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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목 _ 2025년

동료를 죽이려 했던 천재 과학자를 아시나요?

by 이게바라

앞서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이야기하며,


로즈 글래스 감독의 전작 <세인트 모드>를 돌아봤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세인트 모드>를 생각하면 묶음으로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베네데타>인데요,


<베네데타>는 2021년도 영화로 ‘폴 버호벤’ 감독의 작품입니다.


최근에 저는 새롭게 알아가는 감독들에게 열광했습니다.


‘로즈 글래스’ ‘로버트 에거스’ ‘코랄리 파르자’가 그러합니다.


그런데 ‘폴 버호벤’ 감독을 생각하니, 조선시대에 네덜란드 간다고 한 하멜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먼 과거의 감독입니다. 그런 그가 2021년에도 신작을 냈던 겁니다. 리들리 스콧을 제외하면 30년대 생 감독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 감독인 ‘조지 밀러’감독이나 ‘스필버그’감독이 40년대 생이니 폴 버호벤 감독이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알 것입니다.


이참에 잊고 있었던 ‘폴 버호벤’감독의 영화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가 <베네데타> 전에 찍은 영화로 <엘르>가 있습니다.



<엘르>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폴 버호벤’ 감독님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엘르>를 어디선가 소개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어서 본 줄 착각을 하고 있던 영화입니다. 영화 내용이 다소 파격적이고 여주가 이자벨 위페르라는 점에서 미카엘 하네케 영화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감독이 ‘폴 버호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작 <엘르>를 보고 난 후 느낌은 <엘르>는 저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어정쩡한 영화였습니다.


어떤 의미로의 ‘어정쩡’이냐면 먼저 하네케 영화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랬는지 하네케의 얼음 위의 면도날 같은 서늘함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이유가 엔딩이 너무 산뜻해서일 겁니다. 납골당에 꽃다발을 꽂은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그녀의 절친이자 사업 파트너인 안 나와 앙금을 풀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채플린 영화의 엔딩 같다고 했달까요?


이 영화의 시작(미셸이 강간당하는 장면으로)과 미셸의 과거, 그리고 그녀가 겪은 일들을 감안하면 너무 깔끔한 엔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겁니다.


거기다 <엘르>라는 영화를 미셸과 그녀를 강간한 이웃집 남자와의 이해할 수 없는 광기의 사랑 이야기로 따라가려 했으나 이마저도 아닌 겁니다. 그렇더라도 미셸을 강간한 그 이웃집 남자를 그렇게 죽게 하는 것이 맞는가도 싶고.


‘어정쩡’한 느낌이 두 번째 이유는 너무 재밌기 때문인데요, 미셸을 둘러싼 인물들. 그러니까 전 남편, 전 남편의 애인, 아들, 아들의 애인. 그리고 친구, 친구의 남편. 거기다 직장 내의 관계들까지 이 모두가 너무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이 재미는 심지어 시트콤 혹은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하네케 식의 영화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거예요.


다시 말해 제가 느낀 ‘어정쩡’ 함은 곧 관록이자 노련함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하네케와 스필버그가 공존하는 어정쩡함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 넓다 못해 광활한 스펙트럼을 제 그릇으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래서 <엘르>를 조금 추적해 보기로 했습니다. <엘르>는 원작이 있는데요, 원작자는 필립 지앙이라는 분으로 그 유명한 <베티 블루 37.2>의 원작자입니다. 예전에 본 ‘베티 블루’는 두 시간도 안 되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OTT에 올려져 있는 ‘베티 블루’는 세 시간짜리입니다. 세 시간짜리로 다시 본 <베티 블루>는 청춘 영화처럼 싱그러운 영화였습니다. 일면 왕가위 영화 같기도 했고요, 제가 기억하는 <베티 블루>는 참 암울하다가 이해할 수 없는 엔딩으로 끝을 맺는 영화였는데 말이지요.



여튼 이 영화에서는 ‘베티’도 <엘르>의 ‘미셸’처럼 정상은 아닌데, 특이하게도 세 시간짜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사(과거)가 소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점 참 특이합니다. 원작에도 그럴까, 궁금해서 찾아보는데 ‘베티 블루’ 소설은 우리나라에 출판이 된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에 반해 <엘르>의 미셸의 전사는 정말이지 충격적입니다. 그의 아빠는 무려 27명을 죽인 연쇄 살인범이고, 그 현장에 어린 미셸이 있었기에 그녀의 충격은 더 클 것입니다. 그래서 미셸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는 면이 생깁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은 <쇼걸>의 ‘노미’가 생각이 납니다. 그녀의 과거도 심각했거든요. 아빠가 엄마를 죽이고 자살을 했음은 물론, 그로 인해 노미는 어린 나이에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번에 <쇼걸>을 다시 보니 예전 느낌과는 다르게 무척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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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곁가지로 빠져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면, 영화 초반에 ‘노미’는 랩댄스를 추는 무희였거든요. 이 직업군은 영화 <아노라>에서 ‘아노라’와 같습니다. 근데 이 두 영화에서 보여준 그곳 업주(?)들을 악당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냥 털털하고 계산 정확한 소상공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쇼걸>에서도 험상궂게 생긴 사장이(얼굴 보면 알만한 악당 전문 배우) ‘노미’가 라스베이거스 무대로 간다고 하자 두말없이 보내줍니다. 왜냐면 거기 가면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의 <아노라>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이들의 모습이 동일하게 정겹습니다.


<엘르>의 ‘미셸’을 얘기함에 본의 아니게 폴 버호벤이 구현해낸 여자 캐릭터를 훑어보게 되었는데요. 기구한 것으로 따지면 <블랙북>의 ‘레이첼’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산만하네요. 저도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볼 수 있는 폴 버호벤 영화를 다 봤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도 다시 봤고요, 못 봤던 영화도 몇 편 봤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본 영화는 <엘르> 외에 <트릭>과 <아그네스의 피> 그리고 <포스맨>이 있습니다. 예전에 비디오 테잎으로 본 <사랑을 위한 죽음>을 다시 못 봐 참 아쉽습니다. 거기에 <쇼걸>을 다시 조명한 다큐멘터리 <쇼걸 ; 유돈노미>도 보고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우리가 사랑한 영화> 시즌 3에서 ‘로보캅’ 편도 찾아보았습니다.


걔 중에 다시 보니 새삼 흥미로웠던 영화는 <할로우맨> 이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끝으로 폴 버호벤은 할리우드를 떠나게 되는데요, 할리우드 마지막 영화 내용이 자기 동료를 싹 다 죽이는 천재 박사의 이야기라니 이도 참 흥미롭습니다.





그럼 이제 정리하고 끝내겠습니다.


이번에 처음 접한 <트릭>과 <아그네스의 피>로 폴 버호벤 감독님을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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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 감독은 할리우드를 떠나와 보란 듯이 찍은 <블랙북>으로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 후 폴 버호벤의 선택은 <트릭>이란 영화였습니다.


<트릭>은 <블랙북>으로 자신을 입증해낸 폴 버호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실험하듯 찍은 영화입니다.


<트릭>이란 영하는 메이킹이 영화에 일부이기도 한데, 그 메이킹을 보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시나리오를 앞부분 설정 4페이지만 써놓은 뒤 이후 상황은 공모를 통해 짜깁기해서 완성을 해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트릭>이란 영화는 이렇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참 화목해 보이는데요, 아빠가 바람둥이입니다. 그의 상대가 한두 명이 아닌데, 예전에 바람피웠던 여자가 만삭의 배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를 밝혀내는 사람이 현재 아빠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딸의 절친입니다. 벌써 막장이지요? 엔딩은 또 어떻게 끝나냐? 아빠는 임신 사실을 가짜임을 밝혀내고 회사도 지켜냅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어 기쁜 상황에서 아내가 임신 사실을 알려옵니다. 근데 애는 남편의 애가 아니랍니다.


이렇게 결말이 나는 영화입니다.


자, 그럼 1985년에 찍은 <아그네스의 피>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아직 젖살이 안 빠진 제니퍼 제이슨 리가 분한 아그네스를 놓고 룻거 하우어(마틴)가 이끄는 용병과 성주와 성주의 아들 스티븐, 그리고 군대 대장 호크우드가 벌이는 싸움을 다뤘습니다. 성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규모가 거의 소꿉놀이 수준이라 싸움이라 말하는 것이 적당할 겁니다. 이 말은 곧 전투 장면은 볼 게 하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척 재밌습니다. 그 재미가 어디서 발생되냐 하면, 빌런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혹은 모두가 빌런입니다. 심지어 마틴에게 잡혀 있는 아그네스조차 선악의 구분이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된 원인을 돌아봐도 무척이나 부조리해 보입니다. 마틴 패거리가 획득한 마차에 아그네스가 타고 있었던 것뿐이니, 마틴 입장에서는 길에서 주운 꼴입니다.


거기다 영화 내내 신을 찾아 대지만 그 누구도 명분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신의 계시를 듣는 선지자는 신을 형상화한 동상에 찍혀 죽기에 이릅니다.


할리우드의 자본을 들여 찍은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당했지만 할리우드의 선수들은 폴 버호벤을 알아봤나 봅니다. 스필버그가 조지 루카스에게 폴 버호벤을 추천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려서인지 조지 루카스는 이 영화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폴 버호벤이 제대로 할리우드에 입성하여 찍은 <로보캅>은 그야말로 선악 구분이 확실한 영화였습니다.


독일군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얘기인 <블랙북>에서조차 선악이 불분명한 걸 생각하면 폴 버호벤이 성격 죽이고 에너지로만 밀어붙인 영화였던 거 같습니다. 대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로써는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아그네스의 피> 원제가 ‘살점과 피’라는 것을 생각하면 폴 버호벤의 기질만큼은 할리우드에서도 죽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그가 할리우드에 꽤나 오래 머물렀네요. 그래서인지 <할로우맨>에서 동료를 죄다 죽여버리려는 천재 과학자 얘기로 제게는 꽤나 흥미로웠던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끝내 동료를 다 죽이지 못한 천재 과학자는....


고국에 돌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영화를 꿈꾸며.




폴 버호벤 감독님에게 무한한 리스펙트을 보내며 어수선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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