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위한 변명, 혹은 힐난
그를 위한 변론이 될지, 그를 향한 힐난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연유는 이러합니다. 저희 가게에 <휴민트> 스텝께서 오셨습니다. 이 분들이 묻습니다.
“사장님 휴민트 보셨어요?”
보지 않았다는 저의 답변에 따라온 질문은
“왕사남은요?”
다행히도 저는 <왕사남>도 보지 않았습니다.
나름 영화 좋아한다고 하는 사장이란 작자는 영화를 도통 보지 않네요.
이래저래 죄송한 맘을 갖고 있었던 터에 <휴민트>가 넷플에 떴습니다.
넷플에 뜬 <휴민트>를 클릭하며 맘속으로 기원했습니다.
‘제발 재밌어라.’
“사장님 휴민트 보셨어요?”라는 질문에 저는 안 봤다는 대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류승안감독님 좋아합니다.”
실제 그러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류승안 감독님 영화 중 <군함도>는 그냥 지나쳤을뿐더러 언제부터인가 그의 영화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먼저 <휴민트>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면,
영화 <휴민트>는 오롯이 류승안 그 자체입니다.
그는 초심을 잃지 않았고 영화감독으로, 영화 제작자로 기득권 얻었음에도 늘 자신이 원했던 것을 하려고 애를 쓴 영화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장르영화, 이를 포함하여 자신이 사랑했던 영화의 잔상을 늘 쫓는 그의 몸부림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게 류승안 감독을 가뒀다고.... 말하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모든 영화감독이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로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을 겁니다.
더, 더 많은 관객과 말이에요.
여기서부터는 아무래도 ‘힐난’이 되겠네요.
류승안 감독은 장르영화라는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고 영화의 사이즈를 키우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시장에서는 장르영화만으로는 대자본을 들이는 영화를 찍기가 적절치 않은 겁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천만 영화의 공식을 가져옵니다.
그 예로 <국제시장> <백두산> 뭐 이런 이야기 있잖아요. 혹은 <해운대> 같은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져와야만 공감을 얻어 많은 관객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점은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입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이니깐요. 그리하여 류승안 감독께서는 남북분단 문제를 가져와 영화 사이즈를 키우는 명분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그것으로 류승안 감독은 자신의 장르영화가 갖는 한계를 뛰어넘어 많은 관객이 좋아할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계산’을 했을 겁니다.
여오하 <휴민트>는 류승안 감독님의 이 ‘계산’이 ‘잔꾀’로 전락한 느낌이라 안타깝습니다.
‘잔꾀’라 하니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은데요, 좀 풀어서 얘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류승안 감독님은 영화를 너무 사랑합니다. 사실 현실에 발을 딛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는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영화가 먼저였던 겁니다. 영화로 보여줘야 하는 지향점이 분명하다 보니 역효과가 나는 경향이 있는데요,
저는 그 예가 <군함도>와 <베를린>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예로는 <부당거래> <모가디슈>도 있습니다.
사실 <휴민트>는 <베를린>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같이 보이지만, ‘본 시리즈’ 같은 액션을 찍기 위해 혹은 늘 나오는 ‘재키찬’ 식 액션을 하고 싶은 욕구가 먼저였습니다.
그런 의미로 ‘잔꾀’라는 말을 감히 했습니다.
현실 문제를 가져와 영화의 사이즈를 키우고 관객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쉽었던 겁니다.
그랬기에 한편으로는 수가 얕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쉽게 관객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휴민트>는 쉽고 얕지만 전혀 모르겠는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액션’만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동동 뜬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 류승안감독님을 옹호하자면 관객은 물에 뜬 기름만 보면 되는 겁니다.
왜냐면 그 물에 떠 있는 기름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 그러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요.... 아니 혹은 누군가에는 충분히 그러거도 남을 영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순진한 관객(?)은 이렇게 얘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짝패 같은 액션 영화 찍으면 안 되냐고요.... 하지만 류승안감독님은 이제 그런 액션 영화만을 위한 장르영화는 찍지 못하십니다. 그는 이제 몸집이 커졌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와 일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은 우리나라 탑인 배우입니다.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벌어진 일이 <휴민트>입니다.
앞에서 가졌던 의문에 답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이상 류승안 감독님의 영화를 궁금해하지 않았나 보다 하고요.
혹은 류승안 감독님의 정신은 변함이 없는데,
제가 이제 장르영화에 흥미를 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류승안 감독님은 혼자 ‘영화’라는 ‘장르’를 지탱하고 있는 시지프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영화를 떠나는데 홀로 영화의 향수에 취해 있는 시지프스.
그런 의미로 저는 <휴민트>를 더 이상 힐난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류승안 감독님 저는 아직도 제 망막에는 당신이 아르바이트해서 돈 벌고, 상업영화 찍다 말고 남은 자투리 필름을 모아 만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현대인>이 선명합니다.
사실 <휴민트>는 그 연장선에 있는 영화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툭치면 턱 하고 움직이는 조건반사처럼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류승안 감독님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