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8일 _ 세상은 욕된동산
에덴동산에서 성기를 나뭇잎으로 가리고 쫓겨난 인간은 늘 수치스럽다.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 두 가지로 간단하게 설명된다.
먹어야 되고, 섹스해야 된다.
그리하여 세상은 욕망이 지탱하는 '욕된동산'이 된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 욕망에서 벗어나려 그리 애를 썼다고 하는데.. 그 욕망에서 벗어나니
욕계에서 무색계로 그야말로 인터스텔라도 맘대로 넘나드는 존재, 즉 신이 된 것이지.
(나는 종교는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 표현방식에 있어서 불교가 더 흥미롭다. 왜냐하면,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석가모니는 인간이라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며 신의 영역으로 갔기 때문이다. _ 내 좁은 소견으로는 그러하다)
내가 고작해야 촛불집회 몇 번 참석하고
정의당에게 가입하고 뉴스타파를 후원한다고 한들 세상이 바뀔까?
심지어 나마저도 바뀔까?
이 세상은 어차피 욕망이 떠받들고 있는 세상인데..?
얼마전에 본, 놀라운 영화 <winter sleep> 얘기를 하겠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지주, 자본가인 '아이딘'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딘의 뒤통수로 카메라가 빨려들어간다.
우리는 이제 아이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아난 덕에 작은 마을의 유지이면서 호텔 '오셀로'의 사장이기도 하다.
한 때 배우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은 예술에 대해 논하는 기고글을 주로 쓰며 고상하려고 하지만...
그 인간적인 모습은 악을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한나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보여준 악의 모습도.
제시카 랭이 자신의 아빠를 통해 유태인 학살 전범을 만나게 되는 <뮤직박스>도.
악은 인간의 다른 모습이 아니다.
아이딘은 영화 내내 고민하면서 자신을 더 공고히 정당화 시킨다.
고민하면서 공고히 하는 모습이 그 영화의 배경처럼 차갑고도 무섭다.
'윈터슬립'이 놀라운 것은 그 모습이 지금의 어느 힘있는 권력가와 자본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부조리한 면 역시 완벽하게 나의 모습이기도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부조리한 일을 직면했을 때 모른척 외면한다든가, 혹은 자신의 이익에 의해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작년 4.16 세월호 참극은 외면하기엔 너무 큰 사건.. 아니 바로 나의 일이나 다름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을 그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였고,
그 태도는 교과서 국정화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 한 편의 (끝나지 않을) 부조리극을 보면서 세상을 배워나간다. 아니, 나를 이해한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은 부조리극이 아니듯이
강한자가 악이라는 공식은 아니다.
부뉴엘의 <비리디아나>에서 노숙자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역시 인간의 모습 다름 아닌 것이다.
나 역시 완벽하게 인간다운 모습으로
진짜 '인간다움'이 뭔지 진지하게 때로는 즐기면서 탐구해 나갈 것이다.
물론 인간이기에 무척 게으르게 말이다.