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 영화를 언급해야겠습니다.
자꾸 생각이 나서 말이에요.
사실 저는 이 영화를 재밌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루하게 본편이에요.
지루한 것에 더해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후반 가이 피어스가 분한 해리슨이 라즐로(에드리안 브로디 분)에게 한 행동은
너무 급작스럽고 뜬금없는 비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차리리 그 장면은 은유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자본가가 창작자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이죠.
여튼 제가 이 영화가 눈에 밟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별거 없습니다.
그냥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뚝심. 밀어붙이는 힘.
주인공인 자즐로가 건축을 향한 집념이 이 영화에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루하게 본 이 영화를 딱 두 장면만 말하고 끝내겠습니다.
첫째로 이 영화의 도입부입니다.
이민자인 라즐로가 막 항구에 도착하는 장면입니다.
어딘가를 향해 기대에 차 가는 라즐로를 흔들리는 카메라가 쫓고,
이 장면을 지배하는 음악, 희망차지만 불안한 느낌의 음악.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져와 믹서기에 돌린 느낌이랄까?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여 뒤섞이는 음악과 함께
곧,
라즐로는 항구에 도착합니다.
카메라 각도 때문에 하늘에서 처박히듯 떨어지는 자유의 여신상.
네, 맞아요. 헝가리계 유대인인 라즐로는 아메리카에 온 겁니다.
이 도입부 장면으로 인해
저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잔뜩 긴장합니다.
제 머릿속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도입부가 생각나기도 하고,
이후 진행은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생각나기도 하면서,
새로운 천재 감독을 만난다는 생각에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1부가 끝날 때쯤은 곧추세운 허리는 이미 긴장감이 빠져 늘어질 대로 늘어집니다.
이렇게 폴 토마스 앤더스를 기대한 저에게는 실망감을 주고 말았지만,
두 번째로 좋았던 장면을 이야기하며 극복해 보겠습니다.
두 번째 좋았던 장면은 인터미션에 박힌 사진 한 장입니다.
인터미션에 주어진 15분은 영화의 연속성을 극대화합니다.
이 스틸 컷이 너무 짠한 거예요.
거기다 인터미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감독이 너무 좋은 겁니다.
인터미션 장면에 박힌 사진은,
라즐로와 엘리자벳의 결혼사진입니다.
1부 내내 라즐로는 엘리자벳을 그리워합니다.
심지어 창녀와의 섹스도 삽입 섹스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정조를 지켜냅니다.
인터미션에서 딱하니 박힌 사진 한 장.
라즐로와 엘리자벳의 결혼식 사진 한 장은
맘 짠하게 만들기 충분한 15분이었습니다.
이 두 장면이 제 맘에 쏙 듭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렇게 맘에 쏙 드는 장면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브래디 코베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네요.
딱 여기까지.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영화처럼 지루해질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