니 더 그렇습니다만,


이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 면면을 보니 말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조만간 이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로 ‘나만의 영화제’를 개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영화로 가기 전에 <세인트 모드>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세인트 모드>는 로즈 글래스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90년생인 그녀가 서른도 되지 전에 찍은 영화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말도 안 되는 천재 까라라는 건데요.


영화만 봐도 느낌 옵니다. 그녀의 재능을 말이지요.


영화는 ‘모드(모르피드 클락)’라는 간호사의 신앙에 관한 영화입니다.


이야기는 무척 심플합니다만 그 안에 담은 내용은 흥미진진합니다. 사실 이 영화를 이해하기에 꽤나 도움이 되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그 영화도 함께 소개하면 좋을 것 같네요.


로즈 그래스 감독의 큰 아버지 벌쯤 되는 38년생인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입니다. 이 영화가 2021년도 영화이니 폴 버호벤 감독이 80이 훌쩍 넘어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 제가 무척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자면 <베네데타>는 ‘베네데타(비르지니 에피라)’ 수녀의 신앙에 대한 얘기입니다.


‘베네데타 수녀’는 르네상스 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이 영화는 폴 버호벤 감독님의 연륜답게 ‘베네데타’의 신앙 외에 여러 층위가 겹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수녀원 안에서의 권력 다툼에서 확장되어 교황청의 권세도 보여주다가 종내에는 민중혁명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인 플롯은 ‘베네데타’를 따라가는 겁니다. 겉으로는 그녀가 평 수녀에서 원장 수녀가 되고 그 원장 수녀에서 몰락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만,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은 ‘베네데타 수녀’의 신앙에 대한 여정입니다. 그녀의 신앙이 어떻게 변모하는지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예수를 맹목적으로 믿던 그녀가 바를로토메아(다프네 파타키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 스스로 권력자인 예수가 되어갑니다. 우리 식으로는 빙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실은 그도 아닐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믿음을 계속 밀어붙입니다. 그것이 곧 그녀에게는 신앙의 완성인 겁니다.


이 지점은 <세인트 모드>의 ‘모드’와 일치합니다.


다시 말해 <세인트 모드>와 <베네데타>의 인물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신앙’은 ‘진실’인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믿음’이 튼실하다면 ‘진실’이 될 수 있는가?


‘진실’이 아님에도 ‘신앙’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 아래 ‘믿음’이 한 개인에게 침투하여 어떠한 ‘진실’을 만들어내는지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거장 폴 버호벤은 실제 이야기를 가져와 층위를 여러 겹으로 쌓아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었다면, 로즈 글래스는 오로지 인물의 심리 속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로즈의 영화는 호러 영화 같은 색채를 띠게 됩니다.


아! 이 면에서 재작년에 본 <잠>이 생각납니다. 정유미가 분한 수진의 심리 상태가 완벽한 오컬트영화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세인트 모드>는 이야기의 의미라든지 혹은 메타포 이런 것을 생각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냥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영화, 한 마디 미친 연출을 따라가면 되는 영화입니다.


모드로 분한 모르피드 클락의 연기를 숨죽이고 보면 되는 영화란 말입니다.


그리하여 엔딩에 다다르면 모드는 천사가 되어 스스로 화형 시키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이 장면의 연출은 천사가 된 모드에게 사람들이 무릎 꿇는 장면을 성스럽게 보여주다가 불에 타 고통받는 모드를 강렬하게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이 강렬한 엔딩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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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바로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엔딩 장면으로 뛰어넘어가겠습니다.


차에는 잭키가 하품을 하며 평화롭게 잠을 잡니다. 차창 너머로 루는 시체를 유기하려 낑낑대다가 담배 한 대를 피우려 라이터를 켭니다. 라이터를 켜는 것은 <세이트 모드>의 엔딩과 같습니다. <세인트 모드>의 엔딩에서 모드는 라이터를 켜고 자신의 몸을 불태웁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엔딩에서 루는 방금 죽인 시체를 옮기다 힘이 들어 담배를 입에 뭅니다. 이 담배는 무엇이냐? 자신이 죽여 시체가 된 ‘데이지’가 살아 있을 때 루에게 카드와 함께 선물한 담배입니다. (대마초일 수도 있는데 여하간) 그때 루는 담배를 끊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안 핀다고. 하지만 그녀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문 겁니다. 언제 끊었냐는 듯이.


이 장면은 <세인트 모드>의 엔딩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맥을 같이 하는 엔딩입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를 얘기함에 엔딩 장면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평화롭기까지 한 이 엔딩이 얼마나 처절한 새드 엔딩인지 말하는 것이 이 영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엔딩 장면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루는 결국 담배도 끊지 못했기에 라이터를 켭니다. - ‘모드’가 라이터로 자신을 태운 것과 같이 – 루는 자신이 벌인 일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겁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인상적인 이미지 컷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루의 아빠 우디 해리스가 분한 랭스턴이 마치 불기둥 앞에 있는 것처럼 온몸이 벌겋게 되어 노려보는 장면입니다.

악마가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겼을 겁니다. (우디 해리스가 분한 랭스터)

이 커트가 나중에 보면 랭스턴이 루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했다는 것으로 연결이 됩니다.


루는 아버지에 의해 벌인 살인 포함해서 JJ와 데이지의 죽음까지 업을 쌓았음은 물론 랭스턴에게서 벗어나려 저항하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담배를 끊지 못했듯, 그녀는 랭스턴과 연결된 더러운 혈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엔딩은 정말이지 더럽게 기분 나쁜 엔딩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실은 루는 아빠의 손에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잭키가 거인이 되어 자신을 구해준 것은 루가 죽는 순간에 본 판타지였겠지요.


엔딩 장면에서 루가 한 행동은 살아나는 데이지의 목을 졸라 죽이고,


담배를 피우기 전에 데이지의 시체를 낑낑대며 옮깁니다. 그때 루의 두 다리는 멀쩡합니다.


이것이 그녀가 죽었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전씬에 허벅지에 총을 맞은 루이지만 이 엔딩 장면에서는 버젓이 상처 하나 없는 다리를 움직이며 시체를 옮기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는 강력한 메시지 중 하나는 루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데이지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므로 관뚜껑에 확실히 못을 박습니다.


이 판타지 속에 잭키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잭키는 루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라스베가스에 보디빌딩 대회장에서 잭키는 루를 토해내는 장면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루를 내보내는 아주 직관적인 판타지입니다.


그에 반해 루는 죽는 순간에 거인이 된 잭키가 나타나 자신을 구하고, 함께 거인이 된 루와 잭키는 구름을 헤쳐나가며 뛰어갑니다.


이런 연유로 이들의 사랑이, 특히 루의 사랑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네요.




<세인트 모드>에서 모드가 봤던 환상들은 신앙으로 진실이 됩니다. 적어도 모드에게는 말이죠. 종내에는 천사가 된 자신에게 사람들이 무릎 꿇는 것을 보면서 환희에 차나,


그 환희는 실은 고통에 몸부림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제목에서 말해주듯 사랑은 거짓말이고 피를


흘리며 처절한 엔딩으로 끝이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즈 글래스’ 감독은 천재 까라가 아닌 천재임이 분명합니다.


이 광기의 천재는 도저히 상업영화로는 담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저는 그녀를 데이비드 린치의 후계자라 감히 칭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두 편의 장편에서 보여주듯 실제와 판타지를 오고 가며 그 안에 진짜 감정을 숨겨 놓는 솜씨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연상케 하니 말입니다.



앞으로 로즈 글래스 감독님의 영화는 극장에서 놓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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